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어느 지인께서 며칠 전에 보내준 이메일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제나 나의입장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을 곁들였다. 맞는 말이다. 먼저 그분이 보내준 내용을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어느 종합병원의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참회의 일기이다. 그 간호사가 암(癌)병동에서 야간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새벽5시쯤에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황급히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병동에서 가장 오랫동안 입원중인 암 말기의 남자환자였다. “무슨 일이세요?” 놀란 마음에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한 개를 내밀며 “간호사님 나 이것좀 깎아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 한 개를 깎아 달래니 맥이 풀렸다. 옆에선 그의 아내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주세요” 간호사는 환자들이 깰까봐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사과를 깎았다. 그는 그녀가 사과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러자 예쁘게 좀 깎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할 일도 많은데 별난 요구를 하는 환자가 못마땅해서 못들은 척하고 사과를 대충 잘라주었다. 그 간호사는 사과모양새가 여전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를 뒤로하고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며칠 뒤 그는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삼일장을 치룬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그 간호사를 찾아왔다. “사실 며칠 전 새벽에 간호사님이 사과를 깎아 주실때 저는 깨어있었어요. 그날아침 남편이 저의 생일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내밀더군요. 제가 사과를 참으로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서 깎아줄 수가 없었어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그 고마운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간호사님이 바쁜 줄 알면서도 저는 모른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사과를 깎아주셔서 정말로 고마웠어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나는 그 새벽,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간호사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생일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줘서 고마웠어요” 라고…….그것으로 충분했다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생각과 판단대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우리의 생각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늘 나의 생각이 먼저인 삶을 되돌아보며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마음적인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자. 역지사지라는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卽皆然=처지를 바꾼다 해도 모두 그렇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뜻을 직역한다면 (처지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로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역지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역지사지로 좀 생각해봐” 라는 식으로 상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바라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본래 역지사지라는 말은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 관점, 시각에서 생각해본다는 뜻으로 나 아닌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에는 대부분 역지사지는 나의 유익(有益)을 꾀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너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볼게’로서의 역지사지가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봐’의 역지사지인 셈이다. 혹 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계에 있어서 보다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역지사지의 전용(轉用)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결국 사회는 ‘관계’의 총집합인 셈이다. 그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갈등과 반목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건은 발생하는 문제가아니라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또는 더 넓은 지평(地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역지사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역지사지에 실패를 한다.
그 까닭은 앞에서 말했듯이 역지사지를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나’만의 유익과 편리는 관계를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타인을 나에게 받아들이거나 내가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한다. 내 마음 문을 꽉 닫아둔 채로는 그 어떤 소통도 이루어질 수 없다. 나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좁은 사고방식,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 관점, 시각을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하는 태도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고 만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는 우리는 오늘도 늘 겪고 지내며 살고 있다.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말을 잘 이해하고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공격(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한 듣기보다는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한 ‘듣기’가 이루어질 때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사회도 조금씩 조금씩 따듯해질 것이다.
오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나 자신의 마음문은 열려있는가?’……. <myongyul@gmail.com> 925/043020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