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흑백의 논리와 칼라의 조화
나의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상 복장은 항상 흰 저고리와 바지, 치마를 입고 농사 일을 하셨다.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흰옷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금방 흙이 묻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흰옷을 입고 일을 하다보면 얼마 안 가서 흙이 묻어나고 얼룩져 만신창이가 되는 데도, 시골의 농부들은 너 나 할것 없이 아랑곳 하지 않는 듯 흰 옷만을 고집하며 입고 일상생활을 유지해 갔다.
그렇게 흙이 묻고 더러워진 옷을 시냇물 가 빨래터에서 방망이로 두들겨 패며 때묻은 옷을 세탁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양잿물이 그 흙과 때를 제거하는 데에는 커다란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얼굴을 씻을때는 쌀겨나 조두(녹두나 팥을 갈아 만든 가루)를 이용하고, 머리를 감을 때엔 창포물, 그리고 나무 태운 재를 물에 우리고 걸러서 만든 잿물과 양잿물(서양에서 받아들인 잿물이란 뜻=가성 소다)을 사용해 빨래를 해서 옷을 하얗게 세탁했다.
옛부터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 으로 불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으로 부르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옷감과 염색에 관한 우리 조상들의 관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 민족마다 좋아하는 옷 색깔이 있다. 예를들어 중국인은 검정색, 일본인은 남색을 즐겨 입는다. 이와 달리 우리 민족은 흰색을 즐겨 입었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흰옷 입기를 좋아 하였다는 기록은 중국의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부여는 흰색을 숭상하며, 흰옷을 널리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푸른 들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는 사람들의 옷이 모두 희었다’라는 내용도 있다.
실제로 삼국시대 사람들은 지배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흰옷을 입었다. 당시 지배층은 중국의 옷을 받아들여 주로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 이러한 사실은 벽화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음으로써 흰옷을 입은 일반 백성들과 차별을 두었다. 이에 연유하여 백의는 ‘평민’을 뜻하며 금의(錦衣)는 고관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여전히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편 우리 스스로 백의민족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동안 이었다. 당시 우리 민족을 강압적으로 식민통치 하고 있는 일제는 우리민족이 입는 흰옷을 항일에 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는 시조에서 알 수 있듯이 흰색을 지조와 청결로 인식 하였다. 이에 일본인은 조선인이 흰옷을 즐겨 입는 것을 저항의 철학으로 이해 한 것이다. 실제로 일제의 단발령과 함께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선 의병들 모두 흰옷을 입었고, 3.1운동 때에도 흰옷을 입은 조선 백성이 전국을 휩쓸었다.
배달민족,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백의민족 이라고 불렀었다. 흰 저고리, 흰 치마, 흰 바지, 흰 두루마기, 흰 이불 등등, 지금 나이 60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혹시 어린시절의 하얀 빨래터를 기억 할 것이다. 시골에 살면서 어머니나 누나를 따라서 냇가 빨래터에 따라가 물장구 치며 놀던 일, 그 무렵에 냇가 잔디밭이나 깨끗한 자갈밭 위에 널어놓은 빨래는 거의가 흰색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흰색을 좋아했고, 그것은 곧 우리 민족의 상징적인 빛깔처럼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흰색 옷마저 없애려고 했다. 장날 먼 시골에서 읍내로 꾸역 꾸역 장꾼들이 몰려 들때를 기다렸다가 강제로 그들의 치마저고리, 바지 또는 두루마기에다 빨아도 빨아지지 않는 검은색 달구지 기름을 발랐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 해방 뒤부터 우리들의 옷 빛깔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양문명의 수입 과정에서 색깔의 문명도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백의민족 이란 용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구식 용어가 되어버렸다. 대개들 흰색의 반대 색깔로는 검은색을 얘기 한다. 흑백은 선과 악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또 한 흰 것은 밝은 빛으로 묘사되고 검정(흑)은 암흑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것은 회화(그림)의 여러 색깔 중에서는 색깔이 아니라고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태양광선을 분해한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 속엔 흰색이나 검은색은 없다. 그 대신 백과 흑은 밝음과 어두움을 나타낸다. 그래서 흑백은 사물의 명암을 나타낼 뿐, 색깔은 아니라는 이론이 가능해 진다. 미술 선생님중에는 흰색과 검은색을 쓰지 말라고 하는 분이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흰색, 검은색이 거의 사라져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색은 자연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색깔에 대한 이런 이론이 꼭 옳은 것은 물론 아니다. 태양광선이 프리즘을 통해서 분해될 때 무슨 색깔로 나누어 지든 간에 자연속에서도 힌색과 검은색이 있는 것 은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백의민족이었다. 흰빛을 좋아했다. 하얀 옥양목, 하얀 모시, 하얀 비단, 모두가 우리들이 좋아한 옷감 들이었다. 흰빛은 순수를 의미한다.
아무것도 때 묻지 않은 것이 하얀 빛깔이다. 그것은 색깔의 가장 상태인 동시에 색깔의 원점이다. 붉은 치마, 노랑 저고리는 모두 흰것에다 물들인 것이니까 흰빛은 모든 색깔의 원점이고 시작이 된다. 그리고 흰 빛은 가장 때 묻기 쉬운 색깔이다.
조금만 때가 묻어도 그것은 불결해 보이고 흰 빛의 아름다움도 대번에 잃어버린다. 그러기 때문에 흰빛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끗하게 처신하도록 몸조심을 시키는 색깔이다. 이런 흰 옷을 좋아한 우리 민족은 그만큼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첫째로 백의민족의 생활은 정적(靜的)일수 밖에 없었다. 그 색깔이 우리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일을 하려면 때를 묻히지 않으면 안된다. 때를 묻히지 않고 그냥 깨끗하기만 한 사람은 일을 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다. 그런데 흰 빛깔은 조금만 일어나서 걸어도 때가 묻기 쉽다. 밖으로 한번만 나들이를 하고 돌아와도 빨아야만 그 흰빛의 맑음을 유지할수 있다. 그러니까 흰옷 입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서 사색에 잠기고 시나 읊고 책이나 보는 사군자나치기에 알맞다.
이런 옷은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유럽인들 처럼 마구 딩굴지 못하고 정적인 조용한 생활을 즐기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동양문화를 만든 원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고귀한 문화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럽이나 서구의 백인들에게 많은 면에서 뒤떨어지고 그만큼 역사적으로 고난을 겪었다. 적극적인 동작으로 나오는 서구인들에 비해서 정적인 생활은 그만큼 평화적인 것이고 비 전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색깔에서부터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흰빛 이라는 원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무슨 색깔이든 대담하게 우리들의 생활에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딴 여러가지의 다양한 색상이 우리들에게 때 묻히고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뜻에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장점은 있지만 어떤 색깔이든 지 대담하게 수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삶 자체를 대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흰빛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좋아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들이 노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물론 검은 색깔도 노출을 감추는 것이지만, 흰빛은 자신의 노출을 감추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쪽을 선택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색깔에서 자신의 노출을 꺼린다는 것은 옷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결혼식 날 여자가 예쁜 색깔로 화장하고 치장하고 한껏 만인 앞에서 자신을 노출시키고 구경감이 되지만, 다른
날은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어린애들도 평소에는 흰옷을 즐겨 입혔지만 명절때는 알록달록한 때때옷을 입혔다. 그러나 이것역시 아무 때나 입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여자들이 각종 색깔을 이용해 얼굴 화장도 하고 입술도 진한 색깔의 립스틱으로 바르는데, 불과 60~70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화려한 색깔의 의상이나 입술연지를 칠하면 ‘기생’이나 ‘쥐 잡아 먹은 입술’ 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다 손톱에 칠한 메니큐어를, 피 묻은 고양이 발톱을 보듯 흉칙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만큼 그때 그 시대는 색깔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색채의 문화를 거부하고 산 것이다. 절간의 기둥과 처마의 단청이나 때때옷이 있다 해도 우리들의 일상 생활, 특히 자신이 걸치고 다니는 옷과 얼굴에선 색채문화를 거부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생활패턴이 변하다 보니 우리들의 의상 생활부터 그만큼 풍부하게 색깔이 접목되어 일상화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강하다.
옛날에 살았던 나이먹은 세대들은 흑백의 문화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반해서 젊은 세대들과 현대인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색채 문화속에 살게 되었고,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색채들을 받아들여 삶속에 녹여서 살고 있다.
우리가 강렬한 색채를 대담하게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로 하여금 행동의 적극성을 유발한다. 눈에 띄는 색깔은 그 사람의 행동을 노출시키는 것이며, 그것을 거침없이 생활화할 때 우리 문화는 그만큼 적극성, 진취성을 띌수 있다고 볼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칼라시대로 인해서 우리가 또 하나 얻게 되는 것은 심리적 감각의 발달이다. 물론 우리는 하얀모시 치마 저고리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수 있다. 또 흰 저고리, 검은 치마의 흑백 조화에서도 까치의 색깔, 또는 학의 색깔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자연 속에는 더 많이 풍부한 색깔의 조화가 있다. 아름다운 색깔의 환경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해주고 윤택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생활 이다. 다양하고 다색한 색깔의 접목은 곧 우리들 현대인들의 문화생활 전진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6/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