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7회>  유태인과 아돌프 히틀러

<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7회>  유태인과 아돌프 히틀러

 

2차 세계대전(1939~45)을 일으킨 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가 유태인 멸종을 시도하다 실패한 얘기는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하여 이미 많이 보아왔지만, 가장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생각해보면서, 한편으로 내 생각은 유태인들은 불쌍하고 히틀러는 악독했다는 생각으로 굳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11박12일의 유럽여행을 하면서 독일이나 폴란드 등에서 수없이 많은 유태인들이 독일 나치정권에 왜? 처참하게 학살되고 죽어갔는지를 곰곰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왜 히틀러가 그렇게 지독하게 유태인 멸종을 획책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Holocaust(유태인 대학살), 영화나 다큐멘터리 기록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스는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지, 유태인들이 독일인들의 미움을 살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본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유태인 학살이유’를 다룬 영화를 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영화나 기록물들은 전부 히틀러는 나쁘고, 유태인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도록 영화가 만들어져 있고, 그런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들은 대개가 유태인 돈줄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왜 그토록 유태인을 증오했는가?. 그 이유를 진짜 심도있게 깊이 짚어보고 싶다. 그러한 이유를 옛날에 발간된 영국의 신문 Daily Mail 신문은 이렇게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청소년 시절의 히틀러가 빈(Wien=지금의 오스트리아 수도) 에서 살 때 여러 가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히틀러 모친이 의사의 실수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심지어 그 의사가 유방암환자인 히틀러 모친을 성폭행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빈(비엔나)에서 미술학교에 다닐때 짝 사랑한 독일여자가 나중에 돈 많은 유태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격분,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부자가 되면 독일여성과 결혼하여 아리안(독일민족)의 피를 흐려놓기 때문에 히틀러가 유태인 멸종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개인, 감정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였다. 히틀러는 유태인때문에 1차 세계대전(1914~18)후 독일경제가 붕괴했고 또 유태인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패전 독일경제를 재건하는데 유태인들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보았다. 종전 직후인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증권시장도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신문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연쇄백화점의 80%가 유태인 소유였다. 한마디로 독일경제와 언론은 유태인이 좌지우지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패전을 유태인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자본주의를 싫어했다. 히틀러는 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도 유태인이 주축이되

어 일어났다고 보았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카알 막스(Karl Marx),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가 모두 유태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경제적 초기 기반지였던 독일 뮌헨에서 1919년 공산주의정권이 잠깐 등장한일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편 골드 하겐교수는 유태인학살 요인을 세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독일사회에서 이어져 내려온 반(反) 유태인문화가 보통 독일인들을 히틀러를 자발적 협력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협력 없이도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학살할 수 있었지만 6백만이나 죽일 수 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유태인 멸종을 공약으로 내건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이를 국가시책으로 추진한 점이다. 민중들이 반 유태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학살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살은 이념화하고 정책화한 정권이 들어서야한다.

셋째 독일의 군사적 우월성이 6백만을 죽일 수 있게 했다. 학살된 유태인들의 대부분은 폴란드, 러시아 등 독일 이외지역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에게 까지도 죽음을 내렸던 것이다. 골드하겐교수는 학살의 책임을 집단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집단으로서의 독일인들이 책임이 아니라 학살에 가담한 개인으로서의 독일인이 책임질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대해 겔라틸교수는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을 진행시키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측근들에게도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라틸리교수는 또 히틀러는 슬라부족(族)에 대해서도 멸종정책을 추진했고 아마도 유태인들보다도 더 많은 슬라부인을 죽였을 것인데 독일사회에서 반 슬라브 감정이 그토록 강한 것은 아니지 않았는가? 하고 되묻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학자 교수들의 평에 대해서 니만 프로그램에 소속된 두 기자는 각자의 체험에서 얻은 평가를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슬라브 사람들인데 종교에 따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계열로 나뉘어져 죽고 죽이는 내전을 벌일 이유가 반드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제까지도 평화롭게 공존하던 이웃들끼리 적이 되어 싸우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인들의 당파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순진한 민중을 선동한 결과이다’ 라고 했다. 즉 역사상 대부분의 학살은 정치인들에 의한 선동의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서양이나 독일 등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학살의 역사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인종분규에 따른 학살이 있을 리가 없었고, 종교에 따른 학살로는 조선조 말에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군이나 애국열사 및 지사, 애국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만행이 저질러지기도 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빚어진 동족상잔의 학살은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 전통에 비추어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학살은 공산주의라는 ‘증오의 과학’이 들어온 때문이었다. 공산주의 이론은 ‘계급의 원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지주(地主), 자본가들을 때려죽이는 일은 이 계급의 원수를 타도하여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는 혁명과업이고 정의로운 행위로 되었던 것이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정의를 내려놓으면 그들을 학살하는 일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구 폭동,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4.3 제주폭동, 그리고 6.25사변중에 좌익 및 빨갱이들이 보여준 동족학살은 우리역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너무나 잔인하고 악랄한 수법이었다. 좌익들의 이런 학살에 대한민국정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무리가 빚어졌다. 6.25남침때 서울에서 피난가지 못한 수천명의 부상병들이 병원에서, 병상에서 인민군과 공산당 좌익 패거리들에게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남로당 전력자(前歷者) 모임인 보도연맹원은 인민군의 서울 입성이후 빨간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설치고 다니면서 우익, 애국인사를 닥치는 대로 잡아서 죽이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이승만정부는 후퇴하면서도 후방의 보도연맹원들을 예방적 차원에서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부와 국군측의 이런 무리는 국가의 생존권본능이 발동한 결과이자 구국의 차원에서 공산당의 학살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대응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자는 공산당 및 좌익, 빨갱이들이었다.

학살에는 반드시 증오의 논리가 있다.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선동, 자본가 및 지주는 계급의 원수라는 선동, 가진자는 타도의 대상이라는 선동, 어느 지역사람들은 안된다는 선동, 등등의 이러한 증오의 논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피를 부르기 쉽다. 증오심을 북돋우는 것을 장기로 삼는 정치인들은 위험하다.

적폐청산, 타도, 숙청, 제거, 음해, 가짜뉴스 등등 살벌한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정부나 정치인들도 위험하다. 선동과 살벌한 용어로써 하는 정치는 인간이 가진 증오심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양심을 마비시키고 이성을 마취시키는 것이다. 증오의 논리는 선동 정치인들이나 좌파 적색분자들에 의해서 학살(대표적인 예로 정치적 학살을 당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대통령이고, 그의 측근 보좌진들이다. 그들은 현대사에 오점을 남긴 부당한 탄핵과 정치적 보복으로 보이지 않는 학살을 당하여 지금도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있다)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유태인 학살, 르완다학살, 공산당 좌익패거리들에 의한 학살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하고 올바른 정치인과 국가지도자로서 그에 걸맞게 올바른 교양과 지식, 품격을 갖춘 양식인자야 되지, 증오심과 복수심을 부채질하는 선동전문가는 국가를 망치고 사회를 마비시키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이러한 자들, 좌파 적색분자들이 위정자가 되고 나라를 통치하면 또다시 무서운 학살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이건 국가간에 더 이상의 잔인하고 천인공노할 학살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147>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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