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위기의 신앙 흑기사는 없을까?

최래원목사 /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담임
오늘 점심에 귀한 집사님과 함께 Fire House Subs을 들렸습니다. 그곳을 들어가면서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Subs 메뉴 판이 아니라 (사실 저는 점심을 이미 먹은 터라 메뉴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벽에 그려진 큼지막한 그림 한 장 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모든 매장에서 이 그림을 사용하는지 찾아보니까 모든 매장마다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 그림을 제 핸드폰 카메라에 찍었습니다.
불이 난 집,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쉽게 불길이 잡히지 않습니다. 한 아이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곧 떨어 질 것 같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 아이의 생명이 일촉즉발의 상태입니다. 소방대원들도 바라만 보고 있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인듯해 보입니다. 그때 말을 타고 전신 갑주를 입고 나타난 흑기사가 그 난간에 매달려있는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어 구출해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카메라에 담은 것은 이 그림이 어찌나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의 현실과 너무 흡사해 서 입니다.
교회의 추락의 끝은 언제 끝날 것인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날 교회는 너무 높이 날아 올랐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더 높이 날기 위해 세상의 방법들을 동원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고 방법과 제도와 유행을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한때 교회는 세상을 삼킬 기세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던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세속화된 교회시대에 와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언제부터인가 불타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보려고 손 하나로 겨우 난간을 잡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를 어떤 목회자도, 어떤 부흥사도, 내로라하는 선각자도 지금의 상황에서 버둥거리는 교회를 구해낼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구해낼 수 만 있다면 구해주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지만 세상의 타오르는 불을 끄기에도 소방관들은 버겁습니다.
집은 불타고 있고, 그 동안 그 속에서 누리던 화려하고, 멋진 향락과 돈으로 치장했던 성전은 암몬에 사로잡혀 불이 붙고 있는지도 모른 체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돈의 전능하심을 믿고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영혼들은 하나 둘씩 불 속에 타 들어 감에도 누구 하나 구해낼 영적 소방관은 없습니다. 난간을 겨우 붙잡고 있는 소년은 점점 지쳐 손을 놓고 불 속에서 죽던지, 떨어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순간 그 앞에 나타나신 흑기사가 있습니다. 그 소년은 흑기사가 내민 손에 의지해서 무사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속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절대 세속적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들, 세상의 신을 섬기면서도 우리는 하나님만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세상을 붙잡고 그것에 안정감을 두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안정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속적 삶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둘러댑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대의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런 모습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한 것 이라면 목숨 걸고 자신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순교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친척과 본토와 아비 집을 뒤로하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고 삶의 대가를 지불하면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싸우면서도 그것도 하하나님 주신 것 이라면 감사하고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 들이며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 벌어 살아가는 힘든 성도들이 내는 한푼 한 푼의 소중한 헌금들은 드리는 사람들? 그들의 헌신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들의 순종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그들의 대가는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곧 세상을 붙잡고 있던 난간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을 붙잡고 살았던 모든 안정감이 불타고, 사라지고, 그 꿈이 일장춘몽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럼 화려함도, 사치스러움도, 웅장함도, 거대함도, 부유함도, 펑펑 썼던 재물도, 비싼 차 굴리고 다니던 것들도 다 타버리고,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이대로 가면 모두 다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나부터 변화되고, 나부터 죽고, 나부터 희생하는 마음 없이는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 외에 우리가 지금까지 붙잡았던 모든 것, 그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무너질 난간일 뿐입니다. 불타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붙잡은 모든 것은 또한 불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수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강단에서 외치는 소리는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세례(침례)요한의 외침이 다시 광야로부터 들려와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입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아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리라” 이런 외침의 소리들이 강단에서 들려 져야 합니다. 지금은 부와 번영의 세례가 부어질 때가 아니라 회개의 세례가 임해야 할 때 입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 지는 목회자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강단에서 회개의 세례가 임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서서히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러 갈 것이고,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 역시도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성도들이여 세상의 불타는 난간에 매달려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고 살지 마십시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모든 것이 다 타버릴 것을 알기에 손을 내밀고 계시는 영혼의 흑기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뛰어 내리면 우리는 안전하게 살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구해 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제도나, 방법이나, 도구나, 어떤 인물도, 불타고 있는 세상을 붙잡고 있는 교회를 구해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예수님께 당신의 몸을 완전히 맡기기 전에는 당신의 안전한 구원은 결코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933/062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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