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의(義), 올바름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의(義)라는 글자는 착할 선(善)자와 나 아(我)자가 합쳐진 회의 문자로서 나를 선하게 한다는 뜻이다. 의(義)의 됨됨은 중요한 점이 내게 있으니 인(仁)과는 같지 않다.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한가지물건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서 내가 선할 수 있으면 받지만, 내가 선할 수 없게 된다면 이를 물리쳐서 나를 선한 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의라 한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득사의(見得思義), 수오(羞惡)지심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나의잘못을 부끄러워하고(羞) 다른 사람의 잘못을 미워하는(惡) 마음이다. 의는 부끄러움을 가리키는 정확한 마음의 저울과 같아서, 작은 잘못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의는 시작된다. 나의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닦아야하듯이 자기가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한다.
더러운 얼굴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얼굴을 대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듯, 부끄러움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본성적으로 사람이 지닌 마음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견위수명(見危授命),구요(久要), 역가이위성인위(亦可以爲成人矣), 이익을 눈앞에 두고 의를 생각하며 위험한시기를 당하여 목숨을 내놓고 오랜 약속에 대하여 지난날의 일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님이 말했다.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할 줄 알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땐 목숨을 버릴 줄 알며, 또 옛 약속을 평생 동안 잊지 않는다면 성인이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안중근의사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1910년 3월26일 10시에 사형당하기 직전에 썼다고 한다. 안중근의사는 한국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민족의 자랑이며 의인이시다. 한국에서 보면 개인의 이익을위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위하여 단체행동을 해 공권력에 맞서고, 삭발에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이런 죽음들을 의사(義士)나 열사(烈士), 또는 의인(義人)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에서 보는 의인은 세 가지의 기준이 있다.
첫째는 말씀에 순종하고, 둘째는 죄악을 미워하며 셋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바를 보면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고 쓰여 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3:10~12)”. 즉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갖고 깊이 생각해본다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죄를 한 번도 안 짓고 사는 사람은 없다. 죄를 지었느냐 안 지었느냐를 따지기 전에 사람에게는 이미 죄를 지을 수 있는 근본적 죄성이 그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죄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성경은 분명히 사람들에 대해서 의인은 없다고 기록되어있다.
삼민주의(三民主義)의 제창자이고 중국 근대화운동의 창시자인 손문선생은 지각(知覺=알고 깨달음)을 기준으로 사람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먼저 알고 깨닫는 자 2)나중에 알고 깨닫는 자 3)아무리 얘기하고 가르쳐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자.
여기서 보면 첫 번째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보통사람이며, 세 번째 사람은 부족한사람이다. 남보다 먼저 아는 사람을 우리는 선지자라고 한다. 남보다 먼저 깨닫는 사람을 선각자라 하며, 남보다 먼저 달려가는 사람을 선구자라하고, 남보다 먼저 나아가는 사람을 선진자라고 한다. 앞장서서 남을 인도하는 사람을 선도자라 하고, 남보다 먼저 보는 사람을 선견자라고 한다.
조두남선생님이 작곡한 선구자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비장감을 느낀다. 그 가사에 나오는 산과 강과 정자는 모두 북간도의 것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한말(韓末)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나라의 국권회복과 비원(悲願)과 민주독립의 웅지(雄志)를 품고 북간도와 만주로 망명과 독립운동을 떠났다. 선구자는 그때의 심정을 노래한 명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춘원 이광수선생의 소설가운데 ‘선도자’라는 소설이 있다. 이것은 민족의 선각자인 도산 안창호선생님을 그린작품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반드시 선각자와 선구자와 선도자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잠잘 때 먼저 일어난 분들이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때에 먼저 깨달았으며 우리들이 우왕좌왕 방황하고 있을 때 먼저 앞장을 서서 달려 나간 사람들이다. 그분들은 의인이고 영웅이며, 개척자이고 지도자이고 혁명가이며 투사요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역사의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빛을 주고 힘을 실어준 훌륭한 분들이다. 그분들은 길이 없는데 길을 개척했고 방향을 모르는데 방향을 가르쳐줬으며 비전이 없는데 비전을 보여주었고 용기가 없는데 용기를 일깨워 불러주셨다.
우리 모두는 그분들을 우러러보고 마음속에 흠모하고 감사와 경의를 표해드려야 한다. 그분들은 나보다 우리를 생각한사람이고 개인보다 나라를 생각했으며 자기의 이익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했고 명예보다 진리를 생각했으며,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시한분들이다. 그러한 위대한분들이 계셨기에 나라가 빛나고 우리민족이 명맥을 유지했으며 힘을 발휘했다. 그분들은 나라의 원동력이며 기둥이고 겨레의 혼이자 우리나라역사의 등불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성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영원히 멸망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로마는 외세의 침략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 때문에 안과 속이 썩어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의(義)는 나라의 빛이고 역사의 지주(支柱)이며 민족의 생명이다. 의를 망각하고 영리만 쫓는다면 국가는 무너지고 민족은 쇠망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의역사가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치는 큰 교훈이고 산 계명인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의의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의 양심과 도덕심은 건재한가?. 우리는 혹시 도의를 저버리고 자기의 영달과 이익에만 집착하여 탐욕의 노예가 되고 향락의 포로가 되어 대의나 공덕심과 나라를 망각하고 무성실, 무책임, 무계획, 무원칙의 생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이제 깊이 자신을 돌아보고 진지한 자기성찰을 향해 각성하며 의롭게 살자. 다시 말해 저마다 양심과 마음의 거울 앞에 서서 진실 된 자아반성(自我反省)의 시간을 가져보자. myongyul@gmail.com <969/032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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