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후회속의 우리네 인생

<김명열칼럼>  후회속의 우리네 인생

 

정원 구석, 풀숲에서 밤을 새워가며 구슬프게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서늘한 새벽하늘을 가르며 어둠속에 잠들어있는 세상속의 정적을 깨치고 있다.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수선하고 회오리바람 속을 헤매는 듯 한 갈등의 세월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앞날은 어떻게 살아가고 헤쳐 나갈지 방향을 설정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다. 자연속의 산과 들은 풍성하게 여물어가며 나뭇잎들은 화려하게 가을을 위한 치장에 열중인데, 추악하고 더럽게 죄악속에 묻혀 허우적대는 인간세계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평범하게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은 그때 그 자리로 가을을 돌려주었건만, 갈수록 독선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문명의 병폐는 대기의 공해뿐 아니라 문명과 정치사상의 분리의 죄악속에서 오늘날 현실의 오염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길이다. 즉 나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인생을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요즈음 명백한 착각속에 살고 있다. 물론 인간이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오늘 우리 현실이 혼란과 분열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죄의식과 책임을 느낄 줄 모르는 일부 지도자층과 부유층의 몰지각은 우리들을 허탈감과 무기력증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 변화되어야 한다.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생활의 풍요로움 대신 빈부의 격차만을 심화시켜주었고, 결국은 삶이라는 그 자체를 돈이라는 추악한 물질과 순간의 향락이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기회주의 성향으로 변모시켜놓았다. 가을은 가고 또 오고, 밤은 가고 새벽은 오고, 사람들은 태어나고 그리고 죽고……..이러한 모든 순환의 법칙에서 우리 인간들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겠다. 어린이는 동심으로 돌아가고 어른은 양심으로 돌아가며, 추악한 악과 사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해서 각자 자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진리를 배우고 거짓이 없는 것을 배워야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어떻게 살면 바르게 사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고작 생존하는 것이 70,80이라고 한다면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돈, 명예, 권력 등 물질의 노예가 되고 돈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은 모두 버릴 물건들인데 왜 이토록 물질의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는가. 좀 더 먼 안목을 가지고 이해와 설득, 사랑과 인정을 가지고 살자. 물질에 구속되지 않은 유연자재한 자세와 마음으로 세상을 살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과 아무것도 들지 않고 산에 오르는 사람을 비교해보자. 전자는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후자는 가볍고 자유롭다. 인생을 사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욕심, 허영심, 이기심, 질투심 등의 이러한 추악스럽고 더러운 것들을 떨쳐버리고 주어진 삶을 평화롭고 후회없는 인생을 윤택하게 살아가자. 후회 없는 인생이 참으로 보람된 삶이며 인생이다.

크든 작든 후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옥에 가면 ‘할껄’ 이란 후회와 탄식의 말이 차고 넘친다고 한다. 유행가 가사에도 ‘있을 때 잘해’와 ‘때는 늦으리’ 라는 구절이 교훈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물론 거기에는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고통도 따른다. 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것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무해주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상머리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생각’은 삶에 깊이를 더해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고 사는 듯 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생을 마감하며 ‘그땐 그랬었으면 더 좋았을껄’ 하며 후회를 하는데,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하고 싶지만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후회다. 여기에는 보통 두 종류의 후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행동의 후회’와 ‘비 행동의 후회’ 이다. 앞의 후회는 글자그대로 실행한 행동으로 인해 후회가 생기는 경우다. 가령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어렵게 고백을 했는데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을때 “아 ! 그때 사랑을 고백하는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반면에 같은 짝사랑이라도 고백할 기회만 노리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을 놓쳐서 후회가 생겼다면 그것은 비 행동에 따른 후회다.

“아 ! 그때 고백을 했어야 하는데…..”하고 주저주저 하다가 망쳐버린 기회에 대한 후회가 비 행동의 후회다. 결과에 만족치 못해 생긴 행동후회는 결과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이미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합리화나 정당화, 아니면 체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적으로 후회를 경미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공산이 크다. 본인이 덜 아프기 위해서도 말이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당장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경험을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어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그 고통의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망각은 크나큰 축복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뇌는 일단 완결된 사건은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쉽게 잊어버린다. 정말로 큰 문제는 비 행동에 따른 후회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수반되지 않았기에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떠한 결과도 도출되지 않는다. 이는 앞서 합리화나 체념처럼 후회를 낮추는 인지적 처리과정이 애초부터 어렵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미련과 후회는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만 간다. 사랑고백을 못할 당시에는 약간의 후회가 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다가 급기야는 오뉴월에도 서리를 만든다는 한이 되고 만다. 완결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진 못하는 이런 ‘미완성 효과’로 인해 후회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호주의 어느 큰 병원에서 호스피스 간호사로 근무하는 브로니 웨어의 말을 전하겠다. 그녀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했던 후회들을 모아 ‘죽을때 가장 후회되는 다섯가지’라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리고 거기서 포스팅한 글을 모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라는 책을 펴냈다. 생의 마지막순간에 하는 다섯가지 후회는, 내 뜻대로 살아볼걸, 일을 좀더 적당히 하면서 살걸, 내 기분에 좀 더 솔직하게 살설, 오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걸, 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 볼걸.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이 죄다가 가슴에 남고 또 남을 비 행동의 후회뿐이다.

우리는 인생을 아무리 완벽하게 살았을지라도 누구나 후회는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삶은 두번이 없고 또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후회 없는 삶과 인생을 살기란 정말로 어렵다. 그래서 후회는 어찌 보면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해야할 필수 과정인 것 같다. 후회는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지만, 후회를 통해 반성하고 개선의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인생을 즐겁고 복되게, 재미있고 보람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가 되면 아무리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며 크게 후회를 한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희귀한 암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활동력은 도저히 암 환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왕성하고 활동적이었다. 스티브잡스는 후회 없는 오늘을 살기위해서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일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날들을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남은 삶이 몇십년 예정이 되어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대단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이미 죽음을 예비해두고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오늘을 보내는 이 순간, 시간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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