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부르고 싶고, 정이 담긴 이름, 어머니(엄마)

<사진은 이번 어머니날을 맞아 나의 자녀들이 제 어머니(엄마)에게 선물한 꽃다발과 사랑의 연서(戀書)이다>

<김명열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부르고 싶고, 정이 담긴 이름, 어머니(엄마)

나의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엄마.

예의범절을 따지는 사람들은 철이 들면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그 호칭 자체가 부모님에 대한 공경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어머니가 엄마의 존댓말은 아니다. 두 단어는 유아어와 성인어의 차이일 뿐이다. 어머니의 존칭은 어머님이다. 국어사전도 ‘엄마’는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엄마라고 부를 때는 웬지 “나는 당신의 영원한 새끼입니다” 라는 말이 후렴처럼 느껴진다.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먹고 머리가 하얘져도 내 새끼다. 엄마라는 호칭은 확실한 피붙이의 관계를 과시한다.

거기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엄마’는 생물학적 존재, ‘어머니’는 가족의 위계질서 적 냄새가 난다. 그런데 왜 딸들은 평생을 한결같이 엄마라고만 부를까. 엄마와 아빠를 뜻하는 어린아이의 말은 신기하게도 세계 여러나라 언어에서 비슷하다. 어머니 계통의 말은 대개 ㅁ(m)의 발음이다. 엄마,마마,마망,맘마,맘이다. ㅁ의 글자 모양처럼 부드럽고 여성적인 발음이다. 아버지의 어휘는 ㅂ(p)의 발음이다. 아빠, 파파다. m이나 p발음의 입술소리다. 아기가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자연스럽게 나는 인간의 첫 옹알이다. 중국어도 엄마는 ‘마마’, 아빠는 ‘빠바’이다. 우리 옛 말에서 부모는 엄(母)이나 압(父)의 어근(語根)에서 발전했다.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를 때에야 비로써 고향의 냄새가 난다. 엄마는 바로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그리고 유년의 젖이다. 한자 어미 모(母)는 여성의 가슴모양에서 나왔다. 고향은 우리가 돌아갈 곳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들의 마지막 대사는 거의 대부분 “집에 가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어”였다.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전사한 일본군인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참전군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마지막 순간에는 거의가 다 오카상(어머니)를 부르다 죽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 세상 어느 곳에든 내가 존재하는 곳에 있다. 힘든 노동일을 할 때, 책상에 앉아서 근무를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내가 아파서 신음할 때 등, 언제나 울 엄마는 나의 머리와 가슴, 마음속에 붙박이로 자리 잡고 수시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위로자가 되며 힘과 의지가 되는 원천이 된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노년기에 들어섰지만, 이 나이에도 어머니라는 석자의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고인다.

효도를 하고 싶어도 어머님이 계시지 않아 할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수욕정이부지(樹欲靜而不止=나무는 조용히 살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어와 흔들어대고), 자욕효이친부대(子欲孝而親不待= 자식은 효도를 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분들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열과 성의를 다하여 부모님을 공경하고 말벗이 되세요. 정작 부모님의 소중함을 알 때는 이미 늦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지난달 5월9일은 어머니날이었다. 한국에는 ‘어버이 날’이 있지만 미국에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 있다.

5월 둘째주 일요일이 바로 어머니날이다. 미국 어머니날의 기원은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살고 있던 Anna Jarvis라는 여인이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 추도식을 연 것에서 시작되었다. (어머니날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서는 지난해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렸기에 이번에는 구체적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런데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Mothers Day를 만든 Jarvis는 나중에 Mothers Day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를 칠만큼 후회를 했다고 한다. 본래 그녀가 원했던 ‘어머니 날’은 자녀들이 어머니를 찾아가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시중에는 Mothers Day라는 구실을 내세워 온갖 종류의 꽃다발, 쵸콜렛, 풍선, 카드 등의 상업적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선단체들은 어머니날을 구실로 기부행사를 펼치기도 했는데, 그녀는 이것도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Mothers Day 캠페인을 벌일 때와 마찬가지의 열정으로 그녀가 만든 이 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응징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Mothers Day Salad 라는 음식을 팔던 식당에서는 샐러드를 시킨 후 요리가 나오자 쓰레기통에 접시를 던져 넣고 걸어 나오기도 하고, 어머니날 초콜렛에 반대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들의 컨퍼런스를 훼방 놓기도 했으며, 어머니날을 내세운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다는 이유로 First Lady였던 엘레노어 루즈벨트를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그녀의 행동을 두고 세간에는 ‘미친 여자’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막고자 했던 Mothers Day의 상업화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 마켓에 가보면 현대의 어머니날 마케팅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아울러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일년에 한번만이라도 어머니날을 맞아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드리며 어머니께 감사와 사랑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어머님의 은혜와 사랑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으며 노래의 가사에도 있듯이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 그 은혜와 사랑은 실로 측량할수 없는 고귀하고 영원한 사랑과 은혜이다. 다음은 이곳에 어머님의 그 은혜와 헌신적인 사랑을 입은 어느 자식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 이흥열(李興烈)이라는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재능 있는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공부를 더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 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은 모조리 뒤져 쉼 없이 솔방울을 긁어모았다. 불 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서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가마에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다. 그래서 ‘이흥열’ 그가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 박사의 시(詩) ‘어머니의 마음’ 이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 어려서는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 자라서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맘 / 않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 고우시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 /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 하여라 /.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위해 /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어 머 니 ~ ~ ……………………..! !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틴 처칠’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기자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전수 조사해서 ‘위대한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를 읽은 처칠은 신문사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짤막한 편지 한통을 보냈다.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이 나침판이었습니다”. 미국의 전 레이건 대통령도 어머니날 특집 프로에 출연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바로 나의 어머니, 넬리 레이건 여사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느 학교의 이야기이다.

신학기인데도 선생님이 부임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무료한지 여럿이 모여 모래 쌓기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한 노인이 안타까운지 ‘선생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는가?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가게나. 그대들을 맞으러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자네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이야”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고 말했다. “왜 이리 늦었어, 배고프지? 어서 들어가자”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의 정이 인성교육이었다.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시작하다보면 의외로 위대한 결과를 수없이 만들어낸다. 그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존 F 케네디이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먼저 배우는 단어는 맘마고 엄마이다. 태어나서 제일먼저 보는 것도 엄마의 눈동자 이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 언제 생각해도 눈물나는 이름의 어머니 (엄마), 그 고마우신 이름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계시다. 젊은이건 나이든 어른이건 간에 어느 누구에게나 부르면 눈물나는 이름 어머니, 눈에 흙이 덮여도 부르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사람 나의 어머니(엄마)………… 오늘은 유독 너무나 많이 어머님이 생각난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는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나의 어머니라서 더욱 그립고 보고 싶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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