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사랑의 정의와 조건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설레임과 기쁨을 주는 긍정적인 행복한 단어이다. 국어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뜻을 찾아보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Love로 표현하는데, 흔히들 영어의 Love를 하나의 단어로 이해하고 있으나 사실은 조금 다르다. 영어의 Love철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풀이해 보면, L은 Listening(경청), O는 Openness(너그러움), V는 Verbal expression(말로표현하다), E는 Effort (노력)이다.
이렇게 4가지 철자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Love라는 단어에는 인간들의 함축되어진 깊고 넓은 인생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고 할수 있다.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며 그중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천륜이라고 한다. 천륜(天倫)은 하늘이 정해준 도리, 법도라고 하는데, 지금세상 현대사회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이란 핏줄로 이어진 천륜관계가 더러는 점점 더 소원해지고 부모님을 학대하는 불효자식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생활방식과 가족형태가 바뀌면서 교육과 가치관, 역할과 환경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가족은 물론 연인, 친구, 사회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는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되는 단어다.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한가지 이름만 생각한다. 영어로는 Love, 우리나라 말로도 ‘사랑’이란 한가지 단어이다. 그러나 그리스어는 사랑을 세가지 혹은 네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세가지의 이름으로 나눈다면, 에로스, 아가페, 필리아, 이 세가지 단어는 똑같이 ‘사랑’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뜻을 안다면 놀라게 된다.
에로스 사랑(eros love)은 고대 그리스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에로스는 연인간의 불꽃같은 사랑을 의미한다. 에로스의 사랑은 끝나는 지점이 있다. 이때 아가페의 사랑과 필리아의 사랑으로 넘어가야 성숙한 사랑을 이루게 되는데, 에로스에서 끝나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아가페 사랑(Agape love)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여러 단어중 하나였다. 거룩하고 조건없는 사랑, 맹목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뜻하는 용어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다. 끝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가페 사랑은 기독교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성간의 에로스 사랑을 뛰어넘는 최고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의 특징은 이기적이지 않으며 오직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돌봐주고 용서하고 베푸는 사랑이다. 그래서 매우 치유적이다.
필리아 사랑(Philia love)은 친구간의 우정 같은 사랑을 의미한다.
요즘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관계가 드물어지고 이해타산적인 감정이 예전의 순수한 우정을 방해한다고 한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과도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런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밝고 행복할 것이다.
아픔을 가진 이들을 만나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겪은 고통과 상처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특히 에로스의 사랑이 병리적으로 잘못 갈 때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발전하면서 깊은 우울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사랑은 치유적이어야 하는데 병리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젊은 청춘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이러한 에로스적 사랑속에 결혼으로 골인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결혼과정에서 현대의 젊은이들은 순수한 사랑에도 조건을 많이 갖다 붙인다. “아가씨 왜 아직 결혼을 안했죠?”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애인은 있나요?” “없어요” “과거에는요?” “과거에도 없어요” “공부만하다가 남자교제를 못했군요” “아니요, 그건 아니예요, 남자들은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요? …” “그렇지만 사랑은 안했어요” “왜요?” “이 세상에 사랑할만한 남자가 있어야죠” 올드미스를 상대로 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식으로 결말이 맺어진다. 남성에 대한 비난만 듣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그 여인은 한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여인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누구나 이상적인 여성, 이상적인 남성을 마음속에서 그려 볼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만나면 꼭 사랑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런 이상적인 상대가 꼭 자기만을 위해서 기다려주고 있을리도 없으려니와 그쪽도 이쪽을 이상적인 상대로 생각해줄지가 문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은 이상적인 상대와 만났을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인물이란 모든것이 완벽한 인물이며 그런 인물만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계산적인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사랑이란 그런 계산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여러 자식 중에서 하나가 장애인이면 오히려 그 자식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성서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에서 아버지가 그런 자식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더 사랑을 주는 이유도 같은 것이다. 남녀간에도 그렇다. 상대방이 가난하고 불쌍하기 때문에, 마음만 착하고 항상 남에게 당하기만 하기 때문에, 또는 육신이 불완전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오히려 사랑의 동기가 되는 일도 많다.
사랑이란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계산된 행위가 아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려는 이타적인 행위가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의 삶은 일종의 여행이다.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여행인 셈이다. 그런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가치가 있다.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받을 또는 사랑을 할 사람들을 만나고, 죽음도 가를수 없는 사랑을 위해 전 인생을 건다. 사랑은 결국 삶의 목적인 셈이다. 유아, 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성년기에 접어들면 대개들 사랑의 대상을 고르고 자기의 이상과 조건에 맞는 상대를 고르게 되고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꼭 이상적인 인물을 만나야만 사랑하게 되리라고 믿는 것은 반드시 옳은 생각만은 아니다.
이상적인 인물이란 현대인이 생각할때 무조건 인격 하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육체, 멋있는 용모, 뛰어난 재능, 그리고 학벌도 좋고, 재산도 어느정도 있는 집안이고,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물, 또는 만족할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은 결코 결혼의 조건이 될수는 있어도 사랑의 조건은 아니다. 즉 사랑이란 나보다 남을 위하는 것, 그런 것을 위해서 현실적 어려움도 무시하는 용기를 갖는것 등이다. 이런 조건으로 생각해보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적 조건만 따지는 사람은 훗날 그런 상대를 잡아서 사랑을 하고 결혼했다 하더라도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흉내일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 결혼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 할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나누고 있는 이 사랑은 인간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오묘한 감정이다. 또한 사랑은 가장 황홀하면서도 때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체험이기도 하다. 사랑은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아울러 사랑에는 인지적인 요소와 행동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으며, 신뢰, 믿음, 행동이 표현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13/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