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소중한 우정, 진정한 친구

<김명열칼럼> 소중한 우정, 진정한 친구

친구(親舊), 가깝고 오래 사귄 벗.

자신의 일생을 살면서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2명만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며 헛되게 살지않은 인생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친구라는 말은 참으로 믿음이가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살다보면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중에서 친구간에 나누는 우정역시 너무나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진정한 우정과 마음을 터놓고 흉허물 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는 사람은 세상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잠시적인 행복이나 웃음보다는 가슴속깊이 존재하며 남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로…….. 각자의 만족보다는 서로의 만족에 더 즐거워하는 그런 친구가 당신과 함께 이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변지 않는 우정으로 서로를 의식하고 의지하며 행복한 우정을 나누며 재미있게 교제하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보람된 삶의 결실이다.

오래될수록 더 좋아지는 포도주처럼 진정한 친구로서의 아름다운 우정이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된다. 상대의 장-단점까지 알고 있는데도 끝없이 좋아해주는 친구의 우정이라면 가장 진실하고 참된 우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친구라 해도 서로의 관심도, 그 무엇을 실현하기 위한 의식적인 내적 욕구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성격과 취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진정한 우정이란 같은 자격으로 인해 수평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사랑이면서도 서로가 자립하려고 하는 걸 존중하며 지탱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서로가 같은 사이이기 때문에 실수 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우정의 가장 좋은 점이기도 하다. 친구 사이에서는 서로 밝고 넓은 마음으로 숨기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신뢰속에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그 어떤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친구가 되고 우정이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우정에는 상대가 품고 있는 생각이나 견해에 깊이 동감할 수 있는 선의(善義)와 감수성이 필요하며, 진실성을 유지 못하고 과장한다면 우정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어느 한쪽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위축감을 느낀다 해도 동등성의 원리가 깨져 우정이 계속되기란 힘들 수밖에 없다. 우정이 성립하려면 서로 호의를 주고받는 관계가 돼야 하고, 사랑이 성립하려면 서로 우정을 느끼면서 서로 간에 친절과 품성이 좋도록 해야 한다. 우정의 깊은 의미와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서로 격려하고 충고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날 때마다 선의의 격려를 주고받고, 좋은 자극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우정이 진정한 우정이기도 하다.

생산적, 창조적 우정이 되도록 노력해가는 그러한 우정이라면 많은 세월속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이 느낄 수 있고 인간관계를 넘어 영혼의 교감까지 할수 있다면 축복받은 우정이고 행복한 우정이 된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피시아스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하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피아시스에게 작별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형수들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겠다며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을 간다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왕이 고심하고 있을 때 피시아스의 친구 다몬이 보증을 서겠다며 나섰다. “폐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 주십시요”. “다몬아 만일 피시아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쩌겠느냐?”. “어쩔수 없죠. 그렇다면 친구를 잘못 사귄 죄로 제가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피아시스를 믿느냐?”. “폐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왕은 어이가 없듯이 웃었다. “피아시스는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겠지.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다”. “저는 피아시스의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요 폐하”. 왕은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다.

다몬은 기쁜 마음으로 피아시스를 대신해 감옥에 갇혔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밝았다. 그러나 피아시스는 돌아오지 않았고,사람들은 바보 같은 다몬이 죽게 됐다며 비웃었다. 정오가 가까워졌다. 다몬이 교수대로 끌려나왔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다몬의 친척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아시스를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목에 밧줄을 건다몬이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다. “나의친구 피아시스를 욕하지 마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떻게 알겠는가?”. 죽음을 앞둔 다몬이 의연하게 말하자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집행관이 고개를 돌려 왕을 바라보자 왕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교수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재촉하며 달려오며 고함을 쳤다. 피아시스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몬을 풀어주십시요. 사형수는 접니다”.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작별을 고했다. 피아시스가 말했다. “다몬 나의 소중한 친구여, 저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피아시스 자네가 먼저 가는 것뿐일세.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우리는 틀림없이 친구가 될꺼야”. 두사람의 우정을 비웃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몬과 피시아스는 영원한 작별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왕이 일어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피아시스의 죄를 사면해주노라”. 왕은 그 같은 명령을 내린 뒤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시종만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런 친구를 한번 사귀어보고싶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살수 없다. 그래서 한자로 사람(人)은 원래 뜻은 아니지만, 서로 의지한 모습으로 쓰여있는 것 같이 보인다. 서로 의지하고 살다보면 친한 사람이 생기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친구란 한자로 친할 친(親)과 옛 구(舊)로, 옛날부터 친한 사람을 뜻하고 우정은 벗 우(友)와 뜻 정(情)으로 친구의 정, 즉 우정을 말한다. 조금 전에 만난 사람을 다음에 만나면 아는 사람이 되고 또 다음에 만나면 친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나이가 같거나 비슷하면 친구가 된다. 친구는 우정의 깊이가 모두 다르다. 아무리 오래된 어린 시절의 친구라도 우정의 깊이가 다르고, 학창시절에 사귄 친구도 우정의 깊이가 다르다. 최근에 사귄 친구도 우정의 깊이가 다르다. 특히 사춘기때 사귄 친구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친하고 우정이 깊다. 이것은 인성이 성숙해지는 때라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우정의 깊이에 따라 친구를 이용하기 위해 사귀는 예도 있고, 재력이나 권력을 보고 사귀는 예도 있다. 이런 친구는 우정이 깊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신분이나 재력을 보지 않고 사귀는 친구, 어려울 때, 외로울 때, 병들었을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고 우정이 깊은 친구이다. 학교 동창 이라고 하지만, 아는 친구지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생활에 있어 학연을 중시하고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자랑을 하는 예도 있다. 물론 사회생활에는 인맥이 중요하여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정이 깊은 친구 몇명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 친구 때문에 마음도 상하고, 믿는 친구에게 금전거래를 했다가 우정이 깨지는 예도 있고, 믿고 보증을 서 주어 패가망신하는 예를 뉴스를 통해 가끔씩 접할 때가 있다. 이는 모두 우정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당하는 친구는 우정이 깊어 친구를 믿고 금전거래를 했을 것이고 보증을 서 주었을 것이다. 물론 신세를 지는 친구도 처음에는 다른 뜻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정이 깊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어떤 친구는 친구가 찾아와 금전을 신세지려고 하자 잘못하면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생각에 필요한 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보태 쓰라고 돈을 준다. 친구는 처음에는 자존심 상하고 섭섭하겠지만 나중에 친구의 뜻을 알고 열심히 하여 성공하는 예도 있다.

외국 사례의 이야기로, 자기가 죽으면 새벽 4시경에 장례를 치러 달라고 유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친구의 장례식에 달려온 친구가 과연 몇명이나 될까?. 그는 진정한 친구를 찾아 자기의 유산을 나눠줬다고 한다. 친구도 나이가 들면서 서로 예의를 지키고 우정의 깊이만큼 서로 존중하여 정을 나누고 사랑해야 한다. 노후에 가끔 안부전화나 문자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 몇년에 한번씩이나마 만나 소주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 외로울 때 전화 한통 할 수 있는 친구로 깊은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