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플로리다 백인선을 내며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플로리다 백인선을 내며

플로리다 백인선을 내며

일제의 마수가 민족의 가슴을 찢어 할퀴며 아름다운 땅 한반도를 강점하던 무렵인 1903년.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의 정월 열사흘 날. 채 동이 트기 전이라 검푸른 바다의 운무가 가득한 동해 앞 바다를 소리 없이 가르며 신천지로 향하는 작은 범선 ‘갤릭’호에 102명의 우리 미국 이민 선조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선조들의 가슴엔, 아마 꿈을 실은 만큼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고 가는 조국산하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처절함이 혼재해 있었을 것입니다.

배에 오르기 전 이별주 삼아 처자식과 혹은 친구들과 나눠 마신 탁배기의 얼큰함을 바다 위에서의 수십일 낮과 밤 동안 깨지 않으려 몸 뒤척이며 부둥켜 안았을 것입니다.

낯설어도 유만부득 , 철저히 생소한 이국 땅 사탕수수 밭에서 선조들은 그저 흘리고 또 흘렸을 것입니다. 눈물과 땀과 향수의 설움을…

그렇게 100년. 우리 선조들은 위대했습니다. 그 후손들인 우리들도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점에선 박수를 받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선조의 피땀을 토양 삼아 신천지 미국대륙에서 100년에 걸쳐 우리가 일궈 낸 텃밭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승리의 찬가로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신천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전 세계인들이 꼭 한번은 와보고 싶어하는 미국의 “썬샤인 스테이트” 인 플로리다주에 뿌리내린 우리 한인 이민역사는 이제 태양 빛 가득 머금은 오렌지처럼 풍성한 열매로 영글어 있습니다.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플로리다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성운의 군단처럼 그 긴 세월, 수많은 아름다운 삶의 족적을 누군가는 기억의 편린을 주워 모으듯 다소곳이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로리다 한인이민의 첫 커튼을 열어 젖히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호흡했던 인물과 단체들의 역사를 조명하고 정립해본다는 소명으로 소중하게 이 책자에 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국 우리가 살아온 세월과 역경과 고난과 환희와 승리의 기록에 한점 오차없이 일치합니다.

단순히 이민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태양의 땅에 ‘코리아’를 심으며 ‘한민족’을 외치고 ‘문화유산’을 계승시키며 ‘후손의 번영’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온 점이 현재 우리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기에 책자에 담긴 인물들이나 플로리다의 모든 한인들은 위대합니다.

한 인간의 인생여정을 한 인간의 눈으로 투영하고 짧은 필설로 묘사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한결같이 [가슴]으로 삶을 영위했듯이 가슴으로 그들을 조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1 대 1]의 대담으로 채취해낸 그들의 지나온 삶에 관한 이 소고들은 역설적으로 플로리다 한인들의 오늘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 자위합니다.

제작과정을 통해 또다시 절감한 것을 말미에 고백한다면 100년전 선조들이 처음 살얼음 밟듯 찍어 놓았던 족적들이 이제 신천지 곳곳에 매우 깊숙히, 웅장하게 찍혀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체감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플로리다 한인사회의 오늘이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숙한 증언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감당키 어려운 감격이었습니다.

한민족인 우리들이 위설로 뿐만 아니라 진실로 선구자적 기질을 지닌 위대한 민족임을 뼈마디에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색다른 체험들도 책자를 내는 큰 보람으로 꼽을 수 있었습니다.

책자가 완성되기까지 원고의 교열과 감수를 맡아주신 대기자 [미주한인신문인협회] 김원동 이사장님과 교정을 맡아 밤새 쓰라린 눈을 비벼대던 집사람(이선화)과 김이남 편집기자, 분주하게 뛰어 다니며 자료 수집과 정리를 해준 이승일 편집부 차장 그리고 취재중에 만난 모든 사랑하는 한인 동포들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심한 이 소고묶음을 이 땅위에서 영원토록 번성할 모든 한인동포들에게 감히 바쳐 올립니다.

한인 미주이민 100주년이 되는 해 싱그러운 5월의 새벽

플로리다주 탬파의 해변에서.

저자 한겨레저널 발행인 이승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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