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힘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누구나 비판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판이 우리를 길들이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 을 막아주기도 한다. 성경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비판받을 것이 있다면 비판을 받을 수 있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은 비판을 자신에 대한 흠집내기, 혹은 질시와 질투 정도로 볼수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비판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비판을 건강하게 받아 내는 수용의 힘을 가지는 것이다.
수용의 힘을 통해 나의 내면을 완충하고, 그 완충된 에너지로 나를 먼저 돌아보고, 그 비판 속에 숨 어 있는 진주하나만 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비판은 곧 내게 자원이 되고 자기 개발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헛소문들을 퍼트림으로 근거 없는 비판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말라.(마7:1) 비판하는 사람 역시 비판하기 전에 자신도 비판받을 것이 없는지 먼저 살피고 진정 내가 하려는 이 비판이 저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비판이라면 그 비판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있는 들보를 먼저 찾아보고 그 하려는 비판에 대한 자기 성찰을 먼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을 수용하는 힘은 바로 내면의 건강에서 온다. 비판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을 역으로 이용하려면 비판을 받아낼 수 있는 힘, 바로 수용성 개발시켜야 한다. “나는 절대 아니야! 가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어! 나는 그런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어!” 라고 하는 수용적 태도를 가질 때 비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을것이다.
특히 교회는 비판에 민감하기보다는 비판을 적절히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판이 도리어 교회의 자생력을 길러주고, 여러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들을 때 교회는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게된다.
그 중에서도 목회자들은 특히 비판을 목사 공격으로 간주하는 전투적 알러지가 있다. 어떤 비판에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또한 어떤 비판도 받지 못할 비판은 없다. 그 비판은 내가 모르고 못 보는 또 다른 소리가 될 수 있고 그것은 공짜로 수집할 수 있는 갤럽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로부터 들을 수 없는. 아니 나의 세계안에 갇혀 있을 때는 결코 들을 수 없던 소리를 들 을 수 있는 또 다른 채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기분이 불쾌하고, 뭔 트집을 잡으려고 저러는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 세히 그 비판을 경청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정말 목회자를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깨어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때 그 비판은 나를 겸손으로 이끌고, 수용적 태도를 취하게되고, 그 비판이 도리어 나에게 지혜의 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대개가 비판과 경책을 오해 할 때가 있다. 비판이라면 말은 옳지 않는 것에 대해 그것의 진위 여부 를 가리는데서 부터 비롯된 말이다. 물론 그것이 요즘은 무차별하고 여과없이 공격적인 양상을 띄는 것이 문제다. 반면 경책은 그 사람이 옳지 않는 길로 행할때 그 문제를 정확하고, 엄격하게 책망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은 비판보다 더 강력한 제재는 바로 경책이다.
비판을 수용하고 걸러내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은 그 비판속에 숨어있는 경책을 스스로 찾아내 자신을 습관과 행동을 고치고, 돌이켜 비판을 적극적 수용과 변화로 만드는 사람이 된다. 비판 속에서 자신에 대한 경책을 발견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아울러 자신을 항상 바른 길에 세우 는 사람이 된다. <901/102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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