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따듯한 부부의 사랑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 Myongyul@gmail.com>
지금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로 있었던 어느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어느 가정에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 눈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눈 수술이 잘못되어 아내는 그만 실명을 하고 말았다. 그 후 남편은 실명한 아내를 부추겨서 매일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출근시켜주고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에는 찾아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정말로 미안하지만 서로 직장이 멀어서……데려다주기가 너무 힘드니 이제부터는 당신혼자서 출근하는 게 좋겠어”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하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 각오를 새겼다.
다음날이 되자 아침 일찍 서둘러 안내지팡이에 의지한 채 넘어지고 부딪쳐가며 익숙지 않은 환경에 울기도 하면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고군분투하며 출퇴근을 하였다. 그렇게 한지 어언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버스운전기사가 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아주머니는 복도 많으시네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아내는 어리둥절했지만 잠시 후 그 이유를 알고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남편은 언제나 매일 그녀의 버스에 함께 앉아주었고, 부인이 직장건물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안전하게 들어가면 등 뒤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보이지 않는 격려와 도움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 부인의 남편은 사랑하는 자기의 부인을 그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매일 부인의 곁에서 지켜보고 보호하며 실명한 아내가 홀로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을 해 주었던 것이다. 이런걸 보면 정말로 사랑의 힘은 위대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대단한 힘이 나타난다.
우리도 부부간에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을 단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젊은 시절에는 사랑을 위해 살고 나이가 들면 살기위해 사랑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 즉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라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웃을 수도 있으며 사랑을 할 수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누구나 나누는 여러 가지 사랑 중에 이성간의 사랑은 태초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하고 사랑스런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인생의 새 출발을 시도한다. 사랑의 대상이고 사랑의 목적인 아내는 젊음의 청년기에는 연인이고 중년이 되면 흉허물 없이 벽이 없는 다정한 친구가 되며 황혼길 노년기에 접어들면 가정의 간호사가 된다. 인생최대의 행복은 서로 이렇게 사랑하며 살다가 둘이 함께 눈을 감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순수하고 따듯한 사랑을 나누다가 “나는 당신을 만나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소”라고 말하며 둘이 함께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가 지켜야할 사명은 상대의 실패와 실수를 지적하는 것에 있지 않고, 실패와 실수를 덮어주는 것에 있다. 남편과 아내는 상대편의 약점을 찾아 헐뜯고 지적하고 다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부족한 부분(Part)를 메워 덮어주고 채워주라고 맺어준 가정속의 파트너(Partner)이다.
삶에 힘겨워하는 반쪽이 축처진 어깨를 하고 있을 때 나머지 반쪽이 주는 격려의 말 한마디는 행복한 가정을 지탱하는 튼튼한 기둥이 될 것이다.
부부는 서로 경쟁하는 여.야 관계가 아니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동반자 관계이다. 배우자를 깎아내리면 자기도 깎이고, 배우자를 높이면 자기도 높여진다. 부부간에 좋은 말은 천 마디를 해도 좋지만 헐뜯는 말은 한마디만 해도 크나큰 해가된다. 자녀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생생한 교육현장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를 앞세워 사는 부부의 모습이다. 그러한 모습이 그 부부와 자녀의 미래에 행복의 주단을 깔게 될 것이다.
참으로 영원할 것 같고 무한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어이없게도 지내고보면 짧은 시간과 세월인 것을 모르고, 꽃길 같은 아름다운 행복을 꿈꾸며 우리는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얼마 전 나는 아는 지인이 병원에 입원해있어서 남자들만 입원해 함께 있는 병실을 찾았다. 암환자 병동이었는데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들의 아내였다. 호기심에 옆의 여자병실을 일부러 누구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찾아들어 눈여겨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 대부분이 할머니를 간호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었다. 늙고 병들면 자식들도 다 무용지물인 듯 싶다.
힘들고 어렵고 아플 때 곁에 있어줄 존재가 오로지 아내와 남편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간혹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생활고와 과거를 들먹이며 부부관계를 가볍게 청산하고 갈라서는 부부도 많지만, 그러나 현재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는 수많은 부부여러분들께서는 너무 서두르지 마시길 부탁을 드린다. 우리는 원수니 악수니, 잉꼬부부이니 찰떡부부이니 하며 살더라도 언젠가 때가되면 갈라져야하는 운명, 다만 신께서 오라는 그때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젊음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 찰나의 순간일 뿐, 결국에 남는 것은 늙어 병든 육신만 남아 고독한 인생여정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알아야 한다. 한때는 잘나가던 권력자나 대기업 사장이었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가라도 늙음의 뒤안길에서 그들은 지금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겠는가? 종국에는 아내와 남편뿐인 것이다. 미모를 자랑하고 재산이 많음을 뽐내며, 고관대작 높은 자리에서 벼슬을 누리고 막강한 권세를 부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도 결국 마지막 인생의 황혼 길에는 오직 아내와 남편뿐이다. 오늘저녁에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했노라, 고생했노라, 감사했노라” 이렇게 말하며 가볍게 따듯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것이 더 늦기 전에 한번 해볼 일이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노라고, 당신 때문에 세상 살기가 훨씬 덜 힘들고 좋았노라고 조용히 뺨을 마주 댄 귓전에서 해볼 일이다. 혹 행여나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한잔의 술을 빌려서라도 꼭 해보도록하자. 그리하면 주마등같은 지난세월에 부부의 두 눈은 말없이 촉촉해질 것이다. <1034 / 081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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