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획  <4>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숨겨졌던 이야기들

(사진1) ▲ 일송(一松) 김병희(왼쪽) 선생이 혁명정부 시절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김병희 선생은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로 혁명정부시절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을 건의했다.

김명열기획  <4>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숨겨졌던 이야기들

지난주에 이어서………………….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웬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끼고 있었다.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다시 한번 둘러본 나의 눈에는, 다시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크게 보이는 참다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보였다.

박대통령 이후의 후임 지도자 대통령들, 돈을 너무나 좋아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이들이 100만달러를 받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이 나라의 국민과 국가를 위하고 생각하는 진정한 지도자, 애국자는 누구일까?…. 오늘의 좌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헐뜯고 비하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는 모습을 볼 때, 과연 그들은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일까(?)하고 의문이 앞선다.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온 정력을 다 쏟았던 작은 거인, 민족과 구국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 요즘 한국이 돌아가는 정치판을 볼 때 새삼 더욱더 가슴과 머리속 깊이 박정희! 라는 분의 향수를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다음은 제3자, 타인이 본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병희 박사의 이야기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병희야, 고속도로를 만들자는 사람은 너뿐이구나” 박정희 대통령은 여늬때 사석에서 절친 김병희 박사를 두고 하는 말이 “그 친구는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사나이”라고 종종 농담조로 그를 비유했다. 그렇다면 박정희대통령의 절친, 김병희 박사는 누구일까? 그 당시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반대를 하던 고속도로를 만들자고 했으며, 장관을 시키려 해도 싫다고 하고, 재물도 달갑게 생각지 않던 김병희 박사를 청렴결백한 박대통령이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사나이’라고 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람은 수산대 교수, 해사 육사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초대 이사장을 비롯해 한양대 교수, 인하대 총장 등 반세기에 걸친 교단생활을 하였고, 5.16군사혁명 당시에는 국가재건 최고회의 자문위원이었던 사람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로 대한민국 격동의 시대를 중심에서 살아온 이학박사이다. 아래의 글은 어느 기자가 김병희 박사와 인터뷰한 기사로서 회고록에 있는 것을 보고 인용해 소개하여 드린다.

최고회의 자문위원이었던 김 박사를 어느날 박정희 의장이 불렀다. 박의장은 김교수가 집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이 자식아, 한 건물안에 있으면서 왜 안왔지?”였다. 김교수는 “야 지금 너한테 들어오는데 두시간이나 걸렸어, 별로 할 말도 없는데 시간이 아까워서도 자주 올수야 없지”라고 했다. 박의장은 부관을 부르더니 “김병희 교수만은 무상출입시켜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김병희 박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의장의 집무실에 들어가 본 후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의장실에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군 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했다. 특히 그가 앉는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담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도 받은 양담배였다. 그러나 박 의장은 담배 중에 제일 값이 싼 아리랑 이었다.

하루는 그방(박정희의장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10원짜리 냄비국수(그 당시 짜장면이 20원) 한 사발과 노랑무(단무지)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 식사를 마치고 방금 이곳에 온 터라 나의 양심이 몹시도 가책을 받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박정희를 욕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또한 진정 그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만 이 세상에 그처럼 청렴결백한 집권자가 또 있을까? 그 뒤를 이어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버지를 닮아 너무나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위대한 대통령이었지만……..

박정희 의장의 애국심은 지나치다고 보여 질 때도 가끔 있었다. 그는 당시 장충단공원에 있던 의장 공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눈비 내리고 세찬바람이 몰아치던 추운겨울날 아침에 국민학교 6학년생인 장녀 박근혜양을 운전병이 지프차로 등교시켜준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의장은 근혜양을 불러와 무릎을 꿇어 앉혀놓고 “그 차가 니 차냐? 그 차가 아버지 차냐?” 하고 힐책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 있는 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차는 나라 차야, 나라 차를 니가 감히 등교용으로 쓸 수 있는가 말이다”

김박사의 추억담 이야기,

아득한 옛날 대구사범 1학년때 생각이 떠오른다. 박물시간에 어느 식물 꽃 단면을 확대경을 보아가며 크고 세밀하게 그리고 작업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러 급우들이 그린 것들 중에서 최고 평점인 G를 박군이 차지했었다. 그는 일찍 경북 선산군 구미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그와 같은 수석들만이 응시했던 대구사범의 9대1이라는 입시경쟁을 돌파한 엘리트였고, 그 엘리트들 중에서도 G 라는 평점을 받을 만큼 그의 두뇌는 비상했다. 그랬기에 쓰러져 가는 이 나라의 구출을 위한 한강 도강 작전에도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의 이러한 지모와 그 애국심 등이 박정희의 5.16혁명을 있게 했지만, 그에게 넘겨진 대한민국에는 GNP 83달러의 헐벗은 백성들이 4월 남풍에 대맥(大麥=보리)이 누렇게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른바 우리겨레의 비운이었던 보릿고개를 알았기에 그는 10원짜리 냄비국수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그런 것조차도 못 먹고 있는 불쌍한 국민들의 굶주림을 걱정했던 것이다.

또 체인 스모커(Chain Smoker)인 그가 담배 없이는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니, 피우기는 해야겠는데, 그 옛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궐련은 커녕 한 봉지의 장수연이나 희연(囍燃)조차도 손쉽게 못 얻어 피우시던 일을 회상하면, 그 ‘아리랑’을 피우기조차 송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심없이 오직 국가와 나라를 위해, 국민들을 잘 살게 만들어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헌신한 애국자인 그를, 박정희 대통령의 비리를 찾아보려고 수십년간 뒤지고, 파고, 훑어봐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으니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가 쓴 광화문, 화령전, 운한각, 현판도 뜯어 내렸고 또한 그 시절에 심어졌다 하여 나무들까지 송두리째 뽑아버린 좌파 정권들….. 어느 못된 놈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잠들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묘에 커다란 쇠말뚝을 수십개나 뚜드려 박아놓는 역적 같은 나쁜 인간들도 있었다…. 하늘이 무섭지 않은지?…. 천인공노할 나쁜 사람들이다.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단체장이나 시장, 도지사 자리에 앉으면 고작 한다는 일이 곁에 있는 여비서나 데려다 놓고 성추행을 일삼고, 농락하며, 장관 자리에 앉으면 자기자식 취직자리부터 챙기는 썪어 빠진 것들이 박정희 박근혜 부녀 대통령을 매도하고 못잡아 먹어 발버둥치고 있다.

반미(미국을 반대하고) 친북(북한을 찬양하고 옹위하며), 친중(중국을 가까이 하는)을 외치는 그들은, 제 자식들은 모두다 그렇게 싫다고 하는 미국유학 다 보내고, 틈만 나면 뒷구멍으로 손 내밀어 돈을 착복하며, 친북 친북 외쳐대는 좌빨들에게,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그곳에 가서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함께 평생을 살으라고 하면 한 사람도 그곳(북한)에 간다는 사람이 없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희안하고 이상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당신들이 아무리 폄훼하고 악독한 독재 지도자로 몰아세워도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은 대한민국 중흥사의 시조로써 길이길이 후세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심복 김재규가 쏜 흉탄에 맞아 비명에 떠나갔지만, 그는 죽어서 진정으로 그 가치를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높이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비화(숨은 이야기) 다음호에 이어짐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0/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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