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 곁에 찾아온 가을을 마중하며…… !

9월달을 흔히들 말하기를, 가을이 시작되는 달이라고 들 말한다. 즉 요즘같은 9월초순을 가을을 마중하는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 몇십년동안 내가 시카고에 살면서 느끼고 보아온 결과로는, 시카고는 9월이 되면 확실하게 햇볕부터 가을빛으로 돌아선다.

한참 성장을 지속하던 초식물과 나무들은 성장을 멈추고 이젠 성숙단계로 접어들며, 저장되었던 수액들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어 잎사귀들은 단풍을 들일 채색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지금 북쪽지방은 가을이 성큼 다가와 여름동안 파랗게 몸집을 키우며 성장한 사과 알이 이제는 서서히 빨갛게 온몸을 치장을 서두르는 계절이다. 사과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이곳 미국 전체에서 미시간 사과 만큼 맛있고 달콤한 사과는 없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그곳에 있는 과수원에 가서 올게닉 사과를 따다 먹었는데…… 그렇게 빨갛고 탐스럽게 열린 사과를 보면서 마치 그 사과는 가을의 대명사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 플로리다는 아직도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낮의 최고온도가 90여도를 유지하고 있고 체감온도는 100여도(화씨)를 보이고 있다. 이곳은 아직도 한 여름인데……. 저 위쪽 지구의 북반구 지역은 이제는 찾아온 가을을 반기며 성숙의 계절을 음미하고 있다.

초가을을 한자어로 맹추라고 한다. 음력 7,8,9월을 맹추((孟秋), 중추(中秋), 계추(季추)라 한데서 온 말이다. ‘맹추’란 말에 장난기가 발동한다. 철없이 구는 순진한 친구 녀석에게 대놓고 어깨를 툭 치며 “야 요 맹추야” 하는 스스럼없이 친구녀석을 놀리던 생각이 떠오른다. 반어적 표현이기는 하나 가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매년마다 초가을을 대할 때 마다 아직 익숙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좀 의뭉하고 어리숙한 사람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우리 곁에 찾아온 초가을을 바라보는 내 눈은 계절의 겉만 훑는 것일 뿐, 그 안을 훑어보지 못한다. 시침 뚝 떼고 있을 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징검 인데, 계절인들 그냥 무심할까. 가을걷이로 텅빈 논과 밭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사 허허로울 것인데, 거둬들이고도 채워지지 않는 궁핍에 집으로 돌아서는 걸음이 천근만근 일 것이다. 농부는 차라리 계절이 초가을에 머물기를 기도하리라. 꽃다운 단풍은 떠나는 자를 위해 염(殮)하며 분 바르는 마지막 화장 같은 것, 단풍속으로 눈앞에 점령군 마냥 추운겨울이 와 있고, 우리는 겨울 석달동안 춥고 고독한 속에 갇혀있어야 한다.

나무들은 초가을에 제일 노심초사 할 것이다. 단풍으로 치장해 가을이 절정을 치면, 다음은 겨울이 목전에 와 있다는 신호임을 왜 모를까. 빈 가지들이 몰아닥친 강풍에 몸을 내 맡겨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고 휘청대는 남루, 그래도 저 먼데를 돌고 돌아 그예 봄은 올 것이다. 겨울을 견뎌내 언덕너머 봄이 오는 길목으로 걸음걸음 나가다 봄처녀로 새 풀 옷 입고 올 봄을 마중하러 줄달음치리라. 초가을은 왕성했던 여름을 뒤로 하고 앞을 내다봐야 하는 준비의 계절이고, 나를 뒤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계절이다.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해 거둬들인 것을 비워있는 곳간에 한 가득 채워놓아야 하는 저장의 계절이다. 준비하면 근심이 없고, 자신을 돌아보면 성숙하라 일깨워 주고, 채워두면 느긋해 걱정이 없다. 말로 하지 않고 침묵으로 혹은 기호 없는 바람으로, 서리로 일깨워 준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9월 초이틀이다. 미국은 오늘 노동절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찾아온 휴일을 즐기고 있다. 9월2일을 생각해본다면 절기상 엄연한 가을이다. 천문학적으로는 가을은 추분(秋分)에서 시작된다고 하니 9월22일이 추분이다. 추분을 기준으로 해서 날씨가 점점 더 서늘해지고 자연은 천천히 가을 색을 입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상학적으로는 가을이 9월1일에 시작된다.

특히 우리가 살았던 내 조국 한국은 4계절을 3개월 단위로 나누어 9월부터 11월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상기후로 이러한 구분은 어긋나고 지금도 한 낮에는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기온이 너무나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가을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자연의 색깔을 보면서 가을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이 느낄 때가 가을의 참된 시작일 것이다. 가을은 완벽한 계절이라고 하고 싶다. 곡식을 추수하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글을 쓰기에도, 여행을 하기에도, 사색을 하기에도, 사랑을 하기에도, 기도를 드리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계절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과 설레임을 안겨 준다.

각종 형형색색으로 치장하며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을 배경으로 누구나 사색하는 분위기를 풍기게 하는 마술 같은 한장의 추억어린 사진을 남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화사하고 요염한 저녁노을 속에 한낮의 태양이 긴 한숨을 내 쉬며 휴면시간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때, 느긋하게 창가 의자에 앉아 정원에 피어난 사막의 장미를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잔을 입술에 댈 때, 은은하고 그윽하게 풍겨나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초가을의 여유를 마신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실에 브레이크를 밟아보자. 한 템포 느린 깊이와 여유로 사색하고 명상할수 있는 계절이 바로 우리 곁에 찾아와 서 있는 가을이기도 하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면서 가을비가 흩뿌리고 나면 단풍이 짙어지고,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단풍이 낙엽이 되어 땅으로 내리면 올해의 가을도 우리 기억속에 또 하나의 잊혀진 계절로 저물어져 갈 것이다. 그때 내가 누굴 만났었는지, 어느 곳에 있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미워했는지, 또는 사랑 했는지…..등등 기억하고 또 잊혀지는 세월속의 갈피로 남아 꿈같은 추억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가을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사람이 시가 되고, 시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불현듯 느끼게 되는 사색의 계절이면 서, 바람에 불규칙하게 흩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고독을 느끼는 것도 시인적 감성을 자극해 준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가을은 고독한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계절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그 시인은 부모와도, 아내와도, 남편과도, 형제와도, 사랑하는 사람과도 잠시 이별을 하라고 권고했다. 가을을 통해 오롯이 고독을 느끼고 그것은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1막장인 봄과 2막장인 여름이 내려지고 지금은 3막장이 시작된 가을이란 새로운 무대로 관객맞이에 분주한 자연, 머잖아 초록의 물결은 소슬바람에 곱고도 화려한 빛으로 새 단장을 하고 무한한 대지의 품안에서 농익은 가을의 풍악을 울리면 또 한번 산야(山野)가 떠들썩할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계절도 때가 되면 자리를 내어주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고 그로 인해 아직 이렇다 하게 내 세울만한 인생의 목표 달성이라던가 큰 부를 이루진 못했어도 간간히 느끼는 행복 속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제는 여름의 들 뜬 목소리를 낮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에는 높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자. 높은 하늘을 보면서 가슴시리게 푸르름에 감동하여 보자. 심장이 뛰면서 살아 있음으로 인한 감사가 저절로 나리니, 생각하는 계절 가을엔 거리의 낙엽을 밟으며 걸어보자. 우리는 너무 바쁜 일상에 떠밀려 땅만 보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여유를 갖자.

파아란 하늘위에 솜털같은 구름을 보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자. 누군가의 얼굴이 떠 오르는가. 사랑이 오는 것이니 지체말고 마중 나가 마음 문을 열어 맞이하자. 나의 삶이 한결 더 풍성하게 되리라. 한사람이 오는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므로 우주적인 일이라 했으니, 채양치고 잔치 하자. 따지고 저울질 하는 것이 많아 문밖에 세워두었던 마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남은 세월 어우렁더우렁 함께 간다면 우주를 얻는 것이 되리라. 이 가을에는 열매를 깊이 응시해보자. 한 톨의 곡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천근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한 톨의 곡식을 보면서, 한 개의 과일을 놓고 겸손을 배우자. 지금은 열매를 응시하며, 거둘 열매가 없는 가벼운 삶을 부끄러워하며 깊이깊이 생각할 때이다. 과일 한개를 먹을 때에는 감사하면서 보장되지 아니한, 다음 가을이 내 놓을 과일 먹기를 기도해야 할 때이다.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자. 낙화하는 낙엽은 우리에게도 종말이 있다는 것을 예시해 주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새순도 좋고, 녹음도 좋지만 단풍처럼 곱게 유지하며 떨어지길 기도하자. 열기구를 타고 가듯, 우리는 어딘가를 향하여 흘러간다. 삶은 열기구처럼 느려 보이나, 물고기가 어항을 지나는 것처럼 찰라더라. 이젠 시간과 세월이 갈수록 이 가을도 깊어질 것이다. 이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리 옷깃을 여미어 보자.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것들과 화해하면서 내 삶의 진지함을 회복하여보자. 가을의 열매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보자.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2/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