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획 <3> 한국과 독일의 경제협약 및 파독 광부, 간호사들 이야기

김명열기획 <3> 한국과 독일의 경제협약 및 파독 광부, 간호사들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서………

이러한 때 서독 정부와 한국간 합의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총 2만여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파견됐다. 1962년 박정희대통령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막대한 자금이 요구됐지만 외환보유고가 2300만달러에 불과했을 정도로 한국에는 개발계획을 추진할만한 자금이 없었다. 외자도입이 절박했던 것이다. 1962년 외자유치 목표가 5000만달러였으나 정작 유치에 성공한 금액은 600만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이 5.16군사정변을 이유로 문제 삼아 박정희정부에 대한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돌파구가 서독이었다. 경제부흥에 성공한 독일의 노동력 부족현상과 한국의 외화에 대한 수요가 맞아떨어졌다. 광부와 간호사 등 파독 근로자들이 1964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고국으로 보낸 송금액은 총 1억달러가 넘었고, 서독정부는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1억5900만 마르크(약 400만달러)의 차관을 약속했다.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약 10년간 국제사회가 한국에 제공한 공공 차관이 약 7억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때 서독으로부터 받은 송금액과 차관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외화송금은 일반 수출에 비해 비용이 없는 순 이익이라는 점에서 획득의 가치가 크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이 당시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피땀 어린 월급의 한국 송금은 그야말로 조국경제의 기틀과 밑바탕의 중심을 잡아주는 매우 큰 역할에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한국경제부흥의 1등 공로자이자 국가 유공자의 훈장을 받을만한 역사적 일꾼들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나는 국가유공자 훈장을 주어도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은 물론 국가 및 경제발전에 큰 일익을 담당하고 공헌을 한 역군들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을 향해서 ‘저 먹고살기 위해 돈벌러 간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며 단정을 내린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그 시절 수만리 타국땅에 가서 피땀 흘려 일하며 갖은 고생을 하고 역경을 이겨내면서 외화를 벌어 국익에 일조했다는 사실만은 경시할 수 없는 국가의 훈장감이다.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렇게 보내진 파독 근로자들의 외화송금이 당시 경제성장에 미친 기여도를 수치로 분석한 자료도 있다. 파독 근로자들이 보낸 송금이 우리 경제 기여도가 15.1%에 달했다. 즉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임금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보냄으로써 매년 한국경제 성장에서 10% 이상의 기여를 했다는 의미이다. 정말로 대단한 기여이며 국가의 경제를 일구게 한 수훈자들이고 공로자들이다.

당시 파독 광부들의 월급은 평균 650~950마르크(그 당시 원화가치 13만원~19만원) 이었으며 이는 국내 직장인 월급의 평균 8배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 파독 간호사들의 월급역시 첫 월급이 740마르크였으며 근무연한이 많아질수록 최고금액은 1200마르크를 받는 간호사도 있었다. 당시 한화로 15만원~24만원 정도였는데, 한국의 기업체 신입 월급이 2~3만원 수준이었으니,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하는 일은 힘들고 고달팠어도 한국의 기업체 사원들이 받는 월급의 평균 6~9배 정도의 돈을 더 받았으니 외화수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역군들이었다.

다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의 집념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는 한국군 맹호부대의 파병으로 월남전의 열기가 한창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때였다. 월남전 참전 당시 전 세계가 한국을 비난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였지만, 그들은 그런 한국을 보고 비난만 해 대었을 뿐이었지, 그 누구도 가난한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쌀 한톨, 기름 한방울 원조해주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그나마 원조라도 해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남로당 행적이 미국 수뇌부의 의심을 받아, 미국정부는 박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복조치로 당시 대한민국 1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던 우리나라는 당장 미국이 제공해주는 원조를 중단당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전 국민이 그야말로 굶어죽는 길 밖에 남지 않았음을 느껴야만 했다. 실로 앞날이 막막하고 눈앞이 캄캄한 암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서 한국과 미국이 다시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서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박대통령의 월남전 참전 결의였다. 당시 우리에게는 주어진 선택의 길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월남전에 참전해서 미국이 원조를 재개해 준다면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임을 옳게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각해 두자. 이세상의 어느 누구도 가난한 대한민국, 굶어 죽어가는 대한민국을 위해 쌀 한톨, 기름 한방울 제공해주지 않았음을…… 그러면서 그들은 대한민국이 하는 일에 대하여 내정간섭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을………..

나라가 가난하면 전 세계가 그 국가를 자신의 노예로 인식하려 한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사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원초적 진리임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은 어떤 책에서 나온 이야기로서,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군사무기 제조업체인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의 사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박정희대통령과 나누었던 실화를 공개하는 것이다.

1965년, 한국의 월남 참전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섰고, 한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버리는 댓가로 많은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의 자원을 미국으로부터 이전을 받게 된다. 그 지원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 이었다. 이전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무기는 단발식 카빈 소총으로 M-16과는 비교할 바가 못되는, 6.25전쟁 때부터 사용한 무거운 M1소총도 혼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M1 소총은 세계 제1차대전중에 미군들이 사용한 구닥다리 재래식 무기다. 내가 처음으로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서 6주동안 군사훈련을 받을 때도 그 M-1 소총이었는데, 키가 작은 훈련병은 그 총을 어깨에 걸쳐 메면 다리까지 길다랗게 쳐져서, 키와 총의 길이가 같을 정도였다.

그 M-1 소총을 메고 완전군장속에 10Km 달리기 행군을 할 때면 글자 그대로 미칠지경이었다.

매일같이 무거운 총을 메고 구보와 기합속에 죽도록 혹독한 훈련을, 그리고 이따금씩 조교로부터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에 줄빳다(잘못이 있을때는 혼자서 빳다를 맞고)를 맞으며 고생스런 6주의 훈병생활을 마치고 작대기 하나, 이병을 달고 나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을 달은 듯 기뻤고 보람스러웠다. 그 후 자대 배치를 받고서도 내내 칼빈 소총과 M-1소총은 겸용하여 사용했다. 여기서 내가 이러한 M-1소총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당시 까지도 한국군들은 낙후된 재래식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다.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한참 후에야 월남전에서 사용하던 M-16소총이 각급 부대에 소량씩 보급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참고로 이 M-16 이야기가 박대통령과 더글라스 사의 사장과의 대화속에 나오기에 양념으로 소개해드렸다.

M-1및 칼빈 소총, 그야말로 장남감과 같은 수준의 무기였었고, 우리는 그런 무기를 들고 남북 대치상황을 견뎌야만 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서 군사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얻을수 있었던 M-16의 제조업체는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였다. 미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의 수출건을 따 내게 된 뒤, 한국을 방문한 맥도날드 더글라스 사의 사장은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해주는 국가를 찾아 의례적인 인사치례를 하게 된다. 한 여름철이었다. 그것도 폭염이 푹푹 뜨겁게 내리쬐는 무더운 삼복더위 속의 어느날이었다. 나(맥도날드 사장)는 대통령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 대통령의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그리고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을 의심케 하였다. 커다란 책상위에 어지럽게 놓여진 서류더미 속에 자신의 몸보다 몇배나 더 커 보이는 책상위에 앉아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남은 한손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무더운 여름날씨를 이겨내고 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그의 행색은 도저히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고 초라해 보였다. 얼핏 보기에 바지는 너무나 오래 입어서 나달나달해 보였고 목덜미 곁으로 보이는 런닝셔츠는 구멍이 나 있으며 고물에 가까웠다. 셔츠 밑으로 보이는 가죽 허리띠는 얼마나 오랫동안 매고 다녔던지 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깔도 빛이 바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모순이 내 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지키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남루한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그가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런닝셔츠 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각하, 미국 맥도날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씨 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췄다. “먼곳에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앉으시오” 한 여름의 무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나 혼자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게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바람 하나면 바랄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 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나야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손님이 오셨는데 잠간동안이라도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 나는 그제서야 소위 한 나라 대통령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네 각하”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서 나는 대통령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자세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의 M-16 소총의 수입을 결정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들이 드리는 작은 성의이니 받아 주십시요”하며 나는 준비해간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요?” 박대통령은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100만 달러라…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이구료”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렀다. 나는 그 역시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실망감을 감출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실망이 처음 그에게서 느꼈던, 왠지 모를 느낌이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 보시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 이 돈 정말 날 주는 것이오?” “네 물론입니다 각하” “대신 조건이 있소, 들어주겠소?” “네 말씀 하십시요, 각하”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자 이돈 100만달러는 이제 내 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가치만큼 총을 가져오시오, 난 돈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나는 왠지 모를 의아함에 크게 눈이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달러는 내돈도, 그렇다고 당신의 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 타향에서 그리고 저 멀리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피와 땀과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 나라의 아버지로서 내 배를 채우는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 다시 가져가시오, 대신 이 돈 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주시오”

<재미있는 숨은 비화 다음주에 계속>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99/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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