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13 ) 

<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 ( 13 )
호화유람선 취업 희망자들의 눈물

마이애미항은 전 세계 호화유람선(당시 3만~10만톤급, 현재는 최대 22만 톤급 =16층, 객실 2천4백, 승객 5천4백명-까지 있음)의 모항으로 당시 주말이면 평균 18~20척의 유람선(바다위에 떠다니는 초호화 해상 호텔)이 입항해서 관광객들을 내려주거나 마이애미 지역 관광을 마친 다음 새 관광객들을 더 태워 다시 떠나는 세계적인 관광 중심지다.
한국인들의 근면성이 알려지면서 한국인 종업원(바텐더,웨이터,벨맨,도어맨,셰프,키친헬퍼,룸클럭,카지노딜러 등)을 고용하는 유람선이 많아 당시 한국인 종업원이 천여 명에 달했고 따라서 주말이면 항구에서 가까운 마이애미시 중심가에는 이 분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유람선 종업원의 취업을 알선하는 한국인 인력공급업자들도 3~4명에 달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어느 날 아침, 신문사에 출근하는데 12명의 한국 청장년이 신문사 앞에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 온 이유를 물으니 “너무 억울해서 신문사에 호소하러 왔다”고 했다.
이 분들의 분위기가 울분으로 가득 찬 표정 등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낀 필자는 우선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차 한 잔씩을 대접하며 차근차근 이 분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이 중 대표격인 경기도 파주에서 왔다는 장년 한 분의 하소연이다. ‘유람선에 취직을 하면 월 최소 천불(현재 약 3천불?) 이상 벌 수 있다는 말에 처자식은 형님 댁에 맡기고 집을 팔아서 5천불(현재 약 1만5천불?)을 만들어 업자에게 줬다. 그 후 6개월 안에 취직 통고를 받으면 곧 미국 마이애미 항구의 직장에 나타나야 한다는 업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기를 만 2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비싼 여비를 위해 빚을 내어 무작정 현지에 와 보니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이 백여 명이나 대기하고 있어 기가 찼다. 업자를 만나 항의했더니 적반하장 격으로 좀 더 기다리면(?) 통지가 갈 텐데 왜 미리 와서 속을 썩이느냐고 핀잔을 주더라. 그런데 구직희망자 중 뒤늦게 온 사람이 먼저 유람선에 취직하는 것을 알고 내용을 알아 봤더니 업자가 천불씩을 더 달라고 해서 준 사람들이었다.
애당초 업자의 말은 5천불로 취직이 보장된다 해서 집까지 팔아 없앤 마당에 돈을 더 낼 능력도 없고 지금 식생활 해결 방도조차 막연한 처지에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 피해자들이 국내까지 따져 수백 명인데 그 중 대표 자격으로 오늘 12명이 이 자리에 같이 왔다’는 것. 이 분들 중 몇 분은 억울함을 못 참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시 호화유람선의 한국인 종업원 수가 많고 인력 공급업자들 3~4명의 돈벌이가 엄청난 것이라고 들었지만 그 그늘에는 이렇게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만큼 필자의 활동 무대와 마이애미 항구까지의 거리가 먼데다 특히 이 분들이 마이애미 항에 들어 왔다가 손님을 내려주고 태운 후 다음 날이면 바로 떠나는 뜨내기 생활이었기에 그동안 이 분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인력공급 업자 중에는 제한된 취직자리임에도 곧 취직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 무작정 취업희망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3~5년씩 방치하거나 악질의 경우 취업 희망자들을 마이애미 남쪽 캐리비아에 있는 큐라사오섬, 푸에토리코 등지까지 오게 한 다음 돈을 받은 후 취업 협의차 마이애미에 다녀온다면서 영원히 자취를 감춘, 피도 눈물도 없는 짓을 한 자도 있었다. 방향 감각도 없는 외지에서 말도 안 통하고 가진 돈은 없고 이렇게 내팽개쳐진 분들의 고통과 절망감 그리고 울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는가!
이렇게 인력 업자들 중에는 피해자 쪽에서 봤을 때 사기꾼보다 더한 악질적인 업자도 있었지만 그 중에는 취직이 늦어져 불평하는 취업희망자들에게 즉시 돈을 반환해 주어 전혀 불평을 듣지 않는 양심파도 있었다.
이러한 취업희망자들을 울린 사건이 신문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하자 제일 먼저 필자를 찾아 온 분은 미국 ABC-TV 기자였다. 동포 업자들의 추한 꼴을 미국 언론에 감춰주기 보다는 수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 기자에게 이미 보도된 기사 내용과 실상 내용 전부를 알려 줬다.
이 TV 방송은 며칠 후 연 이틀에 걸쳐 한국인 악질업자 관련 뉴스를 황금시간대에 대대적으로 터트렸다. 그 결과 미 수사기관이 동원되었고 탈세 혐의 등도 조사가 진행돼 업자 한 분은 일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인력 업자들은 미화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모국의 달러 획득에 크게 공헌하는 ‘애국자’였음에도 불고하고 많은 피해자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르면서 차츰 불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 후 국내 피해자들의 고발로 업자 중 한 분은 귀국 길에 수사당국에 검거돼 엄청난 돈을 쓴 끝에 길지 않은 동안이나마 감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계속) kajhck@naver.com <872/201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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