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문화CEO가 된 팝페라 가수 임 형주

▲어머니 김민호씨와 임형주.

▲어머니 김민호씨와 임형주

<김원동칼럼> 문화CEO가 된 팝페라 가수 임 형주

가정의 달에 유난히 돋보이는 한 토막의 짧은 기사가 있어 눈길을 멈춘 채 음미해보았다.
자식을 보듬고 감싸는 것만이 전부로 아는 부모들과는 상이한 내용이다. 자식의 독립심을 전혀 생각지 않는 엄마들이기에 그래서 마마보이가 생겨나고 매사 엄마를 의지하려는 탓에 의타심만 늘어난다. 그러나 형주의 엄마는 달랐다. 자식을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로 키운 형주어머니의 남다른 체험기가 가정의 달에 어머니들에게 주는 교훈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오페라에 팝 스타일을 감미한 새로운 음악장르를 일컬어 팝페러라 한다. 그리고 그 특이한 음악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는가 하면 최연소 카네기홀 입성이라는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한 27세의 청년 임형주가 있기까지에는 어머니의 좀처럼 보기 힘든 남다른 스타일의 자녀교육관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임형주는 영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자기가 가고 있는 분야를 압권하면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17세 나이에 대통령취임식전에서 애국가를 불렀을 때 그의 음악도로써의 재능은 이미 알려지기는 했으나 다시 그의 이름이 대중매체에 부각되기는 최근의 일이다.
그는 음악인으로써 자신이 번 돈 중에 100억을 투자해서 음악을 통한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한 문화재단 “아트 원”을 창립하면서 문화CEO로 우뚝 섰다. 년전에 설치한 자신의 문화재단에 최근 음악에 소질은 있으나 음악도로 정진하기에는 환경이 어려운 5세에서 7세까지의 어린이 73명을 모집하고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리고 이 재단의 실질적인 운영자인 이사장으로 그는 주저 없이 어머니 김민호(49세)여사를 내세웠다.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남다른 자녀교육관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기에 음악을 향한 꿈나무들을 더도 말고 자신처럼만 키워달라는 말없는 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김씨는 형주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중에 극히 일부분이지만 우리를 감동케 하는 일화 중에 하나가 있다. 형주가 9살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동행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형주에게 몇 살 아래의 여동생을 따라 붙여 어린 남매간의 호주여행을 다녀오도록 했다. 엄마 손을 잡고 여행을 온 공항출국장의 많은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눈여겨보면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독립심을 키워주려는 어머니의 훌륭한 뜻을 가슴속에 새기며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출국수속을 했다. 그리고 형주가 16살 때 미국유학의 뜻을 비출 때도 학비와 생활비는 대 주겠지만 유학에 관한 모든 수속은 너 혼자 힘으로 알아서 하라는 말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처럼 그는 말없이 따랐다. 학교 입학문제 지도교수문제 등 모든 것을 어린나이에 벅찼지만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해냈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엄마뿐 아니라 그 어떤 사람들로부터도 도움도 받아선 안 되며 의타심이란 있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단호한 생각은 오늘의 그를 세계 팝페라 무대에 우뚝 서도록 했고 훌륭한 한 사람의 문화CEO의 탄생이라는 벅찬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자식은 감싸고 보듬는 게 자식사랑의 전부인줄 알고 자식의 독립심을 뿌리부터 잘라 버린 채 마마보이로 만들어 놓은 어머니들이 있다면 형주 모자간의 특별한 성공체험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온실에서 피는 꽃은 야생화보다 면역성이나 모든 것에서 약하다. 그래서 엄마는 형주를 야생화 같이 되길 바랬을지 모른다. 아무도 가꾸거나 도움 없이 신록의 5월 속에 힘찬 생명력을 과시하며 피어오르는 아파트 뒷켠의 노란 민들레를 보면서 써본 가정의 달 원고다. kwd70@hotmail.com <688/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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