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매화꽃 향기에 취해…………………

<김명열칼럼> 매화꽃 향기에 취해…………………

매화꽃을 보면 느껴지는 품격 일지일향(壹枝一香)……..!

우리는 옛 선비를 떠올리면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이야기 하고, 그중 은은한 향기로 심신을 사로잡는 매화꽃, 매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쳤다. 가장먼저 꽃을 피워 향기로 사방을 밝히는 매화는 선비의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았다.

매화는 고결한 선비나 정절의 여인을 상징한다. 이른봄에 홀로피어 봄의 소식을 전하고 맑은 향기와 우아한 운취가 있어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널리 애호되었다. 매화의 다른 이름인 보춘화(報春花)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문턱에 올 즈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 이 매화는 백화(많은 꽃들이)가 피기 전에 제일 먼저 피어나므로 ‘화형’ 또는 ‘화괴’라는 별칭으로 불리어왔다. 또한 봄을 가장먼저 전해준다고 하여 일지춘색, 철간선춘, 한향철간이라 하였고, 춘한(봄의 한파)속에서 홀로 핀 매화의 고고한 자태는 선비의 곧은 지조와 절개로 즐겨 비유되고 있다.

이처럼 맑은 향기와 아울러 눈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의 특징이다. 선비들은 매화의 곧고 맑은 성품을 노래한 글을 지어 일편단심으로 사모하는 님에게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때 님은 나라 또는 임금일수도 있고 자신의 굳은 뜻일 수도 있다.

특히 청조한 자태와 향기로 인해 매화는 아름다운 여인에 즐겨 비유되었다. 옛 기생들의 이름에 유독 매화 매(梅)자가 많이 사용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매화가 아름다움과 함께 정절을 상징하였으므로 여인들은 매화와 대나무를 함께 시문한 비녀인 매죽잠을 즐겨 착용하였다. 이와 같은 매화의 상징성으로 인해 눈이 덮인 매화나무 가지에 처음 피는 꽃을 찾아나서는 심매가 문인과 풍류객들의 연중행사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범석호는 ‘매보’에서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라 칭송하였고, 소동파는 얼음 같은 맑은 혼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이라 평하였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의 화목 9등 품론에서 국화, 대나무, 연꽃과 함께 1등으로 분류하면서 높고 뛰어난 운치를 취할 만 하다고 하였으며, 같은 책의 화품평론에서 강산의 정신이 깃들고 태고의 모습이 드러난 꽃이라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고시조에 나타나고 있는 꽃중에서 매화는 도화(복숭아꽃)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로 알려져 있다. 시조에 나타나고 있는 매화는 우리 선인들의 드높은 기개와 굽힐 줄 모르는 지조의 상징으로 애칭 되어왔고, 다 썪은 고목에서도 봄기운이 돌면 어김없이 맑은 꽃을 피우는 신의의 벗으로 노래되어 왔다.

백설이 자자진 곳에 구름이 머흐레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색이 지은 이 시에서 추이하는 계절과 더불어 걷잡지 못할 애상에 잠긴 마음으로 매화를 찾는 지사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매화는 달과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고고한 달빛아래 청조한 자태와 맑은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모습은 상징만으로도 자연적인 조화와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일생을 독신으로 매화와 더불어 은거 생활을 한 송나라 시인 임포 이후로 매화와 달의 짝은 더욱 애호되고 있다. 실로 달과 매화는 예로부터 은일처사들의 아낌을 받아온 고아함의 화신이요 정절의 상징인 자연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매화그림, 묵 매화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매화의 꽃송이가 중국의 그림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재 전문위원 허영환씨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 생긴 것, 어리숙한 것, 완벽하지 않은 것, 기교를 부리지 않은 것 등을 좋아한 성격 탓인 것 같기도 하고, 한국 미술의 바탕을 흐르는 자연주의의 발로인 것 같기도 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중국의 민족성은 빽빽한 것, 완전무결한 것, 아주 예쁜 것, 되도록 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묵매화가들이 어지럽게 줄기와 가지를, 그리고 수십 수백의 꽃송이를 화면 가득히 그리면서 웅장, 완벽, 섬세를 추구할 때 우리나라의 묵매화가들은 그러한 화법과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게, 무 기교의 기교라는 한국 미술의 지조를 지키면서 여백의 미와 단순의 미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는 비록 묵매화가 사군자의 하나로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민족성에 맞게 완전히 소화, 재 창조되어 한 단계 높은 미적 수준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묵화에 담아낸 고결한 존재를 사군자(四君子)로 표현해왔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말한다. 이들은 다시 둘로서 짝을 짓고 난매(蘭梅)와 난국(蘭菊)으로 표현한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이다. 이 꽃말 그대로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곧게 피어나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매화라는 이름에는 속뜻이 숨겨져 있다. 매화의 한자에서 매(梅)를 사용한다. 어미 목자와 어머니 모가 합쳐진 모양이다. 이는 어머니 나무라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이 입덧 할때 예로부터 신 맛이 나는 매실을 많이 찾았다.

그 때문에 매실을 찾으면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마음의 채비를 한다고 하여 어머니가 되는 나무라는 뜻으로 매화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매화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정혼녀를 사랑한 청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또한 묵객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설중(雪中)매는 한매(寒梅)라고도 불린다.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항상 거문고의 소리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고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매화를 예찬한다. 매화꽃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모아야 맡을 수 있는 향이지만 은은하게 코끝을 스칠 때 매화향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홍매화는 엄동설한 겨울 내내 가지마다 눈을 이고 지고 서 있다가 봄이 오면 어린가지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의 향기로움을 잉태하고 겨울속의 봄의 여신으로 변신한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는 나목으로 숨죽이며 웅크리고 있다가 입춘의 시기에 잎보다 꽃으로 먼저 피어 기지개를 활짝 펴고 일어난다.

앞서도 말했듯이 매화는 난(蘭),국(菊),죽(竹)과 더불어 사군자라 일컫기도 하고, 불로상록(不老常綠)의 솔대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기도 한다. 또 매화와 대나무를 이아(二雅)로, 매화와 대나무와 솔을 삼청(三淸)으로, 매화, 대나무, 난초, 국화, 연꽃을 오우(五友)로 부르기도 한다. 매화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동지 전에 피는 것을 조매(早梅)라 하고, 봄이 오기 전 눈이 내릴 때 피는 것을 설중매(雪中梅)라 하고, 한매 또는 동매(冬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그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겨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고매(古梅)라 해 귀히 여긴다.

한국 통도사의 자장매나 구례 화엄사의 홍매 등이 고매에 해당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 붉으면 홍매라 부른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문헌상에 나타난 매화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서기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이다. 조선의 화백 김홍도도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수 없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단원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000냥을 주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나머지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매화는 다섯장의 순결한 백색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꽃이 피면 오래도록 매달려 있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미인 박명이라 했던가. 벚꽃을 닮기는 했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상(靑孀)스럽지가 않다. 매화 또한 덧없이 피었다가 지고 마는 것이 미인의 모습

다고 하여 옛 시가에서는 미인에 곧잘 비유되고 한다. 절개의 상징인 매화와 댓잎을 비녀에 새긴 것이 매화잠(梅花簪)이다. 머리에 꽂아 일부종사의 미덕을 언제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축일에 부녀자가 머리에 매화를 장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추위속에서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모습에서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려는 선비의 기질을 본다.

별도의 얘기로 퇴계 이황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 유언을 남겼는데 유언 내용이 걸작이다. “매화에 물을 주거라”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가히 매화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안동출신이며 독립운동을 하다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죽은 시인 이육사의 ‘광야’에도 매화 이야기가 등장한다.

옛날 기생들 이름에도 아름다운 매화를 의미하는 이름이 꽤 많다.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어미 이름이 월매다. 그 외에도 옥매, 설매, 매향 같은 이름도 많이 사용했다.

요즘 한국의 남녘땅 섬진강변 광양시와 하동군 일대 섬진강을 따라 양쪽 언덕이 온통 매화꽃 천지란다. 매화꽃이 피는 절정기는 3월중순에서 하순경이라고 한다. 옛날 학창시절 대학동창생인 친구의 고향이 경남 사천이다. 어느 따듯한 봄날, 친구를 따라 고향에 내려가 산천재 근처에 있는 산청삼매(정당매, 원정매, 남명매를 일컫는 별칭)의 매화꽃을 감상하며, 고고한 달빛아래 은은하게 퍼지는 매화 향기속에, 친구 어머님이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순 곡주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신의와 우정을 돈독히 다지든 옛날의 추억이 그리워진다. 매년 매화꽃이 피어나는 이맘때면 그 친구가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봄에 취하고 매화의 향기에 취해 취흥이 돋아나 시 한수를 지어 읊어 보았다.

매화꽃은 바람에 날리고 그 향기 아래 쉬어가는 봄 / 오늘밤 달 밝은 밤에 사랑하는 벗과 함께 향기에 취하고 꽃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 / 한낮의 벌들은 붕붕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꽃들사이를 오가고 / 바람이 불때마다 하얀 매화꽃잎이 흩날리는 날 /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은 봄이다.

달빛고운 밤하늘 아래 매화꽃 그늘에 앉아 / 술잔속에 비춰진 고운 달을 마신다 / 옷깃을 여미는 꽃샘 바람속에서도 / 매화꽃 만발한 가지마다 봄빛이 가득하다 / 자 ~ 친구여 받으시게나 한잔씩 들다보면 / 젊음도 청춘도 세월 속에 취할것이니 / 비워지는 술잔 속에 달빛을 담아 / 달과 친구와 내가 한몸이 되어 조우하는 밤 / 매화도 시기심이 생겼는지 스쳐가는 바람에 / 몸을 떨구며 얼굴을 붉힌다 / 사방이 고요하고 적막한 이밤 / 보름이라서 달빛은 곱기만 하다.

화사하게 피어 만발한 매화꽃을 그리며 그리운 추억속에 취해 보았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4/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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