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의 작품이다.

<김명열칼럼>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의 작품이다.

지난 9월30일 오후, 올랜도에 사시는 어느 애독자로부터 나는 장문의 글(이메일)을 받았다. 그분의 이멜을 받은 후, 내 마음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많은 울림이 있었다. 많은 생각 끝에 이분께서 보내주신 글의 내용을 소개하여 드리고, 나의 혼과 생각이 담긴 마음속의 표현을 설파(說破)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올랜도에서 이멜을 보내주신 독자분께 먼저 양해를 구하고(허락을 받고) 나서 그분께서 보내주신 이멜 내용을 가감 없이 옮겨 소개해 드리겠다.

<책은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양식이라고 하는데, 저는 핑계같 은 이야기이지만 게을러서, 귀찮아서, 싫어서, 책을 읽다보면 졸리워서 등 이러한 갖가지 이유로 일년내내 책 한권 못 읽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김 작가님의 글은 매주 발행되는 신문의 뉴스속에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접할 수가 있어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마음의 양식과 지식을 얻을 기회를 줍니다. 작가님의 글에는 종교, 철학, 문학, 경제, 정치, 교양, 사상 ,삶의 질 향상, 취미생활, 여행 등등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어서 배울 것도 많고 읽을거리도 많아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김작가님의 글은 제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양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좋은점은 마음의 정서, 주어진 삶의 생각, 교양과 지식이 채워지는 것 입니다.

매일매일 먹는 식사를 통해서 몸의 에너지를 얻듯이 매주 게재되는 플로리다 코리아 칼럼의 글을 통해서 제 생각과 마음, 심지어는 영혼의 에너지 까지 채울 수 있습니다. 어느 때는 김작가님께서 써 올리는 글이 갑자기 Stop 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듭니다. 저 외에도 수많은 독자들께서 김 작가님의 글을 애독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마음의 양식이 되는 글 많이많이 써 주십시요.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을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김 작가님, 파이팅..>

올랜도에서 최 * * 올림

이상의 글은 올랜도에 사시는 애독자께서 보내주신 글의 내용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메일)을 지난 10여년동안 본보에 칼럼의 글을 게재하면서 많은 애독자들로부터 받은바 있다. 이러한 독자분들의 이멜과 독후감 및 댓글을 접할 때 마다 보람과 책임, 기쁨을 느끼고 있다. 사랑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책을 읽거나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면 좋은 것이 무엇일까? 글과 책은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양식”이라서 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를 통해서 가장 좋은점은 “마음과 생각이 채워지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 내가 처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책을 통해서 “지식: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경험이 부족했던 만큼 지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책 속의 내용들을 보면서 ‘이런 것도 있네. 오~ 우 신기하다’라면서 지식 채우기에 힘을 쏟았다. 그만큼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생각과 마음“을 채워 나갔다. 그러자 점점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 하나만 보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랫동안 책을 읽고 지식을 쌓고 또한 유명인들이 쓴 글을 읽으며 나는 그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창작을 해 낼수 있었고, 그것들이 열매로 수확되어 오늘날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며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마음과 영혼의 양식을 채워줄, 즉 허기진 마음속에 양식을 채워줄 매체는 너무나 많이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경책이지만….!’. TV, 영화, 신문 등 다양한 매체들이 있겠지만 독서만한 마음의 양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몇번이고 쓰고 지우고 했을 문장, 고르고 골랐을 예시, 편집자가 보고 또다시 생각했을 여러 가지 방향들 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글을 쓰는 나 역시 내 마음과 생각과 뜻, 방향들을 글로 써 표현하려고 하니,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쓰고 나서 다시 읽어 보고, 작가가 아닌 글을 읽어보는 독자편에서 다시 읽어보며 글을 쓴다.

인류의 문명이 지금처럼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글의 혜택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본능적인 부분에서는 동물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생각하는 고 차원적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이 독서에서 비롯된다. 글과 책이 인간에게 하는 역할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독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생활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앎의 즐거움’,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글을 읽는 독서의 즐거움은 이러한 것 외에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인격형성을 위한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이웃과 세계를 하나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할수 있게 한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독서다, 탁월한 삶을 꿈꾼다면 독서하라, 좋은 글이나 책 속에는 세상의 지혜가 있고 답이 있다’고 했다.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문학이 인생이고, 인생이 문학이란 말도 생겨났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음성기호(언어)를 말이라고 한다면, 말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을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 넓게 말하면 문학은 ‘언어를 표현의 매체로 하는 예술의 한 영역’이 되어서 반드시 문학속에서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잘 나타내는 인간적 맛이 그곳에 늘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명품을 갖고 싶어 하고, 또 자신도 명품인생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명품이란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귀금속이란 불의 연단을 통해야 값진 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고난의 연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값진 삶, 명품 인생을 영위할 수가 없다. 예로부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이와 같이 청소년기부터 온갖 고난의 역경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짧은 청소년기에 수많은 경험과 연단을 다 체득 할 수는 없다. 물론 부모와 스승과 선배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나 견물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터득할 수 있는 대리체험의 모색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문학을 접하는 일이다. 문학을 하면 수많은 인간사의 내면 통찰을 통해 자신의 심성을 정화, 고양시켜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게 된다. 즉 정신적인 에너지를 충전하여 삶의 의욕을 북돋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는다거나 문학 작가들의 글을 읽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견문을 넓히며 자신만의 사상과 가치관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간다면 보다 더 나은 삶의 보람과 즐거운 인생관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문학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설사 인생 그 자체가 괴로울지 모르지만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면 얼마든지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가령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본을 투자했을때 이윤이 남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별로 애태우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 이럴때 정신적인 평안을 확보하는 쪽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즐거움을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철학을 가리켜 애지(愛智)의 학문이라고 할때, 문학은 애락(愛樂)의 학문이라 할수 있다.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 이것은 자칫 육체적인 쾌락으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애락이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정신적인 즐거움은 영원성을 띠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바로 한시성의 육체와 영원성의 정신을 대비시킨 말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렸을때 읽은 몇권의 서적과 거기에서 얻은 뜨거운 감동을 잊지 못하는 것도 바로 위대한 예술 혼(魂)에 접목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경험이 각별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육체를 위한 것이기에 쉽사리 잊을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울림으로 얻어진 감동은 정신적인 내면 세계에 깊숙히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들도 따지고 보면 문학이 소외된 풍토에서 빚어진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나의 친구 박교수의 넋두리가 한층 진한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모름지기 생활속에서 문학을 가꾸고 그 문학을 통해 감동과 즐거움을 창출해 나갈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 인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78/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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