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분노(화)를 참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김명열칼럼> 분노(화)를 참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매년 이맘때, 4,5월달 밤이되면 I-275선상의 Sky Bridge에서는 Blue Crab,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어두운 밤이 되면 썰물을 따라 꽃게들이 발라당 누운채 둥둥 떠내려 오는 것을 25~27피트의 기다란 어망의 뜰채로 낚아 올리느라고 야단법석들이다.

몇년전 나 역시 그 게를 잡기위해 가끔씩 그곳에 가서 게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게잡이 과정에서, 게를 잡기위해 옆 사람과 쟁탈전을 벌이기가 일쑤다. 자기가 서있는 구역? 으로 떠내려 오는 게를 잡아 올리는 것은 잘못이나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구역을 벗어나 옆의 사람 앞으로 떠내려 오는 게를 달려가서 빼앗듯이 잡아 낚아 올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고 불법 행위다.

나는 이런 황당한 경우를 여러번 당했다. 저 멀리 수면위로 배영하며 유유히 나의 앞으로 떠내려 오는 게를 잡아 올리려고 모션을 취하는 순간, 옆에서 이를 발견한 월남사람(베트남 사람) 또는 필리핀 사람이 잽싸게 달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낚아 채 갈 때는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옆에 서서 줄곧 내 구역으로 떠내려 오는 게를 탈취해 간다면 머리에 뿔이 서너개 이상 솟아난다. 점잖게 그러지 말 것을 당부하고 부탁을 해 보지만, 그들에겐 ‘소귀에 경 읽기’식으로 막무가내로 들은 척도 안하고 씨도 안 먹힌다.

몇시간동안 이렇게 나의 몫인? 게를 빼앗기다 시피 하다보면, 참는 것도 한계에 이르고 마음속으로 그만 확 ~ 그 사람을 물속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걸국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싸우기 싫어서 게 몇마리만 잡아 아이스박스에 넣고 허탈하고 상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한다. 이와 같이 그들(월남 및 필리핀, 중국 등 동남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보고 당한 사람은 유독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경우를 당했다고 실토하며, 그들을 욕하고 성토한다.

이런 경우 정말로 분노와 화를 삭히기 힘이 들고, 마음 같아서는 너무나 화가나 몽둥이로 그놈의 머리통을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는다. 몇번을 당하고 나서 나는 나 스스로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켜 무슨일(싸움) 이라도 날 것 같아서 두번 다시 스카이 브릿지로 게를 잡으러 가지 않고 있다.

우리가 화가 몹시 나 있을 때 심호흡 한번 크게 내 쉬고 20초만 참고 있으면 그 분노 호르몬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속담 말에 ‘참을 인(忍)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있다. 수백만년동안 재난과 맹수와 싸워온 인류는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이 발달해 있다. 이는 주로 콩팥위에 모자처럼 얹혀있는 부신에서 나온다.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대표적이다. 둘은 심박동을 늘리고 혈압을 높이며 혈당치를 올린다.(의학전문서적에서 발췌) 이 모든 것이 사냥을 하거나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갈 때 흥분상태 스트레스 극복에 필요한 반응이다. 화를 낼 때 이 호르몬이 증가하여 유사한 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두 호르몬은 분비된 뒤 효소에 순식간에 분해되어 10~20초 정도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도 10~20초만 참으면 호르몬이 줄어서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참을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이런 현상을 경험한데서 나온 말일게다. 심호흡 세번이면 호르몬 생리로 분노조절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참을 인(忍)자는 칼(刀=도)밑에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즉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얼마나 두렵고 고통이 따르겠는가. 이렇듯 인내에는 아픔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인고의 세월, 하지만 인고(忍苦)의 삶을 터득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격이 형성되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 지혜가 싹튼다. 미움, 증오, 분노, 탐욕, 배타심도 물리칠 수 있다. 인내는 고결한 마음의 열정이고 지혜의 동반자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장자크 루소는 사자후를 토했다.

인내, 참을 忍, 견딜 耐, 아랍 속담에 인내는 가장 좋은 치료약이라고 했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통없는 세월, 평범한 삶이라면 인생의 참 맛을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이미 유아기때 3천번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무서운 집념이고 끈기고 인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리지만 어렵게 수고하여 얻은 것은 오래도록 유지된다.

세상 살면서 시기, 질투, 원망, 싸움, 언쟁, 모두 날려버려야 한다. 그런 것 아무 짝 쓸모없는 것들이다. 권모술수로 쥐꼬리만 한 직위나 물질 얻었다고 날뛰지 말라. 초심 잃고 남용하거나 방탕하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늘 언제나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하며 항상 기도하고 자중하자.

행복하고 싶으면 은혜와 사랑 가운데 참고 인내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인자삼가면살인(忍字三可免殺人),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

이 말이 나오게된 이야기가 있다. 스토리는 자기 부인이 외간남자와 간통을 하는 줄 알았다가 참을 인 세번을 하여 의심을 벗었다는 것이다.

옛날에 어느 농부가 장가를 갔는데, 부인은 공부를 좀 했고 이 남자는 아주 무식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여보 인위지덕(忍爲之德) 이면 잘 살수 있다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참으시오, 열 가지고 백가지고 참으면 다 잘 살수 있답니다’ 하고 늘 가르쳤다. 남편은 산에 일하러 다니면서도 부인이 인위지덕 이면 잘 살 수 있다고 한 말을 떠 올리면서 항상 ‘인위지덕 인위지덕’ 하면서 다녔다.

하루는 궂은비가 오면서 산에 안개가 잔뜩 끼어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무 해 놓은 것을 짊어지고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당에 나뭇짐을 벗어놓고 방에 들어가려다 보니 웬 남자짚신이 한 켤레 딱 놓여있었다. 그래서 문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머리를 홀딱 깎은 사람이 하나 자기부인과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은 화가 잔뜩 나서 이놈을 도끼로 때려잡는다며 문고리를 쥐고 막 잡아당기려다 ‘인위지덕’ 이라는 말이 떠올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래도 분이 나서 다시 문고리를 잡고 들어가려다 또 물러섰다. 그러길 세번을 하고는 일단 ‘인위지덕’을 마음에 새기고는 짐짓 큰 기침을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서 잠자던 부인과 함께 있던 사람이 기침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데, 머리 깎은 여자 중이었다.

부인이 밭에서 일 하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이 중을 만났다는 것이다. 마침 비가 내리고 하니 집에가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하면서 중과 함께 집에 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잠시 낮잠을 잤던 모양인데, 그 사이 남편이 돌아와 그 모습을 보고는 부인이 웬 놈이랑 대낮부터 동침하는 줄 알고 큰일을 낼 뻔 했다. 부인과 남편의 얘기를 다 들은 중은 ‘오늘 내가 죽을 뻔했는데 인위지덕 때문에 살았으니까 내가 내 재산을 반을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참을 인자를 떠 올린 덕에 살인을 면하고 재산도 얻게 된 이야기다.

공자님 말씀에도 등장한다.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으뜸이다. 백행지본 인지위상=百行之本忍之爲上)‘ 공자의 제자 자장이 몸을 닦는 말 한마디를 내려달라고 청하자 전한 말이라고 한다. 자장이 무엇 때문에 참아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공자는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관리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해지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 할 수 있고, 친구 간에 참으면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을 것 이라고 했다.

참는 건 안팎의 압력, 두가지로 나뉜다. 웃음을 참고, 방귀를 참고, 욕구를 참고, 화도 참는 것을 참을 忍 이라 하고, 손시린 것을 참고, 더위를 참고, 고통을 참고, 모욕을 참는 것을 견딜 내 耐라고 한다. 이것 둘이 합쳐지면 인내가 된다.

견디는 건 내성(耐性)이 생겨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본다면 속을 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또는 스스로가 자극해서 한도 끝도 없이 커져 탱천(撑天)까지 하는 게 분기(憤氣)고 노기(怒氣) 이다. 그쯤 되면 머리 뚜껑이 열리고 눈이 돌아간다. 눈동자가 뒤로 넘어갈 즈음이면 뵈는 게 없다. 그때가 바로 ‘욱’이다. 참을 인忍자는 마음심 心위에 칼날인 도 刀자로 이루어져 있다. 못 참고 가슴 벌렁거리다간 스스로 베이고 다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못 참고, 다시 또 못 참으면 끝끝내 누군가를 찌르고 말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듯 참을성이 없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화를 잘 내지않고 속으로 삭이기만 하여 홧병이라는 한국 고유의 정신질환 명칭까지 생겨났고, 전문가들은 화가 날 때 는 무조건 참지 말고 적당히 발산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홧병 이야기는 듣기 힘들어진 반면에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감정을 즉시 드러내는 분노조절 장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憤 免百日之憂), 이뜻은 한 때의 화를 참고 견디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데는 화를 참지 못하는 히틀러의 괴팍한 성격도 일조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국지의 장비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불운을 자초했다. 성질급한 장비는 관우를 죽인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면서 부하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부하인 범강과 장달에게 허무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역사에는 일시적인 분노와 화를 잘 다스리고,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을 참고 견딘끝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일화도 너무나 많이 있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05/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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