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늙은것도 서러운데……………

<김명열칼럼>  늙은것도 서러운데……………

 

나의 주위에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노후의 인생을 보내는 황혼의 친구와 지인들이 많이 있다. 우리들은 때때로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정담도 나누며 같은처지의 노후 생활들의 이모 저모를 이야기하고 서로 격려와 위로도 하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노후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사람은 긍정적으로 이야

기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늙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때문에 그것을 서러워하거나 비관을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이가 들고 늙었다보니 근력이 떨어지고 몸 이곳 저곳이 불편하며 삭신이 쑤시고 아파서 운신에 불편을 겪는것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디를 가나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게 서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서러움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현재 나이들은 세대들은 오늘날이 있기까지 사회의 초석이 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60~70년대에 빈손으로 출발한 자수성가(自手成家)자 들이다.

그때는 어떠한 고생과 치욕일지라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참고 견뎌냈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가족들의 짐만 되지 않으면 되고, 또한 생의 경륜에서 터득한 지혜도 있다. 그런것을 생각하며 자신을 달래보면 훨씬더 위로감과 더불어 마음의 평안을 느낄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누가 자기를 무시했다고 속상해 하지말고 이쪽에서도 아예 상대를 무시해버리면 된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가 살고있는 이 미국사회에서는 ‘Make even’이라고 한다. 그게 더 훨씬 공평하다. 세상의 이치가 묘해서 어떤 멸시는 다른 계층으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처지가 비슷한 형편의 계층으로부터 온다.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은 열등감에서 오는 반응이고 스스로 천사표 행세를 하는 사람은 마음이 강팍한 사람이다. 어떤 이슈에 대하여 온갖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현재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고, 과거 화려한 경력이나 학벌을 내세우는 사람은 현재의 형편이 안 좋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많은 집은 된장 맛도 쓰다’라고 했으니 참고 할만하다. 나이가 들은 노년에는 섭생이 아주 중요하다. 몸에 좋다는 약이나 보약을 들지 말고 그 돈으로 어렸을때 즐겨먹었던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좋다. 그때 내몸의 세포가 그 영양분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노년에 옛날 음식을 찾는 이유가 몸에서 그걸 요구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의 옷차림에도 신경을 쓰도록 하자. 늙은이가 잘못하면 노망으로 치고, 젊은이가 잘못하면 철이 없다고 한다. 그런 탓에 행색이 초라하면 정당한 요구도 노망이라 매도를 당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미국에는 양로원이 참으로 많다. 양로원에 입원하는 사람(환자)들은 정상인들이 평범하게 할 수 있는 일상의 일들, 즉 식사를 하고 화장실 가고 외출하고 샤워하는 것 등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곳 양로원에는 치매환자나 인지능력 부조화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때문에 이러한 심각한 상황의 형편에 처하지 않았다면 가급적이면 양로원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수족이 멀쩡한 사람도 양로원에 들어가 이러한 환자들과 어울리고 휩싸이다보면 얼마 안 되어서 자신도 육체적으로 많이 퇴보되어가고 어느새 환자가 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불편한 양로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옥을 미리 체험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카고의 어느 양로원에서는 환자의 딸이 자기 아버지의 몸에 멍이 든것을 발견하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자기의 아버지를 학대하고 때리는 폭력 간호사를 잡았다. 그 간호사는 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양로원은 120만달러를 배상해야만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나 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나이를 먹으면 노인으로 변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늙어가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늙더라도 반듯하고 곱게 늙어야한다. 옛날의 대학 책을 보면 그 책속에 ‘탕’이라는 임금이 있는데 그 임금은 제사때 손을 씻기 위한 세수 대야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좌우명 하나를 적어놓고 곱게 늙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좌우명의 내용을 보면, “구일신(苟日新)이어든 일일신(日日新)하고 우일신(又日新)하라”는 구절이었다. 이뜻은 “진실로 새로운 삶을 살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반듯한 노인으로 늙기 위해서는 이미 새로워진 것을 바탕으로 더욱 새로워져야 하는 노력을 한 순간도 중단해서는 안된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하는 숙명이다. 따라서 노인의 문제를 노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의 문제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송강 정철의 ‘훈민가’의 마지막 단락을 다시 한번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지실까’ 이와 같이 노인문제 해결은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드리는 것과 같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늙기도 서럽거늘 짐을 조차 지실까. 이것은 송강 정철의 마지막 시조 구절이다. 늙으면 서럽다는데, 그중에 제일 서러운 것은 세상의 무관심이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 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따돌림 받는 세대, 그들은 바로 나이 먹은 노인들이다. 스마트폰을 쓰면 은행에 갈 필요가 없고 길거리에서서 택시를 잡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이들의 얘기다. 노인들은 불편함을 넘어 불이익을 받고 있다.

지금은 장수시대라고 한다. 의학이나 과학문명, 사회보장 제도가 발달되다보니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80~90세가 넘도록 오랫동안 사는 노인 인구도 무척 많이 증가했다. 수명이 연장되고 이 세상에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그늘도 짙다. 자신의 노후를 국가나 사회가 무조건 책임져주지 않는다. 우리들 주위에는 고달픈 노인들이 많다. 평생을 부지런히 일하며 달려왔지만, 여전히 쉬지 못하며 고달프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 어느 사람은 노욕때문에 아직도 영혼이 고달픈 노인들도 많다. 내 맘대로 안되는 자식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고달픈 나이 드신 부모님들도 많이 있다. 한국에 있다면 좀 나았을까?. 하지만 뉴스를 보면 오히려 한국은 더 한 것 같다. 촛불세력의 기반속에 출발한 문재인 정부다. 그러나 노인빈곤, 노인학대,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의 오명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인들은 서럽다. 사회적 신체적 쇠퇴와 어쩔 수 없이 부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병들고, 돈없고, 외롭고, 무시당하고, 할일없는 노년의 이 다섯 가지 고통을 줄이는 것이 노인문제의 해법일테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8.15광복 해방, 동족상쟁의 6.25전쟁, 4.19 학생의거, 5.16군사 정변 등등을 겪으며 배고프고 힘들고 가난했던 굶주림의 보릿고개를 모두 겪으며 열심히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하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고 노약자가 되어버린 이들을 좀더 배려를 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복된 사회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세월과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젠가는 똑같은 늙은이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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