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19> 시내 관광(트윈 시티/Twin Cities)

김명열 기행문<19> 시내 관광(트윈 시티/Twin Cities)
여행작가 및 칼럼니스트 / myongyul@gmail.com

미국의 북반구에 위치한 미네소타주에는 미네아폴리스 시와 세인트폴의 큰 2개 도시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두 도시의 생활권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고, 서로 확장되다보니 두 도시가 합쳐져 버렸다. 그래서 흔히들 부르기를 트윈시티(쌍둥이 도시)라고도 한다.
오늘은 허 회장님 내외 부부와 우리부부, 이렇게 네 사람이 한차에 동승하여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둘러보기로 하였다. 호텔경영의 일로 무척이나 바쁜 사람인 허 회장님 두 내외분은 우리부부를 위하여 아예 회사 일을 접어두고 일주일 내내 우리 부부와 함께 여행을 같이 하려고 모든 바쁜 일정을 뒤로한 채 올 인하여 우리를 관광을 시켜주기로 계획을 세우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친구부부를 위하여 봉사를 감행 하였다.
앞서 기행문에서 소개하였듯이, 첫 번째로는 건물전체가 황금빛으로 치장한 미네소타주 주정부청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청사앞쪽 넓은 광장 공원 한켠에 조성되어있는 6.25전쟁 한국참전용사비를 찾아 묵념을 올리고 그들의 헌신과 도움에 조의와 경의를 표했다. 꽃다운 청춘의 나이에 남의 나라에 와서 귀중한목숨을, 한국을 지키고 보호하기위해 산화한 그들의 숭고한 넋과 희생적인 몸 바침에 진정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명복을 빌어드렸다. 그곳을 떠나 우리일행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는 메가몰을 구경했다. 과연 입이 벌어질 만큼 크고 온갖 만물, 잡화상이 다 모여 있는 거대한 백화점이고 위락시설이었다.
다음에는 미네아폴리스의 시작인 필스베리강과 세인 안토니폴의 운하도 보았고, 제너럴 밀이 물레방아를 이용한 150여 년 전의 방앗간 자리도 둘러보며 옛날 초기 개척민들의 숨결과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인디언추장의 딸 미네하하와 백인청년의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의 전설이 담긴 미네하하 폭포를 관광하면서는 그 자리에서 있는 청동상과 롱펠로의 시문을 읽으면서 그들이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 속에 그 젊은 두 남녀가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에 안타까운 마음과 슬픈 생각이 가슴속에서 떠나질 않는 짠~하고 허전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인디언추장의 딸 이름인 미네하하를 기념하여 폭포이름을 미네하하 폭포라고 명명한 이 폭포에는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이야기가 함께 있다. 수년전 가뭄이 심해 강물이 말라버린 상황때 마침 이곳을 방문한 포드 전 대통령이 이 폭포를 구경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주체측은 부랴부랴 소방차 수십대를 동원하여 폭포위쪽 상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방호스를 연결해 강바닥으로 물을 쏟아 붙기 시작했다. 포드대통령이 도착하는 그 시간에 맞춰 수십 대가 한꺼번에 쏟아내는 많은 량의 물에 인공적인 폭포수를 연출하여 그것을 보는 포드 대통령은 원더풀을 외치며 그 폭포의 아름다움과 위용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좋다고 원더풀을 외쳤지만 무더위 속에 진땀을 흘리며 폭포수 물을 만들어 내느라고 고생한 소방대원들의 노고가 대단히 컸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간다.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로 더위와 갈증을 식히고 우리일행은 다시 10여개가 넘는 호수로 연결된 아름다운 미네톤카 호수변 드라이브코스로 접어들어 호변의 경치와 풍물들을 감상하며 차안의 휴식을 취했다. 1백여 년 전에 지어진 돈 많은 부호들의 호화로운 별장을 구경하며 그들의 여유로운 생활이 부럽기도 했고, 호수위에서 한가로이 독서를 하며 망중한을 즐기는 두 늙은 노년의 부부에게서는 자기만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젊은 연인들이 즐겨 드라이브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동서로 뻗은 강변도로를 따라 차를 몰면서 우리도 마음만은 젊어지자면서 신노심불노(身老心不老)를 외쳤다. 젊음은 정말로 신이주신 축복이다. 강물에 비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뒤로 한 채 근처의 분위기 있는 레소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나는 여행에 지친 나른한 몸을 이끌고 친구의 집에 돌아와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했다.
한국의 옛날 유행가의 가사처럼 팔, 다리 허리는 아프지만 친구 부부의 덕분에 구경한 번 잘했다. 오늘의 하루일과를 잡담으로 나누며 친구와 웃음꽃을 피울 때, 부인인 허 여사께서 커다란 유리항아리 하나를 힘겹게 들고 나온다. 무얼 저렇게 힘들게 들고 오시나? 하는 궁금증의 얼굴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유리항아리를 응접실테이블위에 놓으며 ‘7년 동안 숙성시킨 머루주예요. 아직 한번도 개봉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반갑고 귀한 손님이오셨으니 열어서 대접을 해드려야겠네요’. 내가 알기로는 허 회장님, 이 친구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은 술을 마셔? 그 의문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이내 ‘나는 술을 전혀 못하는데 이것은 집사람이 다른 첨가물은 일체 넣지 않고 순전한 머루만 짓이겨 으깨어 잔뜩 담아놓은 것을 오늘 반가운 벗이 왔으니 같이 들려고 처음 뚜껑을 여는걸세’. 7년 동안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채 고이 간직되어온 귀한 머루주 ‘효소액’을 먹는다는 것이 미안도하고 고맙기도 하면서 그 속에서 따듯하고 정성이 담긴 사랑과 우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머루는 7년 전 어느 늦가을 첫서리가 내린 후 자기가 경영하는 호텔의 담장울타리에 지천으로 달려있는 머루를 한자루 잔뜩 따와서 깨끗이 씻어 아무런 첨가물(알콜이나 설탕을 전혀 넣지 않았음)없이 정성을 들여 담가놓은 것이라고 했다. 머루 잔을 앞에 놓고 우리 네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며 목이 마를 때는 달콤하고 맛있는 머루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머루주속으로 우정과 사랑에 취해 소리 없이 조용히 침전되어갔다.
머루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머루는 우리의 몸에 너무나 좋다 강장제, 보혈제는 물론 피로회복, 항암작용, 독소해소, 당뇨, 심장병, 고혈압 및 저혈압, 체질개선 등등 그 효능은 너무나 건강에 좋은 것이 많다. 옛날 나의 고향에서는 늦가을이 되면 동네사람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깊은 산에 올라가 머루를 한자루씩 따오는 것이 연례행사로 치러오기도 했다. 동의보감에서도 머루가 우리들 몸에 무척이나 좋다는 것이 자세히 쓰여 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즐겨 사용했던 머루는,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머나먼 영월 땅으로 유배되어온 단종이 특히나 좋아했던 과일이었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上王)으로 있다가 사육신의 사건이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한다. 강원도 영월읍의 보덕사라는 절에 안치되어있는 단종의 영정 그림에는 백말을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그려져 있다. 추 충신의 이름은 익한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당하여 외롭게 지낼 때 추익한은 산머루를 자주 따다드리며 문안을 드렸다. 단종은 추익한이 따다주는 머루를 매우 맛있게 잘 받아먹었다. 그날도 추익한은 잘 익은 산머루를 따가지고 단종에게 바치려고 내려오는 길에 연하리 계사폭포에서 단종을 만났다. 단종은 곤룡포에 익선관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유유히 태백산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추익한이 단종에게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자 단종은 태백산으로 간다 하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추익한은 급히 단종의 처소로 와보니 이미 단종은 변을 당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추익한은 다시 단종을 만났던 계사폭포까지 와서 깨끗한 바윗돌위에 머루를 담은 바구니를 올려놓고 단종이 떠나간 태백산쪽을 향해 큰절을 두번 올리고 이내 따라죽었다. 단종은 평상시 추익한이 따다 바쳐드리는 머루를 즐겨먹으며 멀리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그리며 이 머루를 사랑하는 왕비와 함께 먹는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며 항상 왕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머루에 얽힌 옛이야기도 대화 속에 올려놓으며 우리는 머루처럼 달콤하고 진한 우정의 이야기를, 길게 이어지는 머루넝쿨처럼 끝이 없이 이어갔다.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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