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김명열칼럼>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깊어가는 가을 밤, 사방이 고요와 적막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든다. 모두가 잠이 들었을 이 시간, 나 혼자 외로히 일어나 앉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기지개를 켜본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무의 잔가지들을 심술궂게 흔들며 지나간다.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밤, 어둠의 적막을 깨고 가느다랗게 귓전을 파고들며 뭔가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래 맞다! 이렇게 가을밤은 풀벌레소리와 함께 깊어간다. 풀벌레들의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없이 평화로워진다. 가을밤, 풀벌레소리는 들을수록 정겹다. 정원뜰 풀섶에서,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는 옥트리 나무의 튀어나온 뿌리 밑에서, 툇마루 밑에서, 뒷곁 장독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소리는 가을밤을 수놓는 환상적인 코러스가 아닐 수 없다. 여기 저기, 이곳저곳에서 뭇 여러 종류의 풀벌레들이 고운 화음을 보내온다. 노래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아름다운 가을밤을 깊은 잠에 빠져 덧없이 보내기가, 마치 손해를 보고 아끼던 물건을 헐값에 남의 손에 넘기는 것처럼 아쉽기도 하고 가슴한편에는 미련이 남는다.
나비가 봄의 전령이라면 귀뚜라미는 가을을 상징하는 친숙한 곤충이다. 귀뚜라미는 그 소리가 특이하여 고독한사람이나 오늘 같은 가을밤 밤이 이슥토록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의 벗이 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옛 시가(詩歌)에 보면 외롭게 지내는 여인이나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귀뚜라미소리를 들으며 시름에 잠겨 잠못 이루는 애절한 정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깊은 밤이 되어도 잠못 이루는 이들이 어찌 저들뿐이랴………..아마도 지금 이 시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힘들고 고된 생활고에 지치고 시달리다보니 각종 근심과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사람들 역시 참으로 많이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느 심리학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30%는 이미 지나간 일,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22%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 나머지 8%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심리학자는 도대체 무슨 걱정이 있어서 이런 조사를 했을까? 결국 걱정이라는 것은 과거 혹은 현재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에 대한 불안이다. 이 불안의 정서는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문제해결 과정이라는 것 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자는 (어찌하지. 어찌하지)라며 고민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 없다 라고 했다. 또 석가모니는 (고뇌 자체가 해탈)이라고 말했다.
물론 불안이 과해도 문제겠지만, 마치 불안이 패배자에게 특화된 삶의 태도인 것처럼 긍정을 몰아붙이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이다. 철학은 이 불안의 정서로부터 생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불안하기에,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강구하는 노력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사를 다 아는 듯 떠들어대는 철학자들이지만 실상 이렇게 밤으로 찾아든 고민 속에서 해답을 얻어낸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 고민의 시간이 꿈의 경계를 넘어서 이어진 경우도 많았었고……..생각을해보면 결국 그들도 우리네 범부처럼
밤새 소심한 존재들이었다. 철학은 미래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현대철학은 차라리 우연을 긍정하는 편이다. 따라서 어떤 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너 자신이 되라고 하면서도, 때로는 나와 다른 타자의 가치를 미래의 시간으로 규정하는 모순 속에, 어디까지가 신념이고 어디까지가 아집인지에 대한 (실존)도 저 스스로 알아서 판단을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사유들이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문제 해결력이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이면 밤새 외웠던 시험공부의 지식을 잊을세라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암기를 반복했던 기억들이 대개들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잠들기 직전에 그것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파지율이 가장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 효율의 시간이 우리에겐 오롯이 걱정으로 뒤척이며 잠못 이루는 밤일때가 많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자신에게 처해있는 각종 장애물과 걱정, 근심, 해결해야하는 문제들로 고민하며 불안 속에 잠못 이루고 있는 불면의 밤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로 생각이 든다.
잠못 이루는 밤,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건강한사람이나 병자나 모두가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건강한사람은 규칙적인 수면이 자기의 건강을 유지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병자에게는 수면이 심신을 진정시키고 원기를 회복시켜주지 않는다면 길고도 어두운 밤을 지새우는 번뇌와 고통이 몇 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근심이나 슬픔이 겹치게 되면, 특히 육체가 쇠약하고 정신이 흩어져있는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공포가 무장한 병사처럼 엄습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막아내기 힘들고 달아날 수도 없다. 그런 경우 즉 이것이 불면증이던 혹은 지속적인 것이던 적당한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즉 그것에 대한 유효적절한 수단을 쓰든가, 그렇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도리 없이 불면증 자체를 수용하든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얼마 전에 불면증에 걸려 무척이나 고생하며 시달린 적이 있었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불면의 밤을 무거운 눈꺼풀 위에서 하얗게 지새운 적이 많았었다. 잠깐 눈을 붙였지만 얼마안있어 다시 눈이 떠지니 이놈의 불면증은 달아나지 않고 나에게 달라붙어 같이 밤을 새우자고 안달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데도 내 불면증은 이유 없이 밤마다 날 찾아와 괴롭힌다. 남들은 다 자는 시간인데도 나 혼자서 불면의 밤에 하는 일은 책보는 일밖에 없다. 책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읽기 좋고 마음과 생명의 양식이 되는 성경책읽기가 그중에 으뜸이다.
물론 다른 책들도 읽는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듯 동창에 푸르스름한 새벽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불면은 언제나 누구에게든 고통이므로 가능한한 제거해야한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잠못이루는 밤에 자기생애의 결정적인 통찰이라든가 결단을 내린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견지에서 볼 때 불면의 문제는 신중하게 고찰해보는 것도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선용되어야지, 이유 없이 무작정 거역하는 것도 안 좋다. 다시 말해서 불면에도 무엇인가 목적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런 때일수록 보통 때보다 명확히 들리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외의 갖가지 사념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오늘저녁도 밤이 늦도록 잠을 못 이루거나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로 생각이 든다. 달빛 비치는 아름다운 가을밤에 도취되어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련만, 그렇지 못하고 악성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지금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권의 책이라도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어차피 이 가을밤은 책읽기(독서)를 하기에 너무나 좋은 계절이고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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