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소통, 불통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여러분은 누군가와 잘 소통하고 계십니까? 소통이란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쌍방의 대화가 매끄럽게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만의 일방적인 대화(독백)를 가진 분이라면 분명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불통이란 별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소통이란 나의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줄 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있는 단어입니다. 요즘 한국의 여성 대통령의 정치 형태를 보면 한국사회가 바라고 시대가 바라는 소통의 정치와 나라 운영보다는 불통정치와 불통 운영방식을 선호하는 듯 보입니다.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사람들과 사회는 소통을 말하지만 정작 소통의 대상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합니다.
한국에서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국이 꼬일대로 꼬인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국회에서 정국현안을 풀기 위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야당에게 나름의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결국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그 회담이 별 소득 없이 끝난 후 대통령은 야당에게 민생을 외면하면 민심의 저항 맞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야당 대표는 대통령이 이렇게 불통이니 국민들에게 저항을 맞을 것이라고 으르렁대는 장면이 뉴스의 일면 기사로 뜬 적이 있습니다.
소통부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대화는 기 싸움에 불과하고,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는 겸양의 자세가 없이는 이해 득실을 두고 머리 싸움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통이란 다가감이다.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상대를 존중히 인정해 주고 마음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자신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고 꼬이게 만듭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우리는 소통이란 말을 자기가 편리한 방법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소통은 항상 자기 주장에 따라 평행선을 긋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정말 소통해야할 사람들은 소통 안하고 소통 잘하고 있는 사람들만 그들의 불통 때문에 불똥 튀기는 꼴입니다.
교회는 소통의 실습장이자,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순종해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안에서 맺어진 언약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외 그 누구의 말도 절대적이거나, 강압적이거나, 일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은 인간과 소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원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저자들을 통해 문서로 기록한 소통의 책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위해 남용되거나, 도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때론 교회내에서 일어나는 대화들을 들어보면 정말 사오정(상대방이 말할 때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전혀 상대방의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뿐입니다. 일방적인 이야기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교육보다는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의 교육을 받습니다. 한대 맞으면 두대 때리라고 부모들은 가르칩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을 이기고 봐야 이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집안에서 자녀와 함께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는 법을 배워줍니다. 간단한 의자며, 책상이며, 책꽂이들을 만들면서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을 배우고, 상호협력과 친화력을 키워줍니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혀도 아랑곳하지 않는 한국사람들과는 다르게 서구사람들은 부딪치지 않으려 하지만 간혹 부딪히면 항상 먼저 Sorry, Excuse me를 말합니다.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길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 줄뿐 아니라 건강한 선진국형 시민정신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입장으로 인식해 주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불어 가고자 하는 마음, 이것을 상생이라고 부르고 Win-Win 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뒤따라야 나 역시 존중받는 법입니다. 소통은 자신이 가진 권위와 힘을 내려놓아야 시작됩니다. 대통령의 옷, 야당대표의 옷을 그대로 입은 체 결코 상생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 장로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이 교회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데 당회에서 계속 반대와 의견충돌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항상 모이면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합니다. 그런 팽팽한 기류와 긴장감이 감도는 당회를 계속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목사님이 모든 당회원들을 한 장소로 모이게 하셨답니다. 바로 목욕탕입니다. 몸에 아무것도 안 걸치니까 미운 것도, 반대도 별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벗고 보니 목사도, 찬성측 장로도, 반대측 장로도 다 똑같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욕탕을 나올 때는 모두 웃으면서 아무 일 없었던 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 일괄통과!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여성이시라 목욕탕도 같이 못 가고 이 일을 어쩌지요!. <914/020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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