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찔레꽃

<김명열칼럼>  찔레꽃

 

지금 이맘때쯤이면 내고향 뒷산에는 특히 찔레나무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게 피어난다. 찔레꽃은 해마다 5~6월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전하면서 우리들곁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친근감 있는 꽃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소박하고 이렇게 고울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초록의 잎사귀와 잘 어울려 작고 하얀꽃이 달려있는 모습이 왜 그리도 나의 어머니모습과 똑같은지 모르겠다. 찔레꽃이 만발하는 이때가 되면 보리이삭이 패고 찔레꽃 은은한 향기를 가득 실은 바람이 보리밭이랑을 휘젓고 지나간다. 그때 일렁이는 보리밭이랑을 보며 보리피리를 불던 생각이 난다. 찔레꽃은 농촌에서 김매기가 한창일 때 밭두렁에 화사하게 피어나서 밭에서 김을 매시는 어머니에게 하얀 웃음을 전해주던 그런 꽃이다. 찔레꽃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꽃이다. 그렇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꽃이다. 가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감히 꽃을 꺾고 싶어 할 마음을 주지 않는다. 찔레꽃은 자연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산골처녀의 순수한 마음과도 같은 순박한 꽃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잘내리는 억척스런 우리의 어머니 같은 꽃이다. 소박해서 정겨운 꽃 찔레꽃, 찔레꽃 향기가 그립고 그때 그 향기를 함께 맡던 친구들이 그립다. 오늘 고향의 찔레꽃을 생각하며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속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하얀 꽃향기를 품어내는 찔레나무 찔레꽃, 찔레라는 이름은 가시가 찌른다는 뜻으로 찔레나무라고도 하며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쯤이나 초여름 일찍, 하얀색 또는 연분홍 꽃이 피는데 소박하면서도 은은한 향기와 함께 유난히도 흰옷을 즐겨 입던 한민족의 정서에도 맞는 우리나라의 토종 꽃이다.

봄에 돋아나는 연한 찔레순은 가벼운 단맛이 있어서 시골의 농촌사람들이나 어린아이들의 주전부리 먹거리로 인기가 좋았고, 특히 보릿고개 시절 어린이들의 간식거리였으며, 비타민이나 각종 미량 원소가 듬뿍 들어있어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찔레꽃은 해맑은 햇살을 좋아하지만 우거진 숲속에서도 조그만 틈만 있으면 꿋꿋이 피어나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찔레꽃의 향기는 매우 짙고 신선하여 우리조상들은 찔레꽃을 따다가 증류시켜서 화장수를 만들어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것으로 몸을 씻으면 예뻐진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는 해당화를 찔레나무라고도 한다. ‘찔레꽃 붉게 물든 남쪽나라 내고향~~’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찔레꽃은 흰색뿐 아니라 연분홍, 붉은 찔레꽃도 있지만 이시기에는 식물에 대한 분류가 정확지가 않은때라 가시달린 꽃은 그냥 찔레꽃으로 통칭했을 가능성이 커서 여기서 말하는 찔레꽃은 해당화일 것이라 추측이 된다.

찔레꽃은 옛사람들에게는 아픔과 슬픔을 알려주는 꽃이기도 했다. 찔레꽃이 필무렵에는 모내기가 한창인 시기로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시기에 흔하게도 가뭄이 잘 든다. 그래서 이때의 가뭄을 ‘찔레꽃 가뭄’이라고도 한다.

서양에서는 찔레나무 뿌리로 만든 담배파이프가 유명한데, 최고 남성용품의 대명사로 꼽히는 던힐의 창업주, 앨프리드 던힐은 35세때 런던의 듀크가에 담배가게를 열면서 찔레나무뿌리로 아름답게 수가공한 파이프를 만들어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잡았다고 한다. 찔레꽃이 피는 시기는 5~6월경이며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이라고 한다. 가을에 굵은 콩알 크기의 빨갛게 익은 열매는 영실이라하여 약으로 쓰는데, 동의보감에서는 맛이 쓰고 시며 악성종기, 부스럼, 성병이 잘 낫지 않을때나 두창, 백반병 등에 쓴다고 하였다. 찔레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맛을 주어 조경수로 적당하나 한편으로는 찔레를 담장으로 올리면 상을 당한다 하여 생 울타리로 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5~6월이 되면 울타리를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이 찔레꽃이다. 찔레는 장미과에 속하는 것으로 자라면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엉키며 가시가 있다. 찔레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산야에서 흔히 피는 흰찔레가 있고 가정이나 관공서 담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붉은찔레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요중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만큼 사연도 많은 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년 중 찔레꽃이 필 무렵이 가장 가난한 계절이었다고 한다. 생각하기조차 진절머리 나는 ‘보릿고개’라 불리우던 이 시기는 정말 찔레꽃송이만큼 가난이 풍성? 했다. 그 가난을 운명처럼 여기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묵묵히 소처럼 일을 하며 봄날의 긴긴 해를 시름속에 보내야만 했던 그옛날 나의 고향, 나의 이웃 농촌풍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애리고 눈물이 솟아난다. 이 찔레꽃이 피기 전에는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봄을 시샘하는 이상기온으로 기후의 변덕이 심할수록 찔레꽃의 빛깔은 더욱 고와지고 탐스러워지니 보면 볼수록 묘한 일이다. 이때는 우리나라 속담에도 “꽃샘 잎샘에 헌늙은이 얼어죽는다”는 말처럼 일교차가 비교적 큰 계절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기후속에 살아온 우리의 조상들은 선비의 품성도 특이해서 일찍이 가난하고는 불가분의 연분을 맺고 잘 참고 견디어온 국민들이다. 그래서 돈많고 권세 당당한 벼슬아치보다는 비록 낡은 의복일망정 기품있고 의지 굳은 가난한 선비를 더 존경하고 흠모해왔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사람마다 가난의 기준이 다소 애매해져서 가난을 정의하고 측정하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30~40년전만 해도 식생활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이미 가난에서 탈피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 차원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어느 초등학생의 일기장에서 나온 얘기의 한 토막은 우리를 어이없게 만든다. “아버지의 사업이 그렇게 잘되는 편이 아니라 우리 집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용차를 3대에서 2대로 줄여서 타고 다닙니다”. 욕심의 도가 지나치면 가난의 기준도 상승하나보다. 도대체 이 아이가 본 가난의 한계란 무엇일까?. 한번쯤 생각할 여유를 갖고 싶다.

작년에 읽은 신문기사가 있는데, 새파란 나이의 어느 의사는 월수입이 700만원으로 “개업을 할 수 없는 가난”을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자살의 원인이 이런 허황된 가난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현재 젊은 세대들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옛날의 이 시절에 호롱불 밑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바느질하고 길쌈하고 힘든 농사도 다 손으로 지으셨다. 힘들고 불쌍하게 살아오셨던 조상님시절을 생각하며 영광된 후손으로 살아가는 후세들의 할일은 근면하고 검소하고 절약하며, 위로는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밝고 명랑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우리 모두가 찔레꽃 같은 소박하고 깨끗하며 하얀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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