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을 가끔은 어리석은 바보처럼 살아가는것도 나쁘지 않다.

<김명열칼럼> 세상을 가끔은 어리석은 바보처럼 살아가는것도 나쁘지 않다.

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꽃이나 열매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키가 낮은 야생화는 꽃을 만드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한국의 경우, 이들은 4월중순이 되기 전까지 암꽃에 꽃가루가 날아와 수분에 성공해야 다음해 자손을 기약할수 있다. 5월이 넘어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그늘에 가려 아무리 화려한 꽃을 피워도 중매쟁이인 벌과 나비가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나무는 씨앗을 품고 있는 열매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대부분 나무에는 새가 살기 때문에 벌과 나비가 찾아와도 새에게 잡혀먹기 십상이다. 게다가 예쁜 꽃을 만들어낸들 숲속그늘에 묻혀 보이지 않을게 뻔하다. 따라서 나무는 근친교배의 약점을 감수하고서라도 바람을 중매쟁이로 택한다. 나무는 꽃에 공을 덜 들이는 대신 열매를 만들어 짐승들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택했다. 산짐승이나 다람쥐, 토끼, 새들이 열매를 먹고 먼 곳에서 똥을 싸면 소화가 안되는 씨앗은 그대로 토양에 떨어진다. 힘 안들이고 먼곳까지 자손을 전파할수 있는 셈이다.

참나무가 선택한 짐승은 다람쥐나 청설모다. 참나무가 만드는 도토리는 몸집이 통실해 바람을 타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도토리를 주로 먹고사는 다람쥐나 청설모는 도토리를 입에 물고 좁게는 수십미터에서 많게는 수Km까지 이동할 수 있고, 참나무가 자라는 곳보다 더 높은 고지대에도 간다. 이어 겨울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도토리를 땅속에 묻는다. 그런데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다람쥐나 청설모는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플로리다주에는 다람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는 도토리나무(Oak Tree)가 참으로 많다. 길가의 가로수는 물론 정원수와 공원의 관상용, 그리고 주 전체의 어느곳을 가더라도 이 도토리나무들이 팜추리와 함께 광활하게 공존하고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이 참나무들에게서는 수도 없이 많은 도토리들이 열매를 맺어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땅위를 온통 덮고 있다. 나의집 앞 가로수 도토리나무에서도 매년 어김없이 많은 도토리들이 열매를 맺어 다람쥐들에게 풍성한 먹잇감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도토리가 너무나 많이 열리다보니 땅위에 지천으로 깔려 나뒹구는 것이 도토리다. 어림잡아 매년 커다란 자루로 한 자루도 넘을 만큼 많은 도토리가 열려 그것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담는 것도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한국 같으면 이 도토리를 주워 다가 도토리 묵을 쑤어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서는 너무나 많다보니 엄두조차 내지를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 및 주변 사람들도 이 도토리 때문에 골치를 앓으며 도토리 치우기에 진땀을 빼고

있다.

올해도 도토리는 연례행사처럼 수도 없이 많이 열렸다. 탐실하게 익어 열려 떨어진 도토리들을 다람쥐들은 신이나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입안 가득히 주워 처넣으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런데 이 다람쥐들은 매년 가을이 오면 겨울양식인 도토리를 열심히 물어다 땅속에 묻어 두는데, 어리석게도 그렇게 묻어둔 장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다람쥐의 겨울식량이 되지못한 도토리는 나중에 도토리나무가 되어 다시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선물한다. 다람쥐의 기억력이 탁월해서 땅속에 묻어둔 도토리를 전부 다 찾아 먹어 버렸다면 이곳이나 산속의 도토리나무는 씨가 말랐을 것이다. 다람쥐는 어리숙함 때문에 또 다른 식량을 제공받게 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모두가 영리하고 똑똑하고 계산이 무척 빠르며 이해타산에 빠끔이다.

영리하다 못해 영악하기 까지 하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기지(其智)는 가급(可及)하나 기우(其愚)는 불가급(不可及)하다. 똑똑한 사람은 따라 할 수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흉내낼 수 없다. 사람은 영리해지기는 쉬워도 어리석어지기는 힘들다. 그 만큼 어리석음을 따라 하기가 더 힘들다. 그것은 곧 자기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풀어서 말을 하자면, 영악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만약에 어느 사람에게 헛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그걸 채워주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관계가 대개가 이러하다.

서로간에 모자람을 채워주고 어리석음을 감싸주고, 미숙함을 배려해주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은 남에게 배울게 없다. 그래서 다른사람(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그로인해 외로워진다. 남들이 너무나 잘나고 난체 하기 때문에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은 일부러라도 모르는 척, 어리석은 척, 못난 척 하며 사는 것이 도리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늘 부족하고 겸손하게 처신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어간다면 외롭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흔히들 바보라고 놀린다. 그런데 우직하고 순수하게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라고도 한다. 세상을 균형있게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총명한 사람으로 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바보로 살기는 더 어렵다.

서양의 문화는 ‘자기를 제대로 알려라’ 하는 이론이고, 동양의 문화는 겸양의 미덕을 갖춘 ‘자기를 감추라’고 강조한다.

동양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드러내 보이면 상대방이 나를 시기하거나 경계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우나 어리 숙한 듯 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툰 듯 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듯 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듯 하고, 곧으나 휘어진 듯 하고, 전진하나 후퇴 하는 듯 어리석고 바보처럼 사는 것이 결국에는 자기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다. 질투와 시기는 언제나 자기의 능력을 잘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옛날 중국 청나라 시대의 정판교는 ‘바보경’이라는 책을 쓰고 그 교훈을 이렇게 전한다. 바보로 어리석게 살아가는 네가지의 장점 이야기다. 첫째,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처세이다.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지기 싫어하고 나서기를 좋아한다. 총명함과 재주를 드러내면 여우가 꼬리 때문에 죽듯이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 물러섰기에 나아갈 수 있다. 총명과 어리석음, 전진과 후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드러내지 않았기에 시기를 받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총명으로 지적하지 않고 편을 가르지 않기에 화합할 수 있다. 남의 사소한 일을 따지지 않고 덮어주고 도와주며 화목 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넷째, 사람을 원만하게 대하는 처세이다. 원만한 처세는 충돌을 막게 된다.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고 남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공통점을 추구하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도량은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원한과 마음을 만들지 않는다.

손자(孫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바보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방을 굴복시킨 자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긴자가 승리자다. 노자(老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다툼이 없어야 근심이 없다. 사람을 이롭게 해야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해야 사물을 얻을 수 있고, 천하를 이롭게 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예로부터 사욕에 매달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얻은 적은 없다. 천하를 이롭게 한 자에게 천하는 안기는 법이다. 어리석게 처세하는 바보는 당장은 뒤진 사람, 낙오자처럼 보여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결국 승리자로 우뚝 서게 된다.

무두가 꽃이 되고, 모두가 별이 되려고만 하는 이기주의적 세상이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살기가 힘들고 각박하다. 계산하면서 세상을 살지 않는 사람, 장군이 되지 않고 스스로 병사가 먼저 되려는 사람, 일부러 질 줄도 알면서 약자를 안아주는 사람, 그런 훌륭한 바보와 어리석은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다. 그 바보와 어리석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인생을 살만한 것이라 여기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밑지는 듯 해도 손해보며 바보처럼 어리석게 살아가자. 그러면 내 주위에는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나의 곁을 떠나가지 않는다.

2021년 새해에는 이렇게 어리석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45>

<애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소원성취 하시고, 남들에게 많이 양보하고, 인정을 베풀며, 범사에 감사속에 이웃과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복된 삶을 영위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저의 글을 애독하여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람되고 후회 없는 새해가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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