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엄동설한, 겨울 추위도 녹일 수 있는 어머니 사랑, 모정(母情)

<김명열칼럼> 엄동설한, 겨울 추위도 녹일 수 있는 어머니 사랑, 모정(母情)

다사다난 했던 한해, 2023년은 어느덧 지나가고…….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새해의 1월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만 회색빛 하늘과 갈색빛 원색으로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황량한 대지와 들판, 벌거벗은 나목(裸木)의 모습들은 허전함과 공허감을 느끼게 해주는 겨울만의 심상(心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봄에서 시작된 계절의 여행은 겨울인 지금에 와서 멈춰 서 있는 듯하지만, 곧이어 머지않아 다시 꽃피고 새우는 찬란한 생동의 봄이 찾아오리라. 겨울의 중심인 이 스산한 1월,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종종 발걸음에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무상함이 서려 있는 듯하다. 오래전 추수가 끝난 논밭에는 충만함이 사라지고 곡식의 존재만이 서려있듯 겨울은 한해의 삶을 견디어낸 일상의 번잡함이 뒤로 물러서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각자의 존재가 앞으로 밀려나오는 때이다.

시간의 흐름은 추운 겨울밤에 더 선명해진다. 창밖의 나뭇가지를 잡아 흔드는 겨울바람 소리를 듣다보니 옛날 어느 겨울날 대학동창 여학생이 전하여준 슈베르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기의 전공과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피아노와 노래솜씨가 뛰어난 이 여학생은 가끔씩 음악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곤 했다. 음악하고는 거리가 먼 나 였지만, 진지하게 들려주는 그 여학생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도 이른 나이에 요절한 작곡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이야기다. 따뜻하고 희망어린 다른 작곡가들의 것과 달리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어둡고 비통하며 애상적(哀想的)이지만 더없이 감미롭다. 오죽했으면 슈베르트는 ‘이 세상에 흥겨운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말을 남겼을까. 추위와 공허로움의 대명사인 1월의 겨울은 계절의 시간을, 세레나데는 절절한 사랑의 시간을 노래한다. 절절한 사랑…… 그 사랑의 표현속에는 남녀간의 이성적 뜨거운 사랑보다 더 진하고 더 뜨거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담긴 슬프디 슬픈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눈이 수북이 쌓이도록 내린 어느 추운 겨울날,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를 찾은 두사람의 발걸음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미국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사람이었다. 눈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은 마침내 한 무덤앞에 섰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다. 6.25사변을 맞아 1.4후퇴를 하는 치열한 전투속에서….. 한 미군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린아기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 소리는 눈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이를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또 한번 놀란 것은 흰눈속에 파묻혀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구부려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얼어 죽고 만 것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 땅에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기를 데리고 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날에 있었던 오래된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웠다. 그런 뒤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에게 옷을 입혀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했다. ‘어머니 그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그의 처절한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여자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이미지가 있다. 예쁘고, 부드럽고, 약해서 아끼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일 때가 있고, 때로는 강하고 억척스러운 이미지로 비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주책스러운 이미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헌신적인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될 때 여성은 영락없이 거룩한 존재가 된다. 여자나 아줌마를 비난하거나 얕잡아보는 온갖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이 사이버 세계에 난무하지만, 어머니를 욕하는 말만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그런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가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헌신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주도하는 이들 중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많고, 가장의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도 남자이며, 남자역시 자녀의 양육에 적지 않은 책임을 진다고 해도 자식들이 더 많은 사랑을 느끼는 이는 대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이다.

‘신은 세상에 고루 존재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는 말이 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자식의 오욕을 자신의 어떤 고통보다 크게 느끼며 평생을 걱정과 기대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 우리는 역사속에서 수없이 많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가 있어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듣고 있다. 그 숭고한 모성애가 있었기에 어쩌면 인류가 아직까지도 존속하는지 모르겠다. 아들과 딸을 불문하고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 것 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시와 노래가 더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된 이의 한 사람으로서 섭섭한 일이지만, 속성상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보다 울림이 덜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어버이를 지극 정성으로 섬긴다는 뜻의 한자 효(孝)는 늙은 부모(老=노)를 자식(子=자)이 엎고 있는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말로만 외치는 효도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효도가 참된 자식의 효성임을, 이 추운겨울에 따뜻하고 뜨거운 어머니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1/2024011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