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깊은 마음속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한 친구.

<김명열칼럼>  깊은 마음속 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한 친구.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진실한 우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없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존재는 없을것이다. 인간은 혼자살 수 없는 만큼 너 없는 나를 생각 할 수가 없다고 보겠다. 근대에 이르러 하루가 다르게 온갖 과학기술문명이 인간생활을 변화, 발전시키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인간관계에서 기계적 관계로 변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격변과 변천하는 사회의 톱니바퀴에 엇물려 스스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다만 그 사회적 조직체 속에서 돌아가는 대로 적응해가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일부 층에서는 특별한 친구를 가질 필요가 없고 또한 가졌다 해도 유사시에 특별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것은 이해관계 조정에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거기에 기성(旣成)윤리를 선행시킬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이러한 삭막한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것이 현대 인간관계의 정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학생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가장 귀중한 인간관계는 진정한 친구의 윤리적 도리였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든가?….

조선시대에는 인간관계를 오륜(五倫)으로 규정지었다.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붕우(朋友)의 정상관계를 가장 기초적 훈육으로 붕우, 즉 친구의 정상관계는 믿음(信)이라 했다. 서로 믿고 신용이 확립되고 신뢰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면 오륜이 인간관계를 계층화시키고 정체와 폐쇄에 빠지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붕우유신을 오륜중 하나로만 생각하여 이에 고정시키고 그것은 모든 것의 밑바탕으로 삼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보겠다. 붕우는 평등과 자유를 기초로 하고 사귀는 것이 인간관계라 하겠다.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자유를 선행조건으로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부자관계에도, 민관관계에도, 그리고 부부나 장유관계에서도 친구라는 평등개념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특수 관계를 맺도록 해야 했다. 오륜이 계층개념에 고정된 것은 평등과 자유라는 친구 되는 도(道)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사회의 장점은 우도(친구의 도리)를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로 삼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아들을 고자세로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막힘없이 진실을 토로하면서 상의하는 것이 평화롭고 정이 넘치는 가정이며, 부부의 기반도 서로 친구가 되며 자유롭고 진실된 바탕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결코 남존여비나 부자유의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는 것이 현대가정이다.

그러므로 친구되는 도(道)는 오직 진심을 바탕으로 좋고 나쁜 것은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우정 있는 ‘충고’를 해주는 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진정한 친구의 도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구간의 첫째로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진실이다. 친구끼리 서로 속이고 질투하고 모해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천명’을 어기는 것이다.

흔히 이해관계에서, 자존심에서, 그리고 우정에서 배신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 추호의 악의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친구가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방치하거나 방관한다면 그것은 친구로서 도리가 아니다. 때에 따라 직언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강요까지도 해야 한다. 또한 친구의 의견과 말을 경청하며 가능한 경의와 순종으로 응답을 보여야한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선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우정의 연속을 당연히 원칙으로 해야 한다. 진실 된 사랑은 악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성언(聖言)이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친구가 있게 마련이다. 친구가 많은 사람도 있고, 친구라곤 불과 한두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란 대체 무엇인가?. 친구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많고, 친구 사귀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늘 부담감이나 괴로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가족보다는 오히려 친구를 더 가까이 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사이라 아무런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내다보면 너무 경우 없는 행동으로 나오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친구란 이름의 존재 때문에 말도 많고 탈이 많기도 하다.

친구는 남자친구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으며, 술친구도 있고 수다 떠는 친구도 있는 등, 이름을 붙이기 나름이지만, 가족생활이나 사회생활만큼 친구생활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경우든 분명한 것은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영위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떤 친구가 좋은친구일까?. “어려울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 즉 내가 어려울 때와 친구가 어려울 때 등 두 가지의 경우이다.

전자는 내가 말할 수 없이 여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친구가 나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던질 수 있을까? 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친구가 아주 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던져줄 수 있을까 하는 경우이다. 자신이 아주 힘이 있고 부유할 때 주위의 그 많던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몰락한 자신앞에서 모두 훌훌 떠나가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대로 몰락한 친구 곁을 쉽사리 떠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친구를 가볍게 사귀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힘과 부의 실체, 혹은 이해타산에 의해 친구가 쉽게 생기기도 하고 쉽게 사라지기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난 인간사의 보편적 양태지만 오늘날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세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러기들은 먼곳으로 날아갈 때 여럿이 함께 날아간다.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날면 지치지 않고 더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날면 10Km밖에 못가지만 여럿이 함께 날면 17Km까지 더 갈 수있다. 기러기가 날아 갈때 V자 모양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이유는 맨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날개를 펄럭일때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상승기류를 만들기 때문에 뒤에 가는 기러기가 그만큼 힘들이지 않고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는 날아갈 때 조용히 날지 않는다. ‘끼욱 끼욱’하는 소리를 내는데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 여기 있어” 하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맨앞에서 나는 기러기한테 “힘내, 힘내” 하며 응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만일 기러기 한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함께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 경우 반드시 서너마리의 기러기가 낙오자와 더불어 머문다고 한다. 기러기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 옆에서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이와 같이 기러기와 같은 우정을 찾아보기가 힘든 삭막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의리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기러기에게서 진정한 우정을 배워야한다.

유안진의(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히 없을수록 영원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은하며, 깊고 신선하고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 글월의 한 문장, 한 귀절에도 공감하며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마음 따듯한 순수한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한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는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의 일생에 한 두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기를 바란다. ‘당신께서는 이러한 의리 있는 친구를 몇이나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당신께서는 진정 누군가의 의리 있는 친구입니까?’. ‘당신은 진정 친구들에게서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나요?…….’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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