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텃밭의 깻잎을 따며………….!

<김명열칼럼> 텃밭의 깻잎을 따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길고 긴 가뭄 속에, 대지는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 타들어가고 있고 온갖 초목들은 목이 말라 지쳐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건조하고 뜨거운 가뭄속에서도 꿋꿋하게 텃밭을 지키고 있는 작물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시간 날 때마다 수돗물 호스를 끌어다가 물을 대 주는 관계로 고추나 상추, 들깨들은 지독한 가뭄과는 상관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나의 집 옆 사이드의 정원 끄트머리 손바닥 만한 작은 텃밭에는 요즈음 들깨들이 풍성하게 가지를 펴고 잘 자라고 있다.

이 들깻잎들은 몇년전 어느 지인의 집에서 들깨모종 6~7개를 얻어와 심은 것이 발초가 되어, 해마다 지고 피어난다. 요즈음 며칠에 한번씩 조금이나마 들깻잎을 따다가 쌈을 싸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들깻잎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날 젊은 시절 자주 다녔던 무교동의 어느 맥주집이 생각난다. 이곳은 주로 문인,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이 주류를 이뤘고 교수와 신문사 기자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술집주인은 40대 중반 미모의 여사장이었는데, 나하고는 누님 동생 하는 사이로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녀의 고향이 충북 충주시로 나의 고향과는 그리 멀지않은 지척의 거리라서 서로가 고향사람이다 보니 친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와 동성동본인 경주김씨 족보 성을 가진 김씨 가문이라서 자연적으로 항렬이 누님뻘이 되어서 누님이 되고 동생이 되었다.

그 누나 사장님은 마음씨가 너무나 여려서 손님들에게 돈 받는 안주를 강요하지 못했고(종업원들에게도 강요하지 말라고 교육을 시켰음) 단골들은 앉자마자 무료 서비스로 제공되는 마른멸치와 들깻잎만 시켜먹어 결국 그 맥주집은 문을 닫고 말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예술인들과 신문기자들은 공짜만 좋아하고, 또한 술 몇병 주문해 마시고는 안주는 공짜로 제공되는 깻잎과 쌈장만 축내고, 오랜 시간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다가 통금시간이 가까워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일어나서 마신 술값은 외상으로 긋고 나가는 궁상들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돈을 벌기는커녕 맨날 빚에 허덕이다 결국은 3~4년만에 문을 닫고야 말았다.

그때 본 기억으로는 주방 앞 평상위 다라(커다란 프라스틱 용기)에는 언제나 싱싱한 들깻잎이 수북이 쌓여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깻잎은 충주 근교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 녀의 부모님께서 직접 보내주어서 그렇게 푸짐하게 손님들에게 서비스 해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는 집사람이 정원 옆 텃밭에서 따온 들깻잎 쌈에 삼겹살을 넣어서 먹었다. 향긋한 들깻잎 향이 입안 가득히 배어 고소한 삼겹살과 어울리니 궁합이 잘 맞아서 맛이 참으로 좋았다.

우리들이 정답게 부르는 ‘깻잎’은 사실 ‘들깻잎’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들깨란 어떤 존재일까? 텃밭에 옹기종기 함께 자리 잡고 마주보고 있는 저 상추가 먼저일까? 들깨가 먼저일까를 가늠키 어려울정도로 친구같이 정답고 이웃 사촌 같은 존재가 아닐까?……. 물론 여울너머 시냇가 석비례 밭에 널브러져 자라고 있는 참깨도 있다. 참기름도 우리 역사와 함께 한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내는 고소한 진심이다. 하지만 들깨는 그 잎을 통칭해 ‘깻잎’이 될 정도로 기름을 짜는 깨의 역할을 넘어서 ‘깻잎’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한 식재료가 되었다. 들깨는 여름의 뜨거움도, 가을의 관심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색깔대로 산다. 아무데나 모종을 앉혀도 거부감이 없다.

한국에서 보면 제법 높은 지역 산자락 밭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들깨농사만 짓는다는데, 다른 농작물을 심으면 멧돼지나 고라니들이 다 파먹고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데, 유독 들깨만은 그 냄새 때문인지 들짐승들이 파헤치지를 않는다고 한다. 역시 들깨는 한민족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들깨는 오랜 옛날 통일신라시대부터 재배해온 기록이 있는 오래된 우리 식물이다. 물론 동남아와 인도등지에서도 재배하긴 하지만, 우리처럼 다양하게 사랑을 받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 나의 집 정원 옆 한 귀퉁이 손바닥만한 텃밭에 심겨진 들깨는 단골 손님같은 가족이다. 모종 몇그루만 심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성하게 자라나고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펼친다. 우리네 한국사람들에게야 무엇보다 쌈 싸먹는데 빠질수 없는 상추와 쌍벽을 이루는 ‘쌈의 동반자’ 아니겠는가. 유독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이 들깻잎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늘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사실 들깻잎은 독특한 향이 강한 방향성 채소라서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을 아직은 본적이 없다. 마늘과 더불어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채소가 아닐까 싶다. 근래에 들어서는 다른 나라에서도 들깻잎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는 들깻잎의 방향성 물질인 로즈마린산에 대한 기능성 표시(눈의 불쾌감을 완화시켜줄수 있음)를 허용해 일본사람들에게도 K-Food의 선두주자로 사랑받는 식품으로 성장중이다.

우리의 깻잎이 세계 시장에서 서양의 ‘허브’류 못지않은 관심과 인정을 받을 날을 기대해 본다.

들깻잎은 생잎으로도 먹고 무쳐먹고 볶아먹고 간장이나 된장에 박아먹는 장아찌로도 먹고, 양념을 하여 김치처럼 담가먹기도 하며, 양념을 올려 쪄 먹기도 하고 찌개나 여러 요리에 부수적으로 넣어 맛을 돋우기고 한다. 들깨송이 부각도 만들긴 힘들어도 사랑받는 식품이다. 들깨가루는 추어탕이나 생선요리를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며 미역국 등 국이나 찌개에 넣어서도 많이 먹는다. 감자와 호박을 살짝 썰어 넣고 솜씨 좋은 나의 집사람 손반죽으로 밀어낸 칼국수로 끓이는 들깨 국수는 장모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집사람 특유의 요리 솜씨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향토색 짙은 그리운 추억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한 여름 깻잎으로 식탁을 빛내주던 들깨는 가을이면 달린 들깨열매로 건강한 기름까지 준다. 이처럼 우리 식단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들깨요리는 수없이 많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 다시 찾게 되는 것이 들깻잎의 매력 아닐까 싶다.

들깨기름 역시 식물성 기름 중에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메가3 지방산은 참치나 고등어처럼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이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줄이고 혈전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전구물질로 이용되어 현대인의 건강생활에 필요한 기름이다. 들깻잎에는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A,C등이 풍부해 성인들에게도 좋은 식재료다. 특히 들깻잎에는 항균, 항염 및 항산화 활성효과가 있으며 스트레스해소와 기억력을 좋게 하는 로즈마린산과 가바 등의 기능성 물질도 함유되어 어른들에게 더 좋은 식품이다. 효능을 떠나서 신선한 야채이니 여러 방법으로 먹으면 좋다.

옛날 나의 소년시절, 어머니께서 아침마다 생 들깨 한줌씩을 우리 5남매들에게 주면서,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라 잇몸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단다”라고 말씀하시며 바가지에 담아온 들깨를 자녀들에게 나눠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런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민간요법 이었겠지만, 요즘은 그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시냇물가 건너 석비례밭, 한여름의 땡볕아래서 익어가는 들깻잎 냄새는 정말로 좋았다. 고소하고 향긋한 들깻잎 냄새는 시골 농촌의 대표적인 향기였다. 들깨 한알 한알에는 가을 들녘에서 깻송이를 터는 어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과 애정이 서려있다. 어느 땐가 들깨 밭 옆을 지나가는데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느껴진다. 가을을 향해 조용히 익어가고 있는 들깻잎에서 풍기는 향기만큼 열정으로 가득찬 들깨들이 소리를 내면서 탄탄해진다. 누렇게 익은 황금 들녘에서 벼를 베어낼 때 들깨도 가을걷이를 한다. 해마다 가을걷이를 할 때가 되면 향수에 젖어 옛날의 추억과 그리움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금은 살을 태울 듯한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지만, 아련한 추억속에 나에게 젖을 물려 키워주시던 나의 어머니의 영원한 젊음이 향긋하고 고소한 들깻잎 향기처럼, 내 지친 몸과 마음에 힘을 주고, 사랑받았던 어린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곱씹게 해주고 있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10/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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