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여자의 질투심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의 이름은 아담, 여자의 이름은 하와로 지으셨다. 하와를 우리는 일명 이브라고도 칭하여 부른다. 다음은 이브에 대한 우스갯말을 인용한 진실이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이브가 에덴동산을 거닐고 있는데 뱀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 사과를 먹어봐. 그래야 네 남자의 눈에 예뻐 보일 수 있어” 이브가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에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없으니까” 뱀이 비웃으며 이브를 맑게 비치는 우물물로 데리고 갔다. “이 우물에 다른 여자가 있어. 아담이 여기 숨겨 논 여자야” 이브가 허리를 굽혀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물물에 비쳐 나타난 아리따운 여자를 보았다. “아니 나 외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이곳에 숨겨놓다니…” 질투심에 화가 치솟은 그녀는 즉시 뱀이 권한 사과를 먹었다.
이렇게 여자들은 질투의 동물이라고 한다. 여자에게서 질투를 빼면 군자가 된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 실린 재미난 얘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보면 주눅이 들고 본능적으로 시기를 하며 질투를 하게 된다고 한다. 여자들이 예쁜 여자를 질투하게 되는 이유를 보면, 10대~ 예쁜데 공부도 잘하는 여자, 20대~ 성형수술을 했는데 티도 안 나고 예쁜 여자, 30대~ 결혼 전에는 별짓 다하고 신나게 놀았는데 시집가서 잘사는 여자, 40대~ 골프치고 여행 다니고 놀거 다놀고 쏘다니는데 자식들은 좋은 대학에 척척 잘 붙는 여자, 50대~ 먹어도 먹어도 살 안찌는 여자, 60대~ 건강도 타고났는데 돈복도 타고난 여자, 70대~ 자식들도 효도 잘하는데 서방까지 멀쩡하게 살아 호강하는 여자, 80대~ 아직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재미있게 사는 여자.
이상과 같은 농담이 있을 정도로 여자들의 질투는 심하다. 그러나 질투는 꼭 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투심은 남자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은 여자들에게만 존재한다고 착각하거나 또는 질투를 마치 여성들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금껏 세상사의 지내온 내력을 보건데 남성들에게도 그런 질투의 감정이 있으며 실제로는 남자의 질투가 여성보다 더 강하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고 느낀다.
만약에 자신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잃게 된다면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패배감에 대하여 표출되는 적개심이 커지며 더불어 자신의 여성이 다른 이와 더 좋은 사이가 되면 질투라기보다는 분노라는 분출구가 생겨난다. 이러기에 옛부터 남자들은 이런 경우를 없애기 위하여 자신의 애인이나 아내가 다른 남성과의 또 다른 연결고리를 끊고자 윤리나 도덕이라는 개념을 적용시켰다고 보겠다. 그래서 이런 윤리나 도덕적인 관념에 의거 남성들은 질투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 또한 오래전에 남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방책이었지만 지금도 그런 윤리의식들이 여자들에게 존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나 예전의 사대부집 안방마님들은 질투나 시기를 하게 되면 호되게 야단을 맞거나 근신하여야하는 칠거지악에 속했기에 여자들이 더욱더 몸을 사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여자들의 질투는 무력에 의한 해결보다는 눈물과 애처로움으로 표현되지만 남자들은 대체로 분노와 폭력으로 비화되기까지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자들의 질투는 여자들의 그것보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제 남자들은 더 이상의 질투라는 감정에 대하여 흥분과 분노로 표출시키기보다는 왜 질투가 생겼는지 정확한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그것이 더 남자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에 반하여 당사자인 여자도 남자의 질투에 대하여 속 좁다고 생각 말고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표현이 서툴렀음을 이해하고 수긍해주는 마음적인자세와 포용력을 베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남자들도 질투를 하고 시기를 하지만 오늘은 여자들의 질투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남녀사이에서 질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연인사이에서 상대가 다른 이성으로부터 온 전화를 웃으며 받으면 질투를 느끼고, 상대가 다른 이성에게 조금만 친절해도 질투를 느낀다. 부부사이에도 질투가 일어난다. 아내는 길에서 지나가는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는
남편에게서 질투를 느끼고 남편은 어느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아내에게 질투를 느낀다. 이럴 때 질투는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중요한 것은 남녀사이에서 약간의 질투는 관심이 있다는 증거라는 점에서 기분 좋게 봐줄 수 있지만 만약 질투가 지나쳐서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나빠지는 것이다. 오셀로처럼 질투가 이성의 작동을 멈추게 하여 큰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질투는 사랑을 계속해서 살린다는 구실아래 사랑을 죽이는 용어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쪽이 강자라면 한쪽은 약자가 된다. 예를 들자면 연인관계에서 전화를 많이 거는 쪽이나 만나자는 말을 많이 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 질투의 측면에서 보면 질투를 많이 하는 쪽이 덜 질투하는 쪽보다 약자가 된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서 뒤바뀔 수도 있다.
예일대학의 심리학교수 살로비 박사는 미국범죄의 20%가 질투 때문에 생긴 행위라고 말했다. 질투는 무서운 범죄행위의 암적인 요인이다. 그런데 질투의 특성중하나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선 거의 질투를 하지 않는다. 가령 옷가게를 하는 사람은 어느 농부가 농사를 잘 지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으며 회사원은 같은 동네의 식료품점이 잘 된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분야에서 경쟁 관계가 있을 때는 질투가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질투의 불길이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속에서 작용하기 시작하면 더욱 그 불꽃이 사나워진다. 부부관계, 애인관계, 친구관계에서 이 질투의 불꽃이 일어나면 반드시 그 불길에 화상을 입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질투의 임상학”을 저술한 화이트박사는 이혼한부부의30%가 질투 때문에 이혼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질투의 십중팔구는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결함을 질투로 바꾸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분발의 동기로 바꾸는 사람은 행복한사람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해주고 나의약점을 분발의 동기로 삼는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됐으면 좋겠다.
질투심은 사랑의 충동에서 비롯된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이 사람의 사랑과 애정, 관심은 나에게만 향했으면 좋겠고 내가 이 사람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존재가 송두리째 부서질 것만 같다.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자신의 모든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서로의 관계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요소들에 대해 신경과 시선의 모든 레이다망을 달고 주시하게 된다.
질투심은 관계와 사랑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담고 있는 감정인 셈이다. 우리는 그 질투심이 나로 인하여 생겨났다면 질투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 마음을 받아주고 위로해주며 이를 건설적으로 활용해야한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여자이건 남자이건 그 질투심을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myongyul@gmail.com <965/0225201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