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사람은 이성과 감정을 함께 갖고 있는 동물이다.

<김명열칼럼> 사람은 이성과 감정을 함께 갖고 있는 동물이다.

오늘날 사회 일반에서 감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감정(感情)은 아시다시피 어떤 현상이나 상황, 일 등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으로, 기쁨,노여움,슬픔,분노등의 느낌을 말한다.

그리하여 감정이 상한다, 감정을 드러낸다, 너무 감정적이다, 감정이 폭발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을 호소한다 등의 감정이란 표현의 말들을 많이 쓰고 있다. 감정의 기복(起伏)에서 기복은 한마디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걸 말하는데, 감정이 고조됐다가 축 가라앉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라는 표현을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고 하는데, 즐겁고 슬프고 기쁘고 짜증나는 감정의 변화가 일정치 않는 것을 말한다. 즉 감정의 기복이란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와 같은 감정의 큰 변화가 큰 것을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뿐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무의식적인 반응까지 포함한다. 감정은 마음과 몸이 만나는곳에서 일어난다. 감정이란 생각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의 반영과 표현속에는 감각과 감성이 작용한다. 지난 10월8일은 24절기의 열일곱번째 맞는 한로(寒露)였다. 계절은 24절기로 자기표현을 하고, 우리는 감각과 감정과 감성의 조합으로 표현한다. 감각은 사물에 대해 순간적으로 포착한 느낌이고, 감정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심리상태이며, 감성(感性)은 감정이 정제된 감수성과 표상(表象)이다.

마음은 말을 뿜어내는 근원지이다. 감각은 인식 그대로의 말, 감정은 계산이 섞인 말, 감성은 고도로 정비된 말이다.

마음이 따뜻하면 말도 따뜻하고, 마음이 맑으면 말도 맑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를 정하고 상황별로 밀고 나가듯, 감각은 심각한 고민없이 상황에 맞게 자기의 느낌을 표현한다. 감각은 마음보다 말이 앞서기도 하고, 말이 마음을 담지 못하기도 한다. 풍향계처럼 순간 분위기를 감지하고 스케치하는 연필처럼 계산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감각을 표현한다.

표현의 대부분은 감정이다. 감각에 자기 주관이 개입하면 감정이 된다. 감정 표현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스노피자는 인간에게 48가지의 감정이 있다고 했다. 48가지는 개념적 분류이지 인간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내성적인 사람은 방어적 감정이 강하고, 다혈질인 사람은 공격적 감정을 보이며, 심사가 복잡하면 내면의 느낌과 표현이 다른 이중적인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진심을 담은 감정은 평온하고 당당하며, 신중한 감정은 미흡하고 미진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따뜻한 감정은 상대의 실수도 너그럽게 받아준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매순간 순간에 감정을 노출한다.

감정의 표현에 곁들여서 감성을 설명하겠다. 감성은 감정이 곱게 길러진 상태다. 감성은 내면을 움직이는 고운 정서, 즉 대상을 통해 느끼는 감수성, 자기와 대상을 하나로 보는 선천적인 기운이다. 진정성과 애틋함이 담긴 감성은 굳이 표현을 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낄수 있고, 공감하고 아파하며 축원하는 감성은 말을 하지않아도 하나임을 느끼게 한다. 빛살이 생명체를 찾아 직진하듯 내면의 감성은 그 표현을 감추지못하고 직진한다. 감성은 사람을 움직이고 공감시키는 울림판이 있어 감동을 주고, 공감대를 접수하고 반응하는 안테나가 있어 그 진위를 바로 식별한다. 감성은 계산을 초월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며, 행동할 수 없는 것도 행동으로 옮긴다. 감성은 진실을 전할 때는 부드러운 목화송이 같고 단호할 때는 강철과 같다. 감성은 꾸미지 않고 그대로를 노래한다. 우리는 분위기에 맞는 감각 표현으로 웃음을 선사하고, 신중한 감정 표현으로 스트레스를 쌓지 말며, 따스한 감성 표현으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지각, 감정, 느낌, 생각의 조합이다.

이 모든것은 한 개체를 이루며 이 개체는 세상안에서 우리의 존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행동을 좋고 나쁘게 만드는데 있어 매우 강력하고 능숙하다. 마음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이성적인 생각 과정을 거칠수 있고 특출나게 강력한 힘을 느낄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과 감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때때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힘 말이다. 이 둘은 서로 적대하며 우리가 결정을 내리도록 종용한다. 감정은 어원학적으로 “움직임 또는 충동” 또는 “무언가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이다. 감정은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주관적인 경험이다. 감정은 정확한 논리보다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기초해 나타난다. 사실 이성과 감정을 나누는 정확한 선이나 벽은 없다. 실제로 모든 것은 언제나 함께 행동하는 인간 마음의 차원에 관한 것이다. 감정은 특정 생각의 길을 터주고, 생각은 감정을 태어나게 한다. 모든 감정은 어떤 단계의 생각이다.

그 단계가 낮으면 감정은 혼란스러워지고 변덕스러워진다. 이성의 단계가 높으면 현실에 대한 좀더 깊고 균형잡힌 경험을 할수있게 된다. 제대로 생각되지 않은 감정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가지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이성적이어야 할 인간을 감정의 동물로 묘사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하다. 일찍이 니이체도 “인간은 행동을 약속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약속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렇다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많은 약속을 한다.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신용있는 사람,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여긴다. 반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신뢰하지 않으며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 아무도 우리중에는 그러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날씨와 같아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화하기 쉽고 변덕스러우며 대단히 유동적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일일삼천심(一日三千心) 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하루에 삼천번이나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임을 예를 들어보겠다.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은 사랑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한다고 고백을 하고 평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바보가 될 수 있다. 물론 내 사람만은 그럴리가 없다고 하지만 결코 보증수표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표현은 아니다. 다만 일부 세상의 현상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변심하기에……) 사랑하는 그 감정이 그 당시에는 결코 변하지 않을것 같지만, 그러한 남녀간의 사랑도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이다.

세상에 사랑에 얽힌 비극이 그처럼 많은 것은, 사랑이 얼마나 쉽게 변할수 있는 가를 잘 대변해 주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변하기 쉬운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억제하고 인내하고 노력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하면 자신을 감정에 내 맡기는 인생을 살게 될수 있다. 아무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감정에 모든것을 맡기고 살아간다면 이세상은 혼란과 혼돈과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게 된다. 사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되기 위하여 이성으로 변화무쌍한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하여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자 이성의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을 약속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약속할 수는 없다는 니이체의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당신께서는 어떠한 사람이되시기를 원하는가?……….감정의 동물이 될 것인지, 이성의 멋진 한 인간이 될 것인지는 각자의 결심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79/20231018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