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한국 정치인들의 내로남불과 아시타비

<김명열칼럼> 한국 정치인들의 내로남불과 아시타비

몇년전, 2020년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됐다. 이 사자성어는 옛날부터 쓰이던 표현은 아니며 고전에 나오는 말도 아니다. 최근에 생겨난 신조어(新造語)다. 이것은 교수신문이 발표한 것인데 전국의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2.4%가 아시타비가 1위이고 2위는 후안무치로 21.8%, 3위는 격화소양 16.7%였다고 한다.

1위로 선정된 아시타비의 뜻은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즉 나는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린다는 말이다. 이것은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같은 뜻을 내포한 신조어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나 정치권을 보면 이 말이 딱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 이유는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서로 상대편을 죽어라고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정치적 및 개인적인 싸움이 판치는 이기적 집단과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상황을 볼 것 같으면 언제나 비판이나 비방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에 국사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당파싸움 때문에 남쪽으로는 왜구들에게, 북쪽으로는 오랑케들에게 침략을 당하며 국난속에 너무나도 백성들은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는데, 그 후손들은 이제는 맨날 여당이니 야당이니, 보수니 진보니 하며 편 갈라서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하지만, 나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부분도 분명 오류다. 세상살이 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황을 편파적으로만 보려 하지 않고 중립적인 마음으로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보고자 노력하는 진실 된 여유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한 시대이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다. ‘100세 인생‘을 쓴 린다 그래튼 등은 “100세를 사는 시대가 왔고 제대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면 장수는 저주가 아닌 선물이다. 그것은 기회로 가득하고, 시간이라는 선물이 있는 인생이다”라고 했다. 인생의 짧은 순례길을 걷노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세상에 파묻혀 땅만 보고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의 진실과 처절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가슴고이 간직한 꿈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다 소중하고 귀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면 한없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지만, 모두를 하찮게 여긴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대접받을 것이다.

옛 속담에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뜻으로 본질을 꿰뚫고 실체를 보라는 의미인데, 나 역시 달을 보기 보다는 어쩌면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숙연해지는 시점이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옳지 않다고 여기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려는 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자신이 처해있는 진영의 논리만을 대변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이 기득 권력이나 이익만을 지키기 위해서 오로지 자기만 옳고 다른 이의 의견을 그르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아예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다양한 성향이 있는 개인들로 구성돼 있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안 되지만,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위험한 지경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공자가 논어 자로(子路)편에서 군자는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룰줄 알되 같아지려 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아지려 고는 하되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君者和而不動 小人同而不和)라고 말한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같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 울 수 있어야 바람직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지난달 2월16일, 한국의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이재명은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검찰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거세게 비난했다.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는데, ‘시정농단 인허가 장사’ 여기에 나는 맞고 남은 틀린다는 뜻의 ‘아시타비’ 같은 표현도 영장에 써 넣었다. 이례적으로 법률용어가 아닌 표현까지 동원해서 이 대표의 범죄혐의를 강조한 것이다. 윤리(倫理)란 무엇인가? 우리말 사전에서 그 정의를 찾아보았다. 倫이란 인간관계에 있어 필요한 길, 도리, 질서를 의미한다. 理는 다스린다, 바르다, 원리, 이치, 가리다, 밝히다, 명백 등의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윤리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자 인간사회에 필요한 올바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봐도 이것이 깨진 경우를 우리는 비 윤리적 사회라 칭한다.

만약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어떨까? 인간사회가 야수와 같은 모습이 되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글의 동물세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바로 작금의 한국정치의 모습이 그렇다.

오늘도 한국의 정치권은 눈만 뜨면 네탓이라는 싸움질로 하루가 지난다. 원래 그들에게 정치에 입문한 동기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직접 마련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 변화는커녕 어쩌다 오늘날의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는지 그저 한숨만 나온다. ‘남아일언 중천금’ 이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허언(虛言)과 실언(失言)이 난무한다. 이미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곳곳에서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순수한 인성을 갖춘 민주시민이 되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를 누가 앞장 설 것인가?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이를 선도할 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누구보다도 솔선수범을 해야 할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정적인 사회윤리의 악역을 맡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갈 삶의 제도와 법률을 만들고 긍정적 사회문화를 이끌어야 할 선봉에 서 있다. 국민을 대변하고 또 국민의 눈이 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는 조선시대의 케케묵은 당파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 3년동안 코로나19로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고통과 시련을 배가 시키고 있다. 국민통합 이라는 말은 사전에서나 나오는 고어(古語)가 되었다. 아직도 코로나 19이 완전히 떠나지 않은 이 시점에, 국민들은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처절하게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사에 아시타비 하고 당동벌이 하고 자기기인 하는 정치권의 공명지조들이 알기나 할까?……………..

그들은 우리 사회에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새로운 윤리를 창조하여 후대에 전하려는 것인가? 얼굴에 철판 깔고 안하무인으로 거짓말을 밥먹듯하고, 자기의 이익이나 편이를 위해서는 겉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는 그들이다. 사회는 정치인이 귀감을 행하고 언행일치를 보일 때 신뢰와 함께 지지를 표한다. 때로는 잘못이 있을 때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지만 그들의 ‘아시타비’와 ‘염치 없음’은 점점 도를 더해 간다. 지금은 경쟁해서 승리하는 능력보다 양보해서 배려하는 미덕이 환호하는 시대다. 손아귀에 쥐고 있는 권력과 욕심을 버리고 민심을 채워야 한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 정치인들의 난장판 싸움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울분속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 하며 분노의 글을 썼다. 노는 꼴들이 갈수록 가관이다. 모두가 꼴 보기 싫다. 거짓말쟁이들, 국민과 나라는 그들의 마음속엔 없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1/2023031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