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내 사랑 커피, 커피 없이는 못살아.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얼마 전 어느 잡지에 실린 커피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커피를 마시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전립선암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글이었다. 커피를 몇 잔 더 마시고 매일 조깅하는 거리를 조금씩 더 늘리는 등의 운동습관이 남성의 전립선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공준보건학과 연구팀은, 분석결과 커피와 규칙적인 운동이 전립선암 발병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제껏 커피를 마시지 않던 사람이 억지로 커피를 마실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많이 마시는 것에 대해 걱정하던 커피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약 5만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하루 6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전체 전립선암 위험을 19%, 공격적인 전립선암 위험은 14%까지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같은 커피의 효과를 인슐린과 포도당 대사 때문으로 해석한다. 같은 원리로 커피가 당뇨를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바있다.
커피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부터 찾아 마시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와 같이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한 것이 커피라고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인 샤를 모리스 드탈레랑은 말했다. 커피는 동양의 차(茶), 남미의 마테 차와 함께 세계 3대 음료수라고 일컬어진다.
커피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가 원산지로 아주 오래전에 아랍에 전래됐다고 한다. 아라비아 커피나무는 기원전 8백 년경 에디오피아 서남쪽 카파주에서 양치기를 했던 사람이 발견했다. 양들이 근처에서 자라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흥분하는 것을 보고 양치기들도 따라서 먹어본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잠이 깨는 것을 알게 됐다. 6세기에 에디오피아가 예멘을 침공하면서 아라비아에 커피문화가 본격 이식됐다고 한다.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커피열매로 술을 만들어 마시거나 곡류, 두류와 같이 분쇄해 식량으로 사용했다. 이후 날 커피콩(生豆, Coffee Bean~껍질을 제거한 가운데 종자부위)이나 커피씨 껍질을 건조시켜 그냥 끓여 먹다가 5세기경에 최초로 볶고 분쇄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13세기 중반경부터 요즘처럼 생두를 200~250도로 볶아 마시는 방법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커피는 9세기부터 아랍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됐고 14세기에는 아랍의 식민지가 된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경작됐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고종은 1896년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시절 우리역사상 처음으로 커피를 접해본 후 커피를 극히 애호했다고 한다.
아시아국가가운데 일본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것은 1716년경이다. 네덜란드 사람이 처음으로 커피를 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이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구미국가와 수교하게 되면서 커피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5년 을미사변 때 칼 위베르(Karl Waeber)초대 러시아공사가 커피나무열매를 한국에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이듬해인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할 당시 위베르 공사의 처형인 프랑스계 독일인 손탁(Sontag)으로부터 커피를 처음 접한 이후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때의 커피는 모난 설탕덩이 속에 커피가루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이 커피에는 슬픈 역사의 비화(悲話)가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발표된 경술국치일인 8월29일은 공교롭게도 고종의 47회 만수절(생일)이었다.
이날 고종은 대신들에게 가배다(커피의 한문음역)를 대접하겠다며 수라간에 일러 커피를 내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 커피에 독이 들어있었다. 고종은 커피를 조금 마시다 잔을 내려놔 큰 탈이 없었으나 황태자 순종은 커피를 단숨에 마셔 잔을 떨어뜨리며 구토를 했다. 다행히 고종황제 암살음모는 미수로 그쳤으나 워낙 약골이었던 황태자는 이 사건이후 치아가 몽땅 다 빠졌다. 훗날 순종으로 즉위한 황태자는 정신상태도 밝지 못하고 가뜩이나 안 좋은 눈이 더욱 나빠서 심한 근시로 고생해야 했으며 성불구로 두 명의 황후는 잠자리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고종은 손탁 여사에게 손탁 호텔(Sontag Hotel)을 지어줬으며 1902년 이 호텔 안에 정동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를 파는 다방이 생겼다. 이에 앞서 1896년에 러시아상인이 잡화점 안에 다실을 경영했다는 사실도 전해지고 있다.
3.1운동 이후의 일본인이 지금의 명동에 멕시코라는 다방을 냈다. 1910년경 세종로에 나무(땔감)시장을 벌인 한 프랑스인은 보온병에 넣어둔 커피(洋湯국)를 나무장수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매물을 유치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인스턴트커피는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의 휴대용 커피로서 크게 생산량이 늘어났다. 전쟁 후에는 인스턴트식품의 물결을 타고 널리 일반화되었다.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계기로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일반인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서 힘을 뜻한다. 에디오피아에서는 커피나무가 야생하는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처음에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하다가 1650년 무렵부터 커피는 나라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어로는 Coffee, 프랑스, 포르투칼, 스페인어로는 Caf , 이탈리아어로는 Kaffee, 러시아어로는 Kophe, 희랍어로는 Kafoo, 등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배, 또는 가배다, 가비, 고희 등으로 음역되어 쓰여 왔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커피, 열심히 일하다가 구수한 커피한잔으로 노고(勞苦)를 풀며 주위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아는 어느 커피 애호가인 여성 한분은 “말썽꾸러기 남편보다 이 커피를 더 사랑하며, 남편 없이는 하루를 살 수 있어도 커피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수가 없다”고 커피 애호가다운 예찬론을 쏟아냈다. 푼수덩어리 남편들은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커피만도 못한 천덕꾸러기 남편이 되지 말자. 고생하는 어부인을 커피 맛처럼 달콤하고 뜨겁게 사랑해주자. 그것이 남편들의 자기 명줄대로 사는 길이다. <myongyul@gmail.com> 080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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