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편지> 故 정대용 선생님 영전에 …….

<발행인편지> 故 정대용 선생님 영전에 …….

지난 1년반 동안 총 71회 걸쳐 “우리말 좋은말”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한글의 깊은 뜻과 아름다움을 동포들에게 알리고자 바쁜 가운데서도 마감시간을 한번도 넘기지 않으셨던 정대용 선생님. 선생님의 부음을 들은 것은 지난 금요일(4월14 )2박 3일의 일정으로 미주신문인협회 총회에 참석한 날이었습니다.

비보를 접하고 잘못 들었을 거야, 설마 했는데…..

2주전인 지난 3월말 마이애미를 방문했을 때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리말 좋은말” 칼럼은 100회까지 쓰고 그 다음에는 “한국의 역사를 쓰겠다며 칼럼의 소재를 많이 준비해 놨으니, 원고료나 듬뿍 받아야 되겠어요.”하신 후 “무료로 배포하는 신문에 원고료를 요구하다니, 농담이에요”하면서 호탕하게 웃으시던 정 선생님이 모습이 저의 뇌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리말을 가르치시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이민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지난 1987년에 마이애미 한국학교를 설립해 18년간 1천여 한인동포 2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글을 가르쳐 왔으며, 마이애미 문화원장으로 항상 조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오신, 정 선생님의 뜨거운 한국어 사랑에 언론인의 한사람으로 머리 숙여 감사 드리며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부디 죽음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그동안 하지 못하셨던 많은 일들은 이제 남은 우리들에게 맡기시고 평안하게 계시옵소서.

그동안 매주 보내주신 “우리말 좋은 말”의 주옥같은 글들은 영원히 플로리다 한인동포사회 모든 한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주말마다 전화를 걸어 “이번에 보내는 글은 아주 맘에 안 들어, 이사장이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칼럼을 100회 쓰면 한겨레저널에서 책을 내 주실 거지요.”하시던 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돕니다. 또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끔찍이 사랑하셨던 선생님의 글 중에 저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 “한글의 수난사”란 제목의 글이 제 귀에 들려 오는 것 같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봅니다.

<우리 역사에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우리 한민족의 지금은 어찌 되어 있을까?

역사를 배우며 하늘의 배합이 이렇게 절묘하구나를 느낄 때가 바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이방원의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이다.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통해 조선을 세운 것과 다섯째 막내 아들로 (한씨 부인 소생으로는 이방원이 막내였다.) 왕위와는 거리가 제일 멀었던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두 차례나 치르며 왕이 된 것은 바로 세종대왕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조물주의 조화였다. 이 세종대왕도 셋째 막내 아드님으로 본시 왕위 계승권에서 가장 처져 있었던 분이었으니 이것 또한 양녕대군의 미친 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닌 하늘의 안배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존심이 되는 한글을 갖게 된다. 우리의 한글은 단순히 우리의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만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이 한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한민족이 되어 하나됨을 자랑하는 우리 정체성의 상징인 것이다. <……. 중략>

ㄱ, ㄴ, ㅁ, ㅅ와 ㅇ이 그 소리가 나는 혀와 이, 입술과 목구멍의 상형인 것을 밝혀 주었으며 ㅏ(아래 아), ㅡ, ㅣ는 천지인(天地人)의 상형으로 만물의 근원이며 우주의 진리임을 세종대왕의 옥음으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훈민정음 서문은 또 세계에서 유일한 권리대장전이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권리대장전이 있으나 당시의 절대자 왕이 친히 백성들의 권리를 위해 만든 장전은 없다. 백성 스스로 싸워 얻은 장전만 있을 뿐이다. 우린 우리가 스스로 찾기도 전에 그 옛날 우리의 절대자였던 왕이 우리를 위해 이런 권리대장전을 만들어 주셨다.

사람마다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

바로 세종대왕의 이 말씀 때문에 우리 한글은 그 험한 수난을 겪으면서도 건재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그 덕을 누리고 있다.

올해 또 뜻 깊게 맞는 한글날을 맞아 우리 한글이 너무 안쓰러워 감히 울면서 이 수난사를 짚어 본다.>

정 선생님은 지금 사랑하는 가족과 친치 그리고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글은 민족이 정체성이 담긴 혼이라며 자녀들에게 꼭 한국어를 가르쳐야 된다는 신념으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한국어 사랑은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부디 편안히 쉬시옵소서.

2006년 4월 18일<540>

이승봉(한겨레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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