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나의 목숨처럼 소중한 내 친구.

<김명열칼럼> 나의 목숨처럼 소중한 내 친구.

옛날 중국 사마천의 “계명우기”에는, 세상의 친구에는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적우(賊友)다. 도적 같은 친구란 뜻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는 사람,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떠날 사람이다. 둘째는 일우(日友)다. 즐거운 일, 어울려 노는 일을 좋아하는 친구다. 즐기는 일이 우선이라 그것이 없어지면 소원해지는 친구다. 적우나 일우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상대방 탓으로 돌리며 외면하거나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밀우(密友)다. 진실하고 친밀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비밀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친구다. 넷째는 외우(畏友)다. 서로 존경하면서 장점을 배우고 허물을 덮어주면서 함께 도와 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말한다.

꽃이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다가 꽃이 지고나면 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듯, 자기가 좋을 때, 필요할 때만 찾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저울처럼 자신의 이익 유무에 따라 이익이 큰 쪽으로 기울어지는 친구도 있으며,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서 보거나 변함없이 반겨주는 친구도 있고, 온갖 생명을 싹 틔우고 자라나게 하는 흙과 같은 친구도 있다.

서로를 얼마나 믿고 존경하느냐에 따라 우정도 깊어지고 오래 가며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성경말씀)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다.

관포지교라는 이 고사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야말로 우정의 대명사라 하겠다.

서로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서로가 어려울 때 그 사정을 봐 주며, 또한 서로의 발전에 보탬이 되게 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우정을 일컫는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인 관중과 포석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는데, 관중이 큰 죄를 지어 임금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닷새 후로 집행날짜가 잡혀 있었다. 그때 관중은 고향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관중은 임금님께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임금님은 ‘네가 돌아온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자 친구 포석을 대신 붙잡아 두었다가 내가 돌아오면 놓아 달라고 했다. 관중은 포석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다음 대신 감옥에 있게 하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고 있었다. 닷새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친구 포석이 대신 죽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닷새 안에 돌아와야 하는데, 오는 길에 비가 많이 내여 장마가 져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닷새가 다 지나가도록 관중이 돌아오지 않자 임금은 약속대로 포숙을 형틀에 묶어놓고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관중이 달려오면서 ‘사형을 멈춰 주십시요, 내가 돌아왔습니다’라고 외쳤다. 임금은 관중이 친구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늦어졌다는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두 친구를 모두 풀어주었다는 관중과 포석의 관포지교(管鮑之交) 우정 이야기였다.

여기서 관중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나를 낳아주신 건 어버이 이나,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었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여), 여기에 관포지교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 그들처럼 아름답고 끈끈한, 사랑과 뜨거운 마음이 결합된 순수하고 신실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하여 드리고자 한다. 그 두 친구간의 이야기는 멀리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삼시세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나의 집사람인 김권사님의 이야기다.

나의 집사람에게는 여자 중고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함께 공부하며 격의없이 가깝게 지낸 절친 MR양이 있었다. 그들의 우정은 학교 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각별했으며, 심지어는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어서, 따뜻한 우정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종로에서 서대문까지, 전차나 버스(1960년 중반대 이야기)를 마다하고 걸어가며 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서로의 집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밤새도록 깨소금을 볶고 참기름을 짜며 사춘기적 소녀들의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찌 어찌 하여 한 사람(나의 집사람)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이후 소식이 잠시 끊겼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속에 서로를 그리워하며 꿈속에서만 만나다가 천우신조(天佑神助=하나님이 도움)로 수만리 타국, 이곳 미국에서 극적인 조우(遭遇)를 하게 된다. 그 조우의 감격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고, 기쁨, 환희, 가슴벅참, 눈물 나는 반가움의 조우였다. 한 사람은 시카고(김 권사님)에 살고, 또 한사람(MR여사)은 뉴욕에 살고 있었다. 그동안 못 만나고 지냈던 그 세월이 원망스럽다고 할 정도로, 분풀이 삼아? 두 사람은 자석에 쇠붙이가 이끌리듯 이제는 뗄레야 뗄수 없을 정도로 접착제에 붙여진 사이가 다시 이어졌다.

수년전 나의 막내 딸이 뉴욕에서 대학(NYU)에 다닐 때는 4년동안 줄곧 MR여사는 사랑하는 절친인 친구의 딸을 자기의 친 딸처럼 보살펴 주었고, 어느 때는 나의 딸이 뜻밖의 큰 수술을 받게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도 엄마의 사랑과 온정을 흠뻑 쏟아 부어 주기도 했다. 절친의 딸에게 쏟아 붓는 헌신과 수고와 사랑은 가히 엄마 사랑과 똑 같은 모정(母情)의 사랑 그 자체였다. ‘친구의 딸은 내 딸이다’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마음이 없었다면 감히 어느 누가 4년여를 한결 같이 친구의 딸을 자기 딸처럼 돌봐주고 보살펴 주었을까?………! 이러한 아름답고 숭고한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저렇게 깊고 신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동창생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며 느끼고 부러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의 집사람, 김권사님에게는 MR여사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하고 보석 같은 절친이다. 여중고 시절, 학교에서 만난 인연이 절친으로 이어져 훌쩍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 나이를 먹은 노년이지만 아직도 그녀들의 마음과 꿈은 사춘기적 소녀시절 그대로이다. 좋은 친구는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학창시절, 중고등학생 시기의 우정은 개인의 발달과 일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 하면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서로에게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개인적 경험과 삶에 대한 체험을 가장 순수하고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정이나 친구의 역할은 마치 돌진해오는 폭풍의 바다에 과감히 맞부딪히고 성난 파도를 슬기롭게 탈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서적 닻과 같다고도 할수 있기에…….!

친구가 좋은 이유는 서로가 통(通)한다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웃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식없이 받아주고 약간의 실수에도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친구, 좋은 일에는 크게 기뻐하고 안타까운 일에는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마음이 외로울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김권사님에게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비밀처럼 간직했던 속내를 실타래를 풀어놓듯 한 올씩 풀어 낼 수 있는 것도 믿고 의지할 친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나의 집사람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오랜 동창 친구가 있다는 것은 마음의 곳간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정신적 영양제이며, 윤활유라 아니 할 수 없다.

아울러 정신적 건강은 육체적 건강을 동반하기에,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늘 따뜻한 보약 한첩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를 나눌 상대가 줄어들어 아쉬움을 느낀다는 이웃을 볼 때마다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앞서 첫 문장 내용에 설명 드렸듯이, 수십년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이 아름다운 친구, MR여사는 나의집 사람 김권사님에게 정말로 진실한 밀우(密友)이며 외우(畏友) 이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0/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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