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은 각박해도 인정은 메마르지 않았다.

<김명열칼럼> 세상은 각박해도 인정은 메마르지 않았다.

지난 10월 9일, 저 멀리 걸프만 남쪽 멕시코 옆 해상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Milton은 Category 최고등급인 5까지 상승했다가 점차 북동쪽으로 북상해 올라오면서 4로 내려오고, 급기야 플로리다 중서부 대륙 지방에 도착해서는 Category 3으로 변했다.

곧 이어 내륙으로 이동해 들어오면서 2로 낮아졌고 올랜도를 경유하면서 부터는 카테고리 1로 약화되어 대서양으로 빠져 나갔다.

태풍 밀턴은 수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을 앗아 갔고, 수십만 가구가 전기가 끊기고 집이 침수되었으며, 무너져 내려서 집을 잃은 엄청난 이재민들이 슬픔에 잠겨 넋을 잃고 망연자실 실망에 울고 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재산을 잃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나마 암흑속에 불빛이 스며들듯 각 자선기관이나 구호센터, 독지가들이 온정과 인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어 가뭄속에 단비처럼 희망과 삶의 의지를 일깨우고 북돋아주고 있다.

천재지변(天災地變=지진, 홍수, 태풍과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빚어지는 재앙)은 이렇게 엄청나고 무서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천재지변, 이 단어는 “하늘이 내린 재해와 지상의 변고” 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는 자연 현상을 가리킨다. 지진, 태풍, 홍수, 가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 파괴력은 때로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지역 전체를 황폐화시키기도 한다. 천재지변은 인류 역사상 우리를 항상 괴롭혀 왔으며 이러한 자연 재난은 인간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와 지구 환경의 변화로 인해 천재지변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강력한 폭풍이다. 이 자연 현상은 바다에서 형성되어 육지로 이동하면서 강한 바람과 폭우를 동반하며 해안지역에 큰 피해를 준다.

태풍의 강한 바람은 나무를 쓰러뜨리고 지붕을 날려 버리며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손상시킨다. 이번에 온 태풍 Milton 역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Hurricane였으며 그 피해는 천문학적이고 상상을 초월하였다.

이번의 태풍 밀턴으로 인해 나 역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수영장 스크린이 찢겨져 날아가고, 집 앞 물막이 방파제는 무너져 내렸으며 지붕도 Damage가 크다. 보트 선착장도 부셔졌다.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3일 밤을 지냈다. 태풍의 중심권에 놓인 우리집 지역은 불행 중 다행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으로 집이 침수되거나 무너진 집들은 없었다. 전쟁터를 방불케한 이러한 와중에, 전기도 끊겨진 암흑, 악조건의 상황속에서도 이웃간의 배려심과 인정은 메마르지 않았다. 자가 발전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웃집의 냉장고 식품들이 상하고 부패될까봐 동력선을 하나 둘씩 양보하여 전기선을 연결하여 식품의 부패를 막아주었고, 불빛을 밝혀 주었으며, 허리케인이 오고,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나의 지인과 친구, 친척, 애독자들은 나에게 무사와 평안, 안녕을 비는 카톡과 전화, 이메일, 메시지 등을 보내주면서 격려와 위로, 안부, 사랑, 인정어린 마음을 뜨겁게 보내주었다.

이러한 따뜻하고 고마운 여러분들의 사랑과 인정에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인정(人情),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탄 펄벅(Pearl S. Buck=

1892~1973) 여사가 처음으로 1960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가 경주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광경이다. 해질 무렵 지게에 볏단을 진채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를 보았다. 펄벅은 지게 짐을 소달구지에 실어버리면 쉽게 힘들지 않고 소 달구지에 타고 가면 더욱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농부에게 물었다.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농부가 말했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기록 했다. ‘서양의 농부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소 달구지 위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 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농부는 소의 짐을 덜어주려고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 지고 소와 함께 귀가 하는 모습을 보며 짜릿한 마음의 전율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늦가을 감이 달려있는 감나무를 보고는 “따기 힘들어 그냥 남겨둔 건가요?” 라고 물었다. 먹을 것이 많지 않은 겨울 새들을 위하여 남겨둔(까치 밥)것이라는 설명에 펄벅 여사는 감동했다. “내가 한국에 가본 어느 유적지나 왕릉보다도 이 감동의 현장을 목격한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오기를 잘 했다고 자신한다” 고 기록했다.

감이나 대추를 따면서도 ‘까치 밥’을 남겨두는 마음, 작은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던 곳이 우리나라 였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사람은 한 뿌리임을 알았다. 그래서 봄철 씨앗을 뿌릴 때는 셋을 뿌렸다. 하나는 하늘(새)에게, 하나는 땅(벌레)에게, 나머지 하나는 나에게, 서로 나눠 먹는다는 뜻이다. 깊고 넓은 배려에 펄벅 여사는 감동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소달구지, 까치밥 등등 세상의 인정이 그립다.

인정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를 보면, 느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혼탁한 망념, 마음을 이루는 두 요소 가운데 감동적 요소로 설명돼 있다. 옛부터 우리 민족은 인정이 많은 민족으로 회자돼 왔다.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나눠먹기를 즐기고, 경조사를 서로 챙기면서 정을 나눔이 생활화 됐음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70년대부터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 되면서 핵가족화 되고 그로 인해 노인이 소외되고 경제적 궁핍과 각종 질병들이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사회를 보면 인정이 메말라가고 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퇴폐적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한국인의 인정이 사라져가고 있다. 세상의 인심이 각박해지고 정의가 사라지는 세상과 닮아 있다. 오직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정은 작은 것이고 관심이며 양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인정을 베풀며 살아가야 하며 우리사회에 그 인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도 정의 기반이고 이웃끼리 나누는 사랑도 그러하다. 모든 사회 구성원과도 이러한 인정으로 소통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끈끈하고 돈독한 정을 배워가며 그 속에서 사랑과 희생, 봉사, 존중, 배려 등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성향과 역량, 더 나아가 영의 본질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몸에 익혀 사회와 이웃과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미덕을 갖추었다고 보겠다.

인정이란 끈 이라는 말도 있다. 굶어도 인정만 있으면 화목하게 살고, 정이 들면 무슨 일을 해도 모두 멋져 보이며, 정이 원수라고 하나 정을 끊는 칼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궁극적으로 사람들 속의 사람, 사람과 더불어 사람으로서 갖추고 누리며 베풀고 살아야 옳은 인품이며 덕성을 내포한 지고지순한 이데아(idea=인간이 지향하는 가장 완전한 상태나 모습) 이기도 했다. 그것이 마침내 인간과 사물,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유츄돼 세계속의 인간 사물과 더불어 인간이 향유하고 있을 미적 체험으로 승화한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 ‘인심’로 사람이 본디 지니고 있는 감정을 가리켜 인정이라 한다. 정(情)이란 글자의 풀이로 맑고 밝은 마음을 말하고, 감정은 사람이 느끼어 일어나는 심정(마음)이나 기분이다.

또한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따라 생기는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쾌감, 불쾌감, 따위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켜 감정이라 한다. 정(情)이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하여 느끼게 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사귐이 깊어감에 따라 더해가는 친근함이 인간의 마음이다.

인정이 없다는 말은, 남을 생각해주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인정도 품앗이라… 남도 나를 생각해야, 나도 그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한국은 동방예의의 나라다. 정이 많은 민족이라 소문난 국가이다. 인정을 위시하여 우정, 연정, 애정, 모정, 순정, 심정 등 정이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전통있는 문화 민족이다. 외국인들의 견해로 한국인들은 정 때문에 울고, 웃는다고 한다. 정이 많은 민족이기에 참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범 민족이라 한다. 인정이 없으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인정은 마치 바다의 흐름과 같고, 사상이나 제도는 마치 표면에 이는 물결과 같다. 인정을 팔아서 돈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라도 벗과 이웃을 사라고 했다. 인정이란 잔속에 든 물처럼 누구에게나 쓰고 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샘처럼 푸면 풀수록 풍부해지는 것이고, 인정도 어떤 대상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능력이 풍성 되고 육성되어 진다. 사람들 사이에 정을 주고, 인정을 베푸는 일엔 일방적인 것이고, 연정은 이성을 그리는 마음인 연모이고, 애정은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정을 말하고, 슬프게 여기는 마음인 애정(哀情)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으로 여기는 모정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불변의 사랑이 있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8/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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