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6>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6>

박쌍주 할머니

박쌍주 할머니

다음 날, 하바나 시내에 살고 있는, 루이사 박(Luisa Bak), 처녀 할머니(78, 한국명 박쌍주)를 찾아갔다. 이 분은 큐바 한인 사회에서 유일하게 우리말을 할 줄 아는 분이며 큐바 공군참모차장을 지낸 박중령의 여동생이다.
장 할머니 집보다 더 허술한 곳에 살고 있는 박 할머니는 말씨도 힘이 있고 외모 또한 그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해서 놀랐다.

한 번도 본적이 없고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 찾아 온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웃는 얼굴로 “왜 나를 찾아 왔습네까?” 평안도 악센트가 약간 섞인 또렷한 발음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외할머니가 평안도 분이었단다. 그리고 장 할머니와는 외종사촌 간이란다.
기자는 “미국에서 큐바까지 왔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분이 계신다기에 너무 반가워서 인사차 들렸습니다”고 하자 고운 얼굴로 미소를 머금는다.

이어 “헤르니모(외종사촌형부가 된다)가 살아 있을 때는 자주 이곳 동포들이 만났는데 그가 떠난 후부터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끄리스띠나(장 할머니를 뜻함) 본지도 오랬어요.”하며 헤르니모씨의 세상 떠남을 아쉬워한다.

젊은 시절 하바나 시내의 디젤 회사 비서로 근무하다 은퇴한 박 할머니는 정부에서 생활비는 제대로 주느냐는 질문에 정부에서 주는 “은퇴 생활비가 생활비로는 너무 적어서…”하고 말을 얼버무린다.
피부가 곱고 흰머리도 드문드문 나서 많이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부모 봉양하다가 결혼도 못 했더니 다른 할머니들처럼 아이 기르느라 고생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하며 밝게 웃는다.

큐바에서 태어났는데도 장 할머니는 남편 따라 모국 방문을 했는데 박 할머니는 그럴 기회도 없었단다. 혼자 사는 걸 전혀 외롭게 느끼질 않고 오히려 식구가 없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다행이라는 박 할머니. 기자가 이곳 1인분 한 달 생활비 정도를 내놓았더니 “몹씨 고맙습니다”하고 옛날 말로 인사한다. ‘몹씨 …’라는 말은 들어 본지 오래다.

▲ 큐바 거주 한인들 사이에 유명한 양원건목사 부부와 함께 남편 임은조씨 묘를 찾은 장끄리스띠나 할머니(좌)

▲ 큐바 거주 한인들 사이에 유명한 양원건목사 부부와 함께 남편 임은조씨 묘를 찾은 장끄리스띠나 할머니(좌)

해가 지는지 벌써 밖이 어둑어둑해진다.
다음에 언젠가 기자가 또 찾아 왔을 때도 지금처럼 정정한 모습을 지닐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내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는 박 할머니에게 나 역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내 가슴 어딘가에 엷은 슬픔이 이는 것은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어서일까? (계속) 20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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