<목회칼럼> 좋은 안경점을 찾으세요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나이가 들어가면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소위 노안이라고 부르는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이 노안은 원시보다는 근시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빨리 온다고 합니다. 왜 일까요! 늘 가까이에 있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고 몰두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감이 더하고 더 빨리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분들보다 전문직에 일하면서 그것도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더 빨리 나빠지고 노안의 속도도 빠릅니다.
김난도 교수는 우리는 인생에 관한 한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찍 출세를 하려고 하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가 되려고 한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있다. 남들의 인생관에는 전문가처럼 조언을 하고 다른 사람의 주식투자는 성공확률을 정확하게 알려주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한치 앞도 알지 못한다. 인생의 근시안적 사고, 어쩌면 더 멀리 보고 대기만성을 기다리는 여유와 자신의 일과 존재에 대한 열정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들보다 더 빨리 출세해야하고 성공해야한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오늘날의 교회도 세상의 이런 길을 그대로 답습해 가고 있습니다. 당장 커지고, 많아지고, 뭔가 이뤄보려고, 눈앞에 있는 문제에만 연연합니다. 목회자치고 성공하고 싶지 않고,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작은 교회보다는 대형교회를 선호하고 기회가 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고 잡고 싶은 것이 목사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은 그런 성장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 애쓴 목회자와 사역자가 없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가 더 큰자이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는 덜 중요한 논리는 성경에서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습니다. 오히려 계시록을 보면 큰 교회, 많은 사역, 훌륭한 성경공부과정… 이런 교회들은 하나같이 무너졌고, 깨졌고, 교만해졌고, 결국 주님께 호통을 맞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인원도, 헌금도 못내는 성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목회자들에게는 수지가 맞지 않는 교회입니다. 목회자들이 지원하지 않는 교회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인내로 신앙의 표준을 만들어 냅니다. 그 안에서 순교자가 나오고, 죽기까지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 살아있는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렇게 산 지도자가 그 교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교회에 지원한 한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사도요한으로부터 예수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인지를 배웠습니다. 정확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고, 그 삶을 몇몇 안되는 성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교회에 몰아친 핍박에 줄줄이 무너지고,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예배했던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핍박에도 한 사람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급기야 로마정부는 그 교회를 담임하는 지도자를 처형하면 교회가 문을 닫고, 성도들은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화형장으로 끌어냈습니다. 존경받는 그분의 인품을 귀히 여긴 총독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믿는 그 예수를 한번만 모른다고 부인하면 당신의 목숨만 아니라 당신교회 성도들의 목숨과 교회도 보전해 줄 테니 예수를 부인하십시오”라고 설득을 시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 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가 있겠소” 총독이 말한다. ‘나는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고 있소,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그 짐승들에게 던져 버리겠소” 폴리갑이 대답한다. “그 짐승들을 부르시오. 우리는 선을 버리고 악으로 돌이켜서는 안 되오, 오히려 악에서 돌이켜 덕을 택하는 것이 선한 일이오” 뜻을 굽히지 않는 그를 향해 총독이 마지막으로 위협을 합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화형 시키겠소’ 그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요” 결국 그는 장작더미로 던져진 횃불에 의해 온 몸은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가 바로 초대교회의 교부이자, 사도라 불리는 폴리갑입니다.
바로 영적인 근시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통찰력을 가지고 성도들을 준비하며 훈련하는 교회 어떤 죽음앞에서도 당당하며 그 믿음을 잃지 않는 불굴의 신앙을 소유하게 만들어 주는 교회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 신앙을 어떻게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가? 가 미래를 결정짓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오고 봐오고 경험한 신앙은 바뀔 것입니다. 위기가 오고, 핍박이 오면 흔들리고, 내 팽개칠 거추장스러운 옷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여러분이 믿는 바로 그 신앙을 위해 목숨 내걸 수 있는 행동과 용기를 잃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진짜가 될 때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약에 잇사갈 족속은 “시세”를 아는 족속(대상12:32)이라고 합니다. 시대를 분열하며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길이 어디인지를 알고 그 길로 백성을 이끌도록 하는 족속입니다. 지금 교회는 잇사갈의 영이 어느 때보다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시대에 서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나침판이어야 합니다. 방향을 주고,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가도록 독려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쓰러진 자들을 부추기고, 함께 뛰어 경주를 달리도록 뛰어주는 하늘 도우미입니다.
이 시대에 명성에 연연하고, 자신의 이름 석자를 이 땅에서 남기고, 그런 야망이 내속에 도사리고 있는 한 절망적인 상황이 도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하고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줄 수 있게됩니다.
교회가 이 시대에 근시안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소경이라 모두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하루 빨리 가까운 안경점을 찾아 여러분의 눈에 맞는 안경을 주문해 쓰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말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시11 9:108) <915/0211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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