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공인의 기본자세와 언론의 기본자세

<발행인칼럼> 공인의 기본자세와 언론의 기본자세

거의 모든 사회에서 공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는 물론 언론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만큼 공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방송이나 신문지상에는 항상 좋은 소식이건 나쁜 소식이건 대부분 공인들의 이름과 행적이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며 잘했을 경우에는 격려와 칭찬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비판과 질책이 따르게 마련이다.
간혹 언론의 호된 질책과 제시방향을 잘못 이해한 공인들은 언론의 올바른 지적을 시인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모른 체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대체로 이러한 공인들은 본인의 조그마한 성과로 기분 좋은 기사가 나갔을 경우에는 아부를 하며 언론을 추켜세우는 졸속한 행동을 하는 즉 공인의 그릇이 못되는 사람이다.
또한 소수의 한인들은 동포사회에서 밝고 좋은 면만 보도해 미래의 희망적 삶을 추구하자고 주문한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심히 잘못된 사고이다. 그것은 어두운 면이 썩고 곪아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생각을 잊고 하는 소리다. 언론은 사실을 제시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그 사실들이 내포하고있는 진실을 찾아 보여주어야 하며 독자의 알 권리를 지켜주며 또한 그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이를 찾아내 수정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언론의 기본 사명이다, 이렇게 언론은 사실과 현실을 기사화해 독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고 또 그 사회의 희망을 안겨줄 책무가 있다.
또 독자들도 알 권리가 있어 언론에게 “어떤 뉴스를 제공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따라서 언론은 독자의 발언권보호를 이행할 의무도 지며 목소리 없는 대중의 지팡이가 되어 힘센 자 의 추한 힘의 행사로부터 독자를 보호할 의무가 언론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언론인하면 퓨리처를 떠올리는 것은 그가 신문으로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외국어인 독일 말을 하는 헝가리 계 이민 1세로 언어장벽을 넘어 신문을 성공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센트 루이스 포스트 디스페치에서 뉴욕 월드로 신문왕이 되기까지 그가 남긴 말 중 “사회적 부정을 보고 외면한다면 이는 언론이 아니다. 만약 이를 보고도 기록을 안 한다면 이는 신문이라기 보다 단순한 잡기장에 불과하지 언론이라 칭할 수가 없다. 신문은 거울 같은 것으로 추하다고 비켜 갈 수가 없고 내게 불리하다고 가릴 수가 없다.” 고 했으며 게스트는 “세상은 항상 밝고 달콤한 것만이 아니다 어두움이 있으며 고통과 죽음이 있다. 언론은 세상을 그릴 때 밝고 어두운 면을 함께 보여주어야 된다.”고 했다.
“락” 은 언론학에서 “사회적 부정을 언론이 외면하고 묵언 한다면 이는 묵언의 동의에 속해 부정과 동격”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이렇듯 부정과 허위를 찾아내야 할 의무를 가진 신문의 역할은 미래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문이 없는 사회는 보기에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보이지만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개인적 목적을 위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지켜야 하며, 편집자는 그 공동체 여론에 부합되거나 반대되는 부분을 외면하거나 논조를 피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로 생각해야한다. 더욱이 광고주나 후원자를 의식해 잘못된 것이나 옳은 것을 보도하지 않고 피하는 것은 언론인이 아니라고 월터 리프만은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이렇게 진실 보도를 외면하는 신문은 언론매체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살아 숨쉬고 희망이 넘쳐나는 올바른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 개개인은 물론 공인, 언론이 한박자가 되어 잘 한일은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잘못된 일에는 주위와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더라도 스스로 인정할 줄 아는 차원 높은 민주시민이 되어야 하겠다.
이렇게 공인과 언론의 기본자세를 장황하게 논 한 것은 민주주의와 정의사회구현을 위해 공인은 공인답게 언론은 언론답게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임무에 충실해야 된다는 취지에서이다.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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