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당신의 바닥 짐(Your ballast), 그리고 인생의 짐들

<김명열칼럼> 당신의 바닥 짐(Your ballast), 그리고 인생의 짐들

 

유명한 맨발의 인도 전도자 선다 싱(Sunder Singh)이 희말라야 산길을 걷다가 동행자를 만나 같이 가는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있는 노인을 발견하였다. 선다 싱이 제안을 하였다.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으니 함께 업고갑시다” 그말에 동행자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동행자는 그냥 가버렸다.

선다 싱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고 얼마쯤 가다가 길에 죽은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선다 싱은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속을 걷다보니 등에서는 땀이 났다.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서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선다 싱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 人은 두사람이 서로 등을 맞댄 현상이다. 나와 등을 맞댄 사람을 내치면 나도 넘어진다는 것이 人의 이치이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기대고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살이이다. 히말라야의 동행자는 그것을 잊고 행동하다 자신의 생명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훗날 어떤이가 선다 싱에게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 할때가 언제입니까?” 선다 싱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지고 가야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짐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때가 위험하다는 것이 선다 싱의 일침이다. 먼 바다를 떠나는 선박도 항해를 시작하기 전 배의 밑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다.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채우는 바닥짐(Ballast) 이다. 우리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TV에서 할머니 혼자서 손자를 키우는 다큐를 본적이 있었다. 아들 내외가 이혼을 하고 손자를 맡기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웃사람들도 안쓰러운 모습에 혀를 찼다. 할머니는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아침부터 식당일을 하며 “저 애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는가?”라는 마음으로 손자를 키웠다. 손자에게 할머니가 목발이었다면 할머니에게 손자는 삶을 지탱하는 바닥짐이었다. 나와 등을 맞댄 그 사람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삶의 항해를 지켜주는 바닥짐이다.

Ballast는 선박의 무게에 중심을 낮추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적재하는 ‘바닥 짐’을 뜻한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 하나를 잘 넘게 하였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한다. 전해 듣기로는 세월호가 적재량을 늘리기 위해서 평형수 탱크에서 물을 빼는 바람에 배의 복원력에 손상을 가져와 침몰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너무 많이 배에 짐을 실어서 중량을 초과한 이유도 있지만…….. 영어 Ballast는 기구나 비행선의 부력(浮力)을 조정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모래주머니나 물주머니, 철도와 도로 등에 까는 자갈 등을 가리키며, 형광등 따위의 전등에서 시동전압(始動電壓)을 준다든가 전류를 제한하는데, 우리마음의 안정감을 뜻하기도 하고 동사로 쓰일 경우 바닥짐을 싣는다, 밸러스트를 달다, 자갈을 깔다, 안정시키다 등의 뜻이 된다. 옛날에는 배에 돌을 실어 바닥짐으로 썼는데 선박이 커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돌 대신에 탱크에 물을 채워 쓰면서 평형수라 칭하게 되었는데, 경주용 자동차와 비행기에는 반드시 사용된다고 한다. 돌이건 물이건 즉 바닥짐이라 하건 평형수라 하건 균형을 잃거나 동요가 일 때 위기에 대비하고 안정을 취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 문제는 평상시에는 그 소용을 느끼지 못하므로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쉽고, 따라서 점검하고 관리하는데 소홀하기 십상인 것이고, 때로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무지하여 아예 갖추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관계가 흔들릴 때도, 집단 내에 대립과 갈등이 생길 때도, 내면에 심한 감정의 동요나 생각의 혼란이 생길 때도,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극복과 해결을 위한 균형추가 필요하다. 짐이라고 여겨 무조건 다 내버리면 오히려 위기를 초래하거나 위기가 더욱 증대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꼭 따라다니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짐이다. 짐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 없이는 살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주변에는 수많은 짐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짐들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공항에 가보면 빈손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거운 짐을 부치고, 그것도 부족하여 기내용 가방을 끌고, 큰 가방은 어깨에 메고, 그리고 손에는 저마다 작은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쉽게 본다.

작가 김홍신이 쓴 ‘단 한번의 사랑’에서 인생의 명답이란 글이 있다. “짐에는 버려야 할 짐과 지고가야 할 짐이 있지요.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져야할 짐을 스스로 기꺼이 지고 가지요. 쓸데없는 짐은 버리고 자신의 짐을 지고 간다면 가야할 길을 찾은 거지요. 인생의 명답을 찾는 길이란 그런 겁니다” 작가 김홍신은 버릴 짐은 버리고 지고 가야할 짐만 지고 가는 길이 인생의 명답이라고 하지만, 버릴 짐과 지고 가야할 짐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져야 할 짐을 버리기도 하고 또 버려야 할 짐을 힘들게 지고 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짐이 어떤 짐이든 그 짐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인생의 짐을 가지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약속을 해 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11:28)”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그 모든 문제들은 내가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그 문제들을 별도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육체의 한계로 인한 짐, 가족들 속에서 져야할 짐,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져야할 짐, 등등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무언가 모를 답답함으로 방황하기도 한다. 세상의 잣대로 어떤 성공이나 성취가 우리를 만족시켜줄 것 같지만, 그것들은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아서 거기에 의지하고 기대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인간의 모든 짐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짐들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성경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 하셨는지 모른다.

이 땅에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피할 곳이 없다고 본다. 우리의 짐을 맡기고 진정한 안식을 취할 곳이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술과 쾌락으로, 스포츠와 취미생활로, 때로는 우상앞에 절을 하면서 자신의 짐들을 맡겨보려고 하지만 거기서 해결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쾌락을 쫓다가 신세를 망치기도 하고, 배금주의에 몰두하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난감함에 빠지기도 한다. 갈등과 또 다른 갈등이 상존한다. 악인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은 폭력과 분쟁, 무법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온갖 험담과 저주로 얼룩져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인생의 어려움과 장애물이 힘과 복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짐 없이 사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크던 작던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이 지어야 할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짐들은 힘들지만, 그 어려운 짐이 어느 순간 나의 인생의 힘이 된다. 짐 인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그 짐이 결국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하고, 그 순간을 견디게 했던 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짐이 힘들고 어려워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어도, 이 짐을 벗으면 힘도 사라지는 것을 깨닫는 다. 자녀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부부의 관계가 힘들고 어려워도, 벗어버리고 싶은 짐처럼 느껴져도, 바로 그 짐이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고, 또 일어나게 하고, 버리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짐을 버리면 능력도 사라지고 힘도 사라진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인도의 성자 선다 싱이 행한 일처럼 지금은 힘들고 버거운 짐이라도 그것이 오히려 나를 살리고,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짐이 결국 우리의 인생의 복이 되고 밑거름이 된다. ‘내 등의 짐’이라는 시에서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등에 있는 짐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살았고, 사랑과 용서와 겸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짐이 자신의 스승이고 조련사였기 때문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94/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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