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힐링여행<1305> 워싱턴 D.C 의 벚꽃 축제(여행 기행문)

김명열의힐링여행<1305> 워싱턴 D.C 의 벚꽃 축제(여행 기행문)

 

온갖 새들이 목청을 한껏 돋구어 노래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나서는 꽃피는 계절, 따듯한 봄이 돌아왔다.

SNS나 언론매체들은 앞 다투어 봄을 찬양하고, 축제를 알리는 뉴스들로 분주하다. 나는 지난 3월24일부터 27일까지 3박4일동안 워싱턴 DC의 벚꽃놀이 축제에 다녀왔다. 백악관에 근무하고 있는 딸의 초청으로, 바쁜 업무 일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시간을 내어 제 부모님을 위해 효도관광을 시켜주었다. 평소에도 봄이 되면 워싱턴 D.C의 벚꽃축제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딸이 백악관에 근무하면서 이번에 딸의 도움으로 벚꽃놀이를 겸한 그곳 주변도시들과 맛집, 유명 명소들을 둘러볼수 있었다. 이번의 벚꽃 축제의 피크타임은 3월24일부터 28일까지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벚꽃이 지기 때문에 피크타임의 벚꽃이 만발한 장관의 모습을 볼수 없기에 그 시간대에 맞춰서 딸이 우리 부부를 초청했다.

벚꽃축제(Cherry Blossom Festival), 매년 이맘때가 되면 워싱턴 DC의 봄은 벚꽃과 함께 활작 피어난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심궈진 벚나무 가지가지 마다 벚꽃뭉치가 마치 열매처럼 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려 장관의 모습을 연출해주고 있다. 이때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면 꽃잎이 바람따라 떨어지며 벚꽃 눈이 흩날린다. 이러한 광경을 보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고 더 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거리의 곳곳에서 이뤄지는 버스킹 공연, 불꽃놀이, 거리 퍼레이드, 연 날기기 행사, Sakura matsuri – Japanese street Festival 등등, 다채로운 국적의 요리들을 판매하는 푸드 트럭 까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또한 백악관을 비롯하여 Capitol Hill, 링컨 메모리얼, 각종 Museum, 워싱턴 기념탑 등등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건축물들과도 동선이 겹쳐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미국에서 열리는 벚꽃축제중에 가장 큰 규모인 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퍼스트 레이디 헬렌 태프트 여사는 그보다 앞선 1907년에 일본을 방문했다가 벚꽃의 아름답고 화사한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후 태프트가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시 도쿄 시장은 미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위하여 3000그루의 벚꽃나무를 기증했고 헬렌 태프트 여사는 워싱턴 디씨의 포토맥 강변에 벚나무를 심었다. 이후로 벚나무가 크게 자라면서 봄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면서 자연적으로 벚꽃축제가 생겨났다. 워싱턴 DC의 벚꽃축제는 100년이 넘는 유명한 사쿠라 축제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벚꽃 축제이다. 이 벚꽃축제가 열릴때마다 한국인들은 가슴이 아파야 한다. 벚꽃은 일본이 자기나라 국화라며 우정의 표시로 1912년 미국에 보내온 선물의 꽃이다. 역사는 1905년 7월27일 미 육군성 장교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수상 카쓰라 사이에 맺은, 즉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인정하고 댓가로 일본의 한국지배를 인준한다는 내용의 협정서에 서명한 소위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당시 기증한 벚나무들이 자기네 땅, 일본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전자 검사결과 우리나라 제주도 왕벚나무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마도 이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채취해간 것으로 보인다. 1943년 4월13일자 The American Eagle 에는 이 벚꽃나무에 대해 ‘일본산으로 잘못 알려진 워싱턴의 벚나무들이 진짜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이승만박사가 한국 벚나무 심기 행사를 열었다’고 보도된바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니 낭만 뒤 약간이 씁쓸함이 남는다. 아픈 과거지만 그 마저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의 일부이다. 꽃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아름다운 풍경속 낭만을 만끽하고,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해야겠다.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다. D.C는 콜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로, 미국의 50개주중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고 있는 행정구역이다. 컬럼비아 특별구는 1790년 7월16일 미국 헌법에 의해 연방구역으로 세워졌다.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 사이, 포토맥강 북쪽에 있다.

3월24일, 미국 워싱턴DC 포토맥강 인근에 조성된 인공호수 타이들 베이신(Tidal Basin) 주변에 심어진 약 4000그루의 벚나무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3월25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높이 170m의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 바라보이는 호숫가에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인파들이 활짝 피어난 벚꽃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워싱턴 디씨 벚꽃축제에는 약 2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와 이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해 통제되고 제약받는 벚꽃놀이이었는데, 올해는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없이

자유스럽게 구경을 할 수 있었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했던 마스크도 자율에 맡겨 쓰던지 말던지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졌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와 공원 어느곳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길거리와 공원 내에서는 이곳을 구경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심겨진 벚나무 숫자보다 사람들의 숫자가 몇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벚꽃 핀 장관을 보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191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태프트의 영부인 헬렌 태프트여사가 주미 일본대사 부인과 벚나무 2그루를 심은 것이 최초 시작이었다. 양국의 우정을 기리는 의미였다. 1913~20년에 1800그루를 더 선물했다. 첫번째 축제가 1935년 열렸지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중단됐다. 공습 사흘 뒤, 미국인들이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내기도 했다. 일본의 공습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1948년 축제가 재개됐지만 일본에 대한 반감을 우려해 벚나무 이름을 ‘일본 벚나무’에서 동양(Oriental 벚나무) 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은 전후 복구가 끝난 1965년 추가로 묘목 3800그루를 더 보냈다. 미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인들은 일본식 정원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을 곳곳에 세워 관리하면서 벚꽃축제가 워싱턴 디씨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 벚꽃놀이 축제 외에도 워싱턴을 방문했을 경우, 한번쯤 방문하여 관광해 볼수있는 명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미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권력기관인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이다. 백악관은 미합중국 워싱턴DC 펜실바니아 거리 N.W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의 공식 거처이자 주요 업무지이다. 1800년 존 애덤스 대통령 이후로 미합중국 대통령의 주거지로 이용되어왔으며, 집무, 외국사절 접견, 일상생활 등 모든 일들을 여기서 한다. 미-영 전쟁이 한창인 1814년 8월, 영국군에 의해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하고 백악관이 영국군에 의해 방화로 불타오르며 외벽이 검게 그을렸다.

영국군이 퇴각 후 복구사업을 하며 집무실과 관저의 외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했는데 이로 인해 백악관이라 불리우기 시작했다. 우리가족 일행이 백악관을 보기 위해 그곳을 찾은 3월26일은, 바이든 대통령이 마침 유럽을 방문중이라서 백악관에 없었고, 백악관도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다. 4월중에 개방하여 일반인들에게 백악관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는데, 내가 그 곳에 갔을 때는 아직 Open이 안돼 경내를 볼 수 없었고 다만 밖에서 겉모습만 볼 수 있었다. 이곳 역시 미국의 유명한 관광명소중 하나라서 그런지 이곳을 보기위해 찾아온 방문객(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음은 미국 의회 의사당이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미국 연방정부의 입법부인 미국의회가 있는 건물이다.

워싱턴 D.C의 National Mall 동쪽끝에 있는 Capitol Hill 위에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사당은 지리상 컬럼비아 특별구의 중심에 있지는 않으나 4개 지구를 가르는 원점이 된다. 초기 건물은 1800년에 완공되었다.

허지만 1814년에 영국군이 쳐들어와 워싱턴 디씨에 불을 지르면서 의사당도 함께 전소하여 미국 초기에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의사당은 약 5년 후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점차 미국의 국력이 팽창함에 따라 건물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다. 특히 건물 위에는 위대한 돔이 얹혀 졌고, 상원 회의장이 북쪽건물에, 하원 회의장이 남쪽건물에 각각 설치되며 미합중국의 정식 의사당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백악관과 대법원 건물같이 미합중국 국회의사당 역시 백색을 바탕으로 한 우아한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동쪽과 서쪽면이 정면인데, 이를 프론트,,. 즉 Front라 부른다. 다만 동쪽면에서만 외교사절 접견과 같은 공식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나의 딸이 살고 있는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니 국회의사당 건물이 지척이다.

이곳 저곳을 며칠동안 구경하고 다니다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몸도 피곤하다. 그러나 이번의 여행도 너무나 보람되고 즐거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항상 부모님을 생각하며 해마다 효도관광을 시켜주는 나의 딸이 고마울 뿐이다. 3박4일이 짧게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상념에 젖어든다.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수동적으로 사물들을 주시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낯선곳에서 나를 만나는 자기 발견의 경험이다. 자신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 이라는 선물을 갖고 온다. 일상의 시작과 끝이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의해 규정된다면, 인생의 시작과 같은 의미 있는 경험에 의해 규정된다. 여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자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절차다. 아쉽게도 지난 2년동안은 코로나19로 인한 자신의 일상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지나갔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단조로웠다. 시간에 리듬이 없었고, 맺고 끊는 맛이 없었다. 자연적 시간만 존재할 뿐, 의미의 시간은 멈춰 서있었다. 이제는 코로나19이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듯하다. 언제나 늘 상 우리몸에 밀착되어 필수품으로 따라다니던 마스크도 자율에 맡겨져 있어 제 맘대로 쓰던지 말던지 자기의 마음대로다. 이제는 과감히 구속된 일상을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자유롭게 여행도 해보자. 그곳이 어디이건 간에 힐링이 되고 마음도 편해진다. 그리고 행복도 덤으로 찾아온다.

만일 인간에게 자의식이 없다면, 그리고 진정한 자기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여행은 결코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여행이란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진정한 자기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이번 여행역시 내게 주어진 삶의 가치와 보람을 선물 받은 뜻깊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5/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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