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반려견), 리암의 상사병(相思病) <3>

애완견(반려견), 리암의 상사병(相思病) <3>

김명열 / 칼럼니스트

인간과 동물간의 사랑

휴머니즘이란 말이 있다. Humanism은 인간의 능력, 존엄성, 주체성을 고조, 강조하는 사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박애사상, 즉 인도주의, 인본주의, 유교의 인사상, 우리나라 한국의 인내천사상과도 공통성을 가진 사상이다. 성경에서의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로 단정된다. 그래서 휴머니즘의 참뜻은 신본주의, 자연중심주의, 기술 중심주의 등과 비교 대조할 때 그 내용이 정확히 파악될 수 있다.

박애사상과 인본주의, 이 단어의뜻은 글자그대로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즉 사람은 짐승이나 미물과는 달리 만물의 영장이므로 그 영장다운 본연의모습인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도리를 말한다. 인간이 할 도리란 나 아닌 타인에게 인정을 베풀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그 인간의 할 도리, 지켜야할 도리 안에는 동물역시 포함된다. 동물에게 사랑을 베풀고 온정을 쏟는 것은 당연히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이고 행하여야할 규본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흥부와 놀부전에서 마음씨착한 흥부가 지붕처마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새끼의 다리를 고쳐주고 나중에 보은의 은사를 받는 이야기이며, 뱀에게 물려서 죽음의위기에 처한 까치를 살려준 이야기, 목에 큰 가시가 세로로 걸려 아무것도 못 먹고 고생하는 호랑이를 살려준 이야기 등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짐승들의 이야기는 우연한 기회에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발견하고 측은지심과 동물을 구하고 도와줘야겠다는 박애정신에 입각한 선행이고, 안으로 눈을 돌려 살펴보자면, 우리가 가족처럼 곁에서 돌보며 기르고 있는 가축에 대한 인정과 사랑은 당연히 우리가 베풀어야하고 실행해야할 인도주의적 측면의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자기의 곁에서 동고동락하며 함께 살고 있는 애완견이야말로 우리는 당연히 그들에게 따듯한 사랑을 쏟고 돌봐주어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고 우리들의 의무와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내 집에서 함께 지내고 생활하며 갖은 재롱과 애교로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고 피로를 풀어주고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게 해주는 이 사랑하는 애완견에게 정을 쏟고 사랑으로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인간됨의 도리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이러한 동물(애완동물)의 사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켜져 오고 베풀어져왔음을 고전의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천을 불문하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 대한 사랑과 그들과의 교감을 글로 남겼다. 다산 정약용의 시 ‘산거잡흥(山居雜興)’20수중에는, ‘고양이도 오게 하며 이마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불심으로 손자처럼 대한다네’라는 대목이 있다. 경기도 수리산 아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선비 이응희(1579~1651)는‘강아지 두마리를 얻고(得二狗子)’란 시를 남겼다. 이러한 글이나 시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옛날 조선시대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애완동물을 사랑하며 교감을 나눴음을 역사적인 기록이나 각종 문헌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알 수가 있다.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1506년 5월19일) 왕은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사랑했다. 내관이 내전에서 기르던 고양이로 사옹원(궁중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관아)에서 쥐를 잡다가 고양이를 놓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의금부에서 관련자를 형장(刑杖)으로 때려 심문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동물을 좋아했던 군주도 있었다. 바로 연산군이다. 그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역대왕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높았다. 연산군일기 여기저기서 동물에 관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영의정 한치형 등은 연산군 7년(1501년) 5월6일,‘궁궐 안에 사냥개를 많이 길러서 때로는 조회(朝會)때에 개들이 함부로 드나드니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라고 고했다. 개를 좋아했던 왕은 같은 해 3월 친열(親閱=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함)할 때 군졸 10명이 응방(鷹坊=매의 사육과 사냥을 맡았던 관청)의 사냥개 10마리를 끌고 어가(御駕)를 호위하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물들도 폭군 연산의 광기(狂氣)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연산군10년(1504년), 왕은 진기한 새와 짐승을 잡아 바치라고 명했다. 무사들을 파견해 호랑이, 표범, 말곰(불곰),늑대 등을 산채로 잡아다 후원에 가둬놓았다. 그러고는 혹은 고기를 먹이며 구경하기도 하고 혹은 친히 활을 쏘아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한편 연산군과 달리 반려동물을 대하듯 동물을 사랑했던 왕도 있었다. 숙종의 금빛 고양이, 금손은 왕의사랑을 독차지했다. 숙종은 금손이를 밥상 곁에 앉혀놓고 고기반찬을 손수 먹였다고 전해진다. 고양이 팔자에 신하들보다 더 왕을 가까이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금손이는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다 죽었다. 그 후 사람들이 고양이를 명릉(明陵)에 묻어주었다.

성종 또한 동물 애호가였다. 그는 사슴과 원숭이, 백조, 앵무새 등을 궁궐 안에 키우며 보는 것을 즐겼다. 성종은 유구국(오늘날의 오키나와)에서 바친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는 것과 관련해 신하들과 설전을 벌리기도 했다. 좌부승지 손비장은 “사람의 옷을 상서롭지 못한 짐승에게 입힐 수 없습니다. 한 벌의 옷이라면 한사람의 백성이 추위에 얼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고 간언했다. 이에 임금은 “외국에서 바친 것을 추위에 얼어 죽게 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원숭이 편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는 신하들이 왕에게 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간언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우리가 주시할 점은 동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왕이나 평민들이나 똑같았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현대사회를 비유하여 말한다면 영국 사람들의 동물사랑은 아주 유별나다. 사람들과 항상 친구가 되어서 가족처럼 살고 있는 개와 고양이등과 같은 애완동물은 당연히 엄청난 사랑을 받을뿐더러, 심지어는 우리 인간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동물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국 사람들이 동물보호나 동몰과 관련된 여러 단체나 기구들을 만들어놓고 범세계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구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동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볼 수 있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사실 영국 사람들에게 개나 고양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맞다. 간혹 언론매체를 통해 사람들이 죽을 때 기르던 애완견에게 유산을 남기는 사례를 보게 되는데, 얼마나 동물(애완견)을 사랑했으면 저렇게 자기의 애완견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하여 말 못하는 미물인 동물, 애완견에게 유산을 물려줄까? 의문점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심도 생겨난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로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하여 애완동물을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뜻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반려동물)로 개칭하였다. 이러한 내면의 본뜻의 의미는, 현대물질문명사회가 가져온 폐해중 하나로 우리인간들은 자기중심적이 되고 인간성이 고갈되어가는 반면 동물들은 항상 천성 그대로 순수하기 때문에 이런 동물을 접함으로써 상실되어가는 인간 본연의 성정(性情)을 되찾는데 그 의미를 두고 그로 인하여 인간과 동물간의 교감을 통한 순수한 사랑적입장이 생성되어 그것이 삶의 생활 속에 흡수되고 적용되어 보다 즐겁고 보람된 생의 의욕과 활기를 이어가는 촉매제의 수단으로도 가장 좋은 방법이고 수단이기에 애완견이나 반려동물의 호감도와 친밀감은 더욱 돈독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안에서 개를 기르고 고양이와 함께 하며 심지어는 닭, 토끼, 돼지, 양, 염소 등의 가축이나 새 종류, 그리고 맹수류나 파충류조차 취미삼이 반려동물로 키우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의 생활 속에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살고 있는 애완견, 리암은 나의 딸 아일린에게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자 친구이고 삶을 즐겁게 이끌어가게 하는 반려의 짝이기도 했다.

그러한 반려견인 리암이 병이 다시 났으니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 같은 위급상황에서 당황을 하면서도 침착하게 리암을 돌보며 병원을 찾아갔다. <1066/04122017> myongy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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