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그 길을 다시 만들자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이 길은 오래전 많은 사람들이 걸으면서 길을 만들어 놓았던 길입니다. 그때는 그 길을 걷는 것이 쉽고, 편리하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길은 나무들과 풀들에 뒤덮여 길은 막혀버렸고, 찾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끊어지면서 서서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길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었고, 인생의 가장 큰 환희와 기쁨을 만들어 주었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그 길에서 경험한 모험을 결코 잊을 수 없고, 그 감격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그 길의 방식이 좋았고, 그 길에 있는 것만도 행복했던 신앙인의 삶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그것은 장식이 되고, 아련한 추억이 되 버렸고, 그저 믿음의 유산정도로 치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 길을 다시 뚫고 풀을 베면서 길을 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그런 옛날의 방식이 싫어진 것입니다. 그런 방식을 구식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 그 길을 걷는 일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제임스 패커 목사님은 “거룩의 재발견”이란 책에서 영국의 시인 키플링의 시 “숲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칠 십년전/ 사람들이 이 숲길을 폐쇄했다네/ 그 후 비바람이 그 길을 다시 망쳐놓아/ 이제는 아 무도 모른다네/ 숲속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길은 예전에는 분명히 걸어갔고 그 길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길입니다. 우리가 서서히 관심을 버리고, 신경도 쓰지 않고,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되면서 그 길로 걸어가던 발걸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만 길, 이제 그 길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린 그 길, 우리가 그 길 을 잃어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사단)그 길을 엉망으로 망쳐놓아 이제 아무도 가지 않고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그 길을 되찾을 수 만 있다면, 다시 그 길로 들어서고, 그 길을 찾고자 원한다면 그 길은 다시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걷게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부흥의 길입니다. 사단은 그 길을 감춰버렸고 망쳐 놔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부터라도 그 길을 재건하여 다시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정말로 그러려면 풀 뽑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누군가 다 딱아 놓고, 수고해놓은 길만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그 길을 닦고 풀을 뽑을 때 우리의 자녀들이 다시 그 잃어버린 그 길로 걸어나갈 것입니다.
기도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우리의 세대는 세례요한의 세대가 되야 합니다. 길을 딱고, 길을 만들며, 사람들의 마음에 박힌 돌들을 하나둘씩 빼냄으로써 주님의 부흥의 길을 열었던 세대 말입니다. 길을 만들고, 길을 여는 세대가 되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 열게될 그 길로 주님이 오실 것이고, 또한 그 길로 우리의 자녀들이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 걸어나가게 될 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수년내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부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교회성장이나, 성도가 늘어 교회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 올랜도가 하박국의 부흥을 경험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그것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의 가정들 안에서 이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당연히 미국과 한국이 이 부흥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그분의 부흥을 경험하게 되면 교회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 죄악과 불법과 범죄가 사라지게 됩니다. 총기사고와 술집들이 문을 닫아 버립니다. 미국이 하나님을 등지고, 거역하며, 그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부터 돌이켜 놀라운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 입니다. 엘리야가 활동했던 시기를 잠깐 엿보면 참으로 비참하고 암울한 영적 고갈의 시기였습니다. 하늘은 마치 놋문의 빗장이 쳐진 듯 굳게 닫히고, 땅은 점점 황폐하고, 우상은 온 나라를 점령하고 믿는 자들은 처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생도 그런 쌩고생이 없습니다. 하늘의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면 세상은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고, 나라는 점점 더 흉흉해 집니다. 그러나 부흥은 마치 영적 쓰나미 같아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립니다. 우리안에 있는 모든 세속적인 쓰레기들을 쓸어 가 버립니다. 진리가 덮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오고, 변질된 삶이 회복되고 고쳐집니다. 우리가 어찌할고! 우리의 그릇된 행동과 신앙들이 철퇴를 맞고 고쳐지지 않던 습관들이 일순간에 새사람이 됩니다. 교회가 정화되고, 교회에 자리잡은 세속적이고, 인본적이며, 주술적 신앙들이 제거됩니다.
평양에서 일어난 대 부흥을 경험한 사람중 몇이 남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친 놀라운 광경은 다름이 아니라 남한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술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우더라는 것입니다. 부흥을 경험한 모습과 부흥이 없는 모습의 차이점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평양은 부흥이 오긴 전과 후가 너무나 달랐다고 합니다.
부흥이후에 평양과 그 인근에서 술과 기생들과 담배 피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아는 목사님 어머님이 실제 경험하신 경험담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새벽마다, 기도 때마다 하늘로부터 부흥이 임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부흥이 없는 도시는 점차 쇄퇴해가고, 타락되어집니다. 그 가운데 있는 교회도 세상과 똑같아 집니다. 그 타락의 책임은 그 땅에 세워진 교회가 짊어져야 합니다. 부흥의 길이 다시 열릴 수 있도록 누군가는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땅에 세워진 교회의 몫입니다. <907/12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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