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이미 Christ 아직 masse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에 집중됩니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상업매체인 듯 합니다. 동네 몰은 가장 먼저 성탄추리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백화점들은 세일 이벤트를 통해 매상 점표가 검정색 잉크로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TV는 자신이 산타가 된 양 선물꾸러미들을 소비자들에게 연신 풀어 내놓고 있습니다.
저도 몰에 구경나온 길에 그만 세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던 바지를 사고 말았습니다. 경제가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지 쇼핑몰마다 차량과 인파로 정신이 없고 차량들이 줄을 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의 인파 행렬까지 가세하면 과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의 대 장관이 연출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상징 산타 클로스의 등장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포토존을 만들어 호호 할아버지와 사진 찍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또한 놓칠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진풍경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의 생일을 이렇게 성대하고, 전세계가 환호하고, 장식하고, 선물을 나누고, 기막힌 이벤트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시 예수님이 짱! 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이미(already) 세상에 대해 열광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을 위해 대단한 이벤트를 마련합니다. 아기 예수를 이용해 특수를 누리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성경은 이미 지나버린 일을 ‘헛되고 헛된것’ 이라고 분류합니다. 별 의미 없음으로 분류해버린단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에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니라, 아직(yet)의 시간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미”의 세상은 누구에게나 이미 보여진 시간이자 사건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수긍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의 시간속에 사건입니다. 이미의 시간에 는 믿음이란 것(히11:1)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것을 믿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실이고, 분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걸 우리가 믿어야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아직으로 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이벤트는 가장 불행한 자아도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축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 축제는 츄리도, 빤짝이도, 산타도, 캐럴도, 몰마다 몰리는 인파의 행렬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의 세계에서나 필요한 예수님과 무관한 자의적 흥분과 상술이 빗어낸 인간 탐욕의 모방작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사나, 특히 신약성경 사도행전 이후를 보면 신기하게도 아니 좀 의아하게도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그 어떤 이벤트도, 기념행사도, 소위 사도들이 모여 케이크(?)를 자르고 축하 노래 하나 불렀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만 해도 예수님의 생모가 살아있어서 언제 나셨는지, 어떻게 낳았는지를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날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오직 성경에 기록으로만 전달해 내고 있습니다. 그 날을 어떤 기념일이나 온 교회가 축하하는 날로 정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가장 놀라운 이벤트가 바로 성탄절입니다. 물론 교회가 지켜온 비록 그것을 사람이 만들었다해도 그런 전통이 전혀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전통이 예수를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적어도 한달간은 당당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항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어디서나 말입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이미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빌3:12-14)고 했습니다. “이미”의 세상 ‘크로노스’의 세상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직”이라는 미래 즉 ‘카이로스'(주님의 재림의 때)를 향해 달려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미’의 시간을 지나 ‘아직’의 시간을 향해 순례하는 순례자들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는 길, 아직 오지 않는 세상,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날을 갈망하며 이미의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에 안정감을 두고, 발을 붙이고, 이미의 세상속에 모든 것이 있는 냥 주저앉아 있다면 그 날이 될 때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 성탄에는 북적대는 인파들에 몰려 예수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이 되지 말고 조금은 조용하고, 한적하게 가족들과 아니 아이들,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히고 아브라함의 별 이야기, 다윗의 별 이야기, 이미 오신 예수님의 별 이야기와 장차 오실 새벽 별의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성탄으로 보내면 어떨까요?
별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상의 날개를 펼쳐 줄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상상하며 복잡한 일상, 분주한 일상을 떠나 한적하고 인적 드문 들판의 목자들이 만났던 진짜 별을 우리도 고대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그렇게 자녀들에게, 그들의 후손들에게 조상의 이야기, 신앙의 이야기, 야훼의 이야기를 별을 보며 나눴다고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어떤 선물 보따리보다, 백화점의 상품권 보다 더 귀중하고 복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은 다시 오실 주님의 별을 찾아 이야기하고, 다시 그 날을 위해 달음질하는 신앙의 재 시동을 거는 날의 시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Christ)만을 예배(Masse)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908/121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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