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연아의 “금빛 조련사” 브라이언 오서

<김원동칼럼> 연아의 “금빛 조련사” 브라이언 오서

피겨의 그랜드 스렘을 달성한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 여왕으로 등극하던 순간,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게양되던 그 감격은 쉬 잊을 수 없다. 제관식에 이어 태극기 세레머니를 보고 감격에 복받쳐 눈물도 흘렸다. 아이티의 참상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의 차가운 눈물샘을 폭파시킨 위력은 단연 김연아와 태극기뿐이 아니었다.
복받쳐 오르는 감격의 와중에서도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하나의 생각되는 단어는 단연 멘토(Mento)다, 경험이 스승이라는 보편적인 진리의 신봉자였던 나에게 그날 그 감격의 순간에 새로이 일깨워 준 것이 있다면 바로 스승론이다.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훌륭한 제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번의 비상(飛翔)을 위해 천번의 점프”라는 소책자까지 펴낸바 있는 김연아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가 있었기에 오늘의 김연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라예보와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 두 번을 조국 캐나다에 은메달을 안겨준 장본인인 오서야 말로 그녀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금메달의 꿈을 제자를 통해 이룩한 그 날의 감격을 그는 가슴속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며 애써 미소로 답했다.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축구의 뒤에는 히딩크라는 스승이 있었고 세계적인 축구스타 박지성이 있기까지에도 히딩크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크리브랜드의 4번타자 추신수의 야구방망이 밑 모서리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각광받는 그가 힘겹게 휴가를 내서 귀국한 첫발걸음이 바로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부산고등 시절 야구 스승의 묘소였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이다. 체력단련을 위한 구보훈련 중 음식물을 토해낼 때 잠시나마 앉고 싶었던 그에게 “감독님은 뛰면서 토하라는 혹독한 말씀을 하셨다”며 그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한참을 울먹거리는 모습도 보았다.
김연아도 마찬가지였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감당 못하게 닥쳐오는 무수한 시련 가운데서 그녀는 좌절감에 피겨인생을 포기할까하는 방황의 연속기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때마다 오서 코치는 그녀를 다시 일깨워 세웠다. 연아가 가지고 있는 남다른 재능과 잠재력을 발견한 그는 그녀로 하여금 피겨로써 세계무대를 제패할 수 있다는 스승으로서의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와 제자의 성공을 위해 지혜와 사랑으로 감싸고 이끌었다.
브라이언 오서나 히딩크나 그 부산고등 야구코치나 그들은 오늘날 한국스포츠계를 주름잡으며 각광을 받는 세 사람의 멘토로 떠받들던 진정한 스승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자동차의 목적지를 밝혀주는 네비게이터가 아닌 성공의 지름길을 그리고 인생의 목표점을 밝혀주고 이끌어 주는 네비게이터임에 무엇이 다르랴!
필자도 설국(雪國)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스키는 좀 타보았지만 평생에 한번도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신발 끈을 동여매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씌워주던 따뜻한 귀마개와 목도리를 칭칭 감고 논두렁에서 타본 썰매가 빙상의 추억 전부다. 그런데 어느 세인가!.
변방에 머물던 빙상경기의 후진국이었던 조국 대한민국이 낳은 김연아가 피겨 세계기록을 갱신하며 선진국의 독무대였던 피겨스케이팅 계를 일시에 평정한 그 순간에 감격을 거듭 되새기면서 훌륭한 스승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다는데 교육학에서는 “의미 있는 타인”이라는 말로 회자되기도 한다. 오늘 말하는 바로 멘토론이다. (kwd70@hotmail.com) <726/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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