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사랑스런 국민여동생 근영아 힘내!

▲‘기부천사’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문근영-한지민-김장훈,

▲‘기부천사’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문근영-한지민-김장훈,

<김원동칼럼> 사랑스런 국민여동생 근영아 힘내!

익명의 기부천사로 불리었던 국민여동생 배우 문근영의 선행이 선행으로만 치부되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전후 내력은 차치하고 우선 보기에 안타깝다. 데뷔 이후 4년간 그가 벌어드린 적잖은 돈 10억원 중 일부가 아닌 거의 전부를 사회복지성 성금으로 충당했건만 기부자로서의 그의 순수성이 본의 아니게 문제화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광주 빛고을 장학회와 광주영화제기금 기부로 인해 전남 광주 태생인 그녀의 선행 대상지역이 광주로 국한되었다며 “선행은 선행이되 광주사람들 끼리의 잔치였다”고 혹평하는 못난이들도 있다. 외조부의 상을 당했을 때 부의금으로 들어온 3천만원도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하는 친북 이적단체이자 반 통일단체인 <범민련>에 전액 통일기금이라는 명분으로 기부한 것도 알고 보면 모두 문근영의 자의(自意)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근영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그녀의 외할머니이자 지리산 빨치산으로 외할아버지와 함께 오직 북조선만을 위해 분투하며 동고동락했던 여자 빨치산 신애덕(74)씨에 의한 계산된 기부행위라고 까발리기도 한다.
무수한 지방 양민과 군경들을 살해하면서 북한에서 통일영웅 호칭 반열에 들어갈 만 한 빨치산 두목생활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끝내 전향을 거부하며 30년 세월을 옥중에서 오직 김일성에게 충성하며 일생을 마감한 외조부 류낙진의 미망인이 바로 문근영의 연예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치는 외조모로써 매니저다. 그래서 한때 북한 연탄보내기 운동과 함께 홍보대사를 맡아 연탄과 연탄 난로등을 싣고 직접 북한을 방문한바 있는 근영의 행보도 결코 스스로가 결행한 일이라기보다는 외조모의 영향으로 생각하는 층이 많다. 외조부 외조모 뿐 아니라 작은 외조부 외삼촌 이모 등등도 모두 광주사태와 연관되어 옥살이를 했던 외갓집 이력도 근영의 페러디성 화면과 차마 보기에 흉한 악플과 함께 뜬다. 그녀를 에워싼 좌우파의 양분화된 정치세력 집단과 좌우로 갈라 선 언론끼리도 그녀를 에워싼 대립양상 구도를 이루고 연일 싸움판이다. 그래서 나는 근영 또한 이념이 덧칠된 정치의 희생양이라 위로하며 원죄는 역시 분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근영의 선행으로만 모두 치부하며 외가쪽 빨간 속사정은 잊어줬으면 하는게 근영을 위한 솔직한 바램이다.
어디 문근영뿐인가 자신은 집 한 채 장만하지도 않고 가수활동으로 벌어드린 40여억원을 특정지역을 가리지 않고 기부하여 선행의 대표적인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가수 김장훈도 걱정된다. 그의 조부 조모의 이력까지 파헤치며 또 이념적인 잣대로 재단하면서 눈꼽만한 건덕지라도 나오면 초딩까지도 즐기는 악플문화에 휘말릴까 하는 데서다. 6.25라는 동족상잔속에서 살아야했던 그들의 조부모 세대에 현미경을 들이댄다면 자유로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인민재판의 피바람 속에서 죽창을 든 완장부대들인 지방빨갱이들의 그 극성스런 동원령 앞에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시키는 부역 앞에 누구 하나 비켜나갈 수 없었다. 그걸 이적행위로 본다면 누가 자유로울 것인가 말이다. 피난 못가고 다시 수복 될 때까지 3개월간 공산치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면 본의와는 무관하게 다 겪은 일이다. 그래서 문근영 외가 일족에 면죄부를 주자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발적이었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그 외가의 얼룩진 친북 반한 행로가 우리의 자랑스런 국민여동생 근영의 발목을 잡는 기막힌 현실이기에 안타까워서 해보는 말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근영이 만큼은 악플에 굴하지 않기 바란다. 약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염려를 떨칠 수 없구나. 근영아 제발 힘내!. kwd70@hotmail.com <665/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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