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추운 겨울에…..!

<김명열칼럼> 이 추운 겨울에…..!

지금 북반구에 위치한 세계 여러곳의 나라, 북쪽지방 사람들은 매서운 한파와 눈폭풍으로 극심한 피해와 더불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여름엔 서슬퍼런 청춘의 신록을 자랑하며 가을엔 만산홍엽의 황금빛 양탄자를 깔아주던, 그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움을 뽐냈던 그 계절들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짙어지는 겨울향기가 차오르면서 사위가 온통 칙칙한 회색빛이다. 하늘도, 구름도, 산야도 모두가 우중충한 잿빛 자켓을 입은 기분이다.

북쪽에서 몰아치는 앙칼진 찬바람은 가지 끝에 힘겹게 매달려 떨고있는 이파리 마저 털어내고 겨울을 비행한다. 잿빛의 나목은 모든 걸 다 내어주고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이제까지 길러낸 분신들을 지상으로 돌려보내며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겨우내 삭풍을 한몸에 안고 버티는 나목을 보면서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진리를 배우게된다.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 땅속에서 뽑아 올리는 진액이 나무의 혈관을 타고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걸어온 가을의 자리에 앙상한 겨울이 터를 잡고 있다. 삭풍을 타고 잊혀진 기억들이 순백의 세상으로 걸어와 지난 시간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다. 나목은 추운 겨울 삭풍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얼음진 강을 묵묵히 건너고 있다. 추워서 겨울나기가 어렵긴 하지만 추위조차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평안해 질 수 있다는 걸 나목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도 50~60년대와 비교하면 요즘 추위는 추위도 아닌 것 같다.

요즘은 난방이 잘돼서 집안에 있으면 추위를 모르고 살지만, 1950~60년대 겨울은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얼어붙고, 아랫목은 설설 끓어도 위풍이 세서 윗목 대접에 담아놓은 마실 물은 새벽이 되면 얼어버리기 일쑤다. 솜이불 밖으로 내놓은 얼굴이 시려서 잠을 자다 자라목 감추듯이 얼굴을 나도 모르게 솜이불로 덮어버리고 뒤집어 쓴다.

그 시절 시골에선 농한기라 해도 농사일만 없지 겨울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쁜 건 마찬가지다. 사랑방에서는 밤이 이슥하도록 새끼를 꼬고…..가마니를 짰다. 그리고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들어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아궁이에 집필 나무도 해야 하고 지붕에 얹을 이엉도 엮어야하며, 어머니는 겨우내 방안에서 구멍난 양말을 꿰고, 솜바지 저고리를 누비는 바느질을 하시며, 낮에는 묵을 쑤고 두부를 만드셨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년내내 쉬어보지도 못하고 동동 거리며 사신것 같다.

그렇게 사시면서도 자식들 앞에서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하시고 사셨는데,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편리한데도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힘들다고 더 죽는소리를 하고 있다. 그만큼 몸도 마음도 나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서일까, 한해 한해 추위를 더 타는 것 같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단풍이 퇴색되어 가는 것 같이 몸도 세월의 강을 타고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잿빛에 찌들고 하얀 눈 털모자를 쓰고있는 저 산야는 허전하고 쓸쓸하지만, 인생의 계절도 생각을 해보면 매 순간 순간이 축복이다. 이렇게 추운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서 봄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얼음 진 호숫가에 귀기울이고 있으면 얼음장 밑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누구나 세월이 가고 햇수가 바뀌면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데, 그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검은머리가 하나씩 둘씩 흰머리가 늘어나다 보면, 우린 그것조차 아름답게 생각하고 눈가에 늘어나는 주름도 인생의 아름다운 채색화로 바라보고 산다면 아름다운 당신만의 자화상이 될 것이다.

놓아야 할 때를 알고, 떠날 때를 아는 저 나목(裸木)들 처럼, 세상을 순응하며 거스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빛날 것이다.

김금원은 조선시대 올레길 개척자다. 그는 여자들의 금기를 깨고 남장(男裝)을 한채 각지를 유람했다. 겁없는 이 처녀(당시 14세)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제천 의림지를 거쳐 금강산, 관동팔경, 설악산, 서울 등을 종주했다. 이후 그녀는 규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생이 돼 최초의 여류 시단을 만들었는데, 소외된 여성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조용히 내 인생을 생각해보니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나,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불행하다’ 한풀이 였는 지는 몰라도 그녀는 권세 있는 첩실로 들어가 남자처럼 당당하게 살았다. 항상 제도권 밖에, 집밖에 있어야 했던 당시의 여자로써는 혁명이었다. ‘봄’같은 여자이기를 거부하고 ‘겨울’같은 삶을 스스로 택했던 것이다.

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던 나의 고향 산골마을은, 거짓말 보태서 북한에서 가장 춥다는 중강진만큼이나 혹독했다. 60~70년전 우리동네 모든 시골의 농촌들의 난방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거였다. 부엌의 아궁이는 겨울을 말리고 온수를 데웠다. 그 물은 온 가족의 세숫물로 쓰였고, 어느때는 커다란 가마솥에 끓여 가족들의 목욕물로 쓰였다. 또한 얼어붙은 빨랫감을 녹이는데도 긴요하게 썼다.

불을 피우는데도 요령이 있었다. 종이 쪼가리나 검불을 나무 사이에 쑤셔놓고 성냥불을 켜 불을 지핀후, 고주박(썩은나뭇가지 밑동)으로 화력을 높였다.

오랜만에 시집보낸 딸이 사위와 함께 친정나들이를 올때면 아궁이 속의 불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활 탔다. 딸자식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장판이 탈 정도로 온도를 높인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불같이 뜨거운 사랑이었다. ‘앗 뜨거워라…..’ 아랫목에 누워 자던 사위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나폴레옹 1세가 1812년 45만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겨울을 맞게 되고, 때마침 불어 닥친 초속 20m가 넘는 강풍과 영하25도의 혹한으로 결국 퇴각할수 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겨울 혹한이 막강한 전투력보다 무섭다’며 동장군(冬將軍) 이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봄은 오는법이다. 아무리 바람이 센들 겨울은 간다.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꽃은 피어나게 돼 있다. 겨울과 인생을 아프게 고한 정호승 시인은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사주지 않았다’고 했다. 시인처럼 우리는 인생의 난관에 한기를 느낀다. 겨울이면 왜 닭과 오리가 부러운가. 닭은 닭털 침낭, 오리는 오리털 파카를 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지독히 추웠던 어린시절, 학교공부 가 끝나고 거의 십리길이나 되는 신작로 길을 덜덜 떨며, 거의 반은 동태가 되어 언몸으로 집에 오면, 자식의 언 몸을 녹여주기 위해 품에 가득 안아주시던 울 엄마의 가슴, 그 가슴에는 아무리 추운 겨울추위도 단숨에 녹여버리는 뜨겁고 포근한 사랑의 용광로가 불타고 있었다. (겨울 어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구들장이 식을까봐, 자식들이 머리감고 세숫물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지펴야 했기 때문이다. 영하 10여도가 넘는 강추위의 날씨에도 찬물로 빨래를 해야 했고, 손등이 터져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어도 찬물로 설거지를 했다. 지금도 그 찬물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꽁꽁 언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뜨거운 물이 팡팡 쏟아져 나오는 현대식 주택에서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 호사를 누리니, 눈물이 날 정도로 송구스럽다. 버튼만 누르면 여러벌의 옷을 말끔히 빨아주는 세탁기를 사용하니 더욱 더 죄송스럽다. 뜨거운 물로 살균까지 되는 식기 세척기가 돌아가니, 거북이 등가죽 같이 갈라졌던 어머니 손등 생각에 부끄럽고 목이 메인다. 절절한 사련(邪戀) 이다. ‘천금같은 내 새끼’로 살아온 뻔뻔한 자식 때문에 회한이 하늘을 찌른다.

살을 외는 듯 한 추위, 볼따구를 후려치고 가는 칼바람 속에 창틈만 잘 막아도 열 손실 30%, 난방의 15%를 아낄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동내의를 입으면 2도가 따뜻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매섭게 추운겨울, 우리의 부모님 체온 36.5도를 생각하는 겨울, 그 온도는 따뜻함을 느끼는 체온이지만, 북극의 매서운 한파도 능히 녹일수 있는 펄펄 끓는 뜨거운 사랑의 체온이다. 매일 매일 부모님의 체온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2/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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