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5>

<김명열> 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5>

지난주에 이어서………….

대동강맥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추진한 사업으로 북한 매체들은 대동강맥주를 (동방 제일의 맥주)라고 선전한다. 대동강맥주는 한 종류가 아니다. 보리와 쌀의 배합 비율 등에 따라 7가지 맛으로 나뉜다. 맥아 100%인 1번 맥주로 시작해서 2번으로 갈수록 맥아의 비율이 낮아지다가 5번은 흰쌀 100%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6번과 7번은 흑맥주로 각각 커피향과 초콜릿 향이 난다고 한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황해도에서 생산된 보리와 일조량이 풍부한 양강도에서 생산된 호프, 대동강의 깨끗한 지하수를 원료로 현대화된 생산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 맛과 풍미가 특별하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양 정상이 건배했던 술이 들쭉술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나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등에는 빠지지 않고 백두산 들쭉술이 나왔다. 북한의 명주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백두산 들쭉술에 대하여 잠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아주 옛날 삼국시대, 고구려인들은 음주와 가무를 즐겼던 민족이었다.

영고, 동맹, 무천 등 추수감사제에는 반드시 술이 곁들여졌다. 이런 고구려인들의 후손인 북한 사람들은 조상들을 닮아 술을 즐겨한다. 북한에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술만들기를 지속해 왔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애주가였기에 그중 한 몫을 한 결과이다.

나 역시 관광단 일행들과 어울려 호기심으로 식당에서 들쭉술을 시음해 보았다. 시음 결과 과연 북한의 명주다운 좋은 술이었다. 들쭉은 블루베리의 일종으로 개마고원 등지의 냉량한 곳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몇년전 내가 알래스카를 여행할 때 그곳 야생지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열매를 맺은 블루베리의 맛과 비슷했다. 북한에서 맛본 들쭉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구려시대의 한 장수가 사냥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 죽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적 자색 열매를 발견하고 그것을 정신없이 따 먹고, 그후 취하여 이틀간 잠에 골아떨어졌다. 그후 깨어보니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원기가 왕성해졌다고 한다. 그는 돌아와서 이 열매를 ‘들에서 나는 죽’이란 뜻으로 들쭉이라고 불렀다 한다.

들쭉은 약용식물로 쓰여 지고 있다. 들쭉을 달여 먹으면 피가 맑아지고 원기가 왕성해진다. 들쭉은 이뇨작용, 해열작용이 있으며 관절염과 간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백두산 들쭉은 해발 1200~25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관목이며 열매는 8월하순에서 9월 중순 사이에 수확한다.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에는 백두산 들쭉술 공장이 있다. 김일성주석은 애주가였는데, 이 공장을 두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이 술을 좋아해 평생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그는 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들쭉술은 북조선의 으뜸가는 술이다. 이공장 에서는 프랑스의 꼬냑,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와 같은 명주를 생상하라’ 이 공장에서는 지금도 김일성의 유훈으로 이것을 공장안 벽에 크게 써서 붙여놓았다고 한다. 나 역시 들쭉술을 호기심이 생겨 마셔보았는데, 들쭉의 독특한 향(체리 향과 라즈베리 향의 중간정도)과 부드러운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들쭉술의 알콜도수는 16%, 30%, 40%등 세 종류가 있는데 골라서 먹을 수 있다. 16% 들쭉술은 붉은빛이 나며, 약간 신맛이 나는데 그맛이 은근하다. 40% 들쭉술은 투명하고 맑은 호박색이 되는데 독하며 들쭉향이 강하게 배어있다. 들쭉술은 남자가 마시면 신선이 되고, 여자가 마시면 선녀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술이다.

앞에서 잠간 소개했듯이, 전북 군산에서 온 50대 중년아저씨 4명은 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매일저녁 숙소앞 고성식당에서 술을 마시는데,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도 이튿날 관광 때에는 끄떡없이 잘도 돌아다닌다. 어느날 저녁에는 그들이 뱀술을 주문해 마셨다. 술병 속에는 독사가 한마리 들어 있는데, 그들은 몸에 좋다고, 정력에 좋다고, 서로가 잔을 권하며 열심히 마셔댔다. 나에게도 독사술을 한잔 마셔보라고 권했다. 잔을 나의 코앞에 까지 내미는 것을 기겁을 하고 손사래 치며 거절했더니, 나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우스워서 죽겠단다. 며칠간을 함께 구경하고 아침저녁 식사도 함께 하다보니 관광단 일행들은 가족처럼 친해졌다. 한국 사람들은 술 인심만큼은 참으로 좋다. 미국에서 오신 귀한(미국손님)이라고 이사람 저사람 나에게 ‘한잔 하십시요’하고 술잔을 건넨다.

군산에서 온 일행4명은 특별히 나를 (성님=형님)이라고 호칭하며 나를 따랐다. 그날도 5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취흥이 고조됐다. 나는 술 한잔을 들고서는 가끔씩 홀짝 홀짝 입에 대며 거의 마시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 분위기에 어울렸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얼마후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고 난후에는 글자 그대로 그들의 머리꼭지가 완전히 돌아버렸다. 그중 한명이 들고있던 젓가락으로 장단을 치며 노래가 흘러나왔다.

‘청두~웅 산 박달재에 울고 넘는 우리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 구료……’ 한창 흥이 무르익어 목청을 뽑고 있는데, 식당 매니저가 다가와서 ‘선생님 여기서는 노래를 부르시면 안됩니다’하고 정중히 요청을 한다. 노래를 하던 그 아저씨는 취중인데도 깜짝 놀랜 듯이 몸을 고쳐 세우며, 단번에 뚝, 하고 하던 노래를 멈춘다.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여기가 어딘가? 서울 한복판이 아니라 북한땅 금강산 특별구역이다. 여기서 잘못 걸리면 잡혀가서 집에도 못 간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나를 포함한 일행 5명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공연히 잘못돼서 나까지 단체로 끌려가면 미국에 돌아가기가 힘들어진다. 이렇게 모두가 사죄?를 하고 있는데 그 지배인이 엉뚱한 말을 한다. ‘내레 이 선생님=나를 지칭,을 봐서 봐주기요.”하면서 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더니 “당신들은 술을 개판으로 마시는데 이 선생님은 점잖은 신선이야요….” 졸지에 나는 신선이 됐다. 이후 그들 일행은 내 덕분에 술먹고 잡혀가지 않았다고 동네방네 떠들며 다녔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살다보니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 하며 속으로 웃고 말았다.

매일 저녁마다 술 파티를 열며 술독에 빠져 살던 그들 일행 4명이 어느날 밤에 기어코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구경을 마친후 고성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후 7시가 된다. 관광단 일행들에게 저녁식사는 7시까지만 제공하고, 이후에 는 식사제공은 끝나고, 그 이후에는 술과 안주만 파는 주점으로 변한다. 외화벌이를 위해서는 고가의 수입이 보장되는 술과 안주가 제격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관광단 일행들은 숙소에서 무료하게 티비 시청만 하기가 무료하여 이곳 식당에 나와 앉아 맥주나 기타 주류를 들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영업시간은 밤 10시까지 이며 그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밤 11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다. 그때는 북한군사 경비병들이 숙소근처로 내려와 보초를 선다.

뱀술이 몸에 좋다고 잔뜩 마시고, 흥에 겨워 한 곡조 뽑다보니 밤 10시가 되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술을 마시던 다른 손님들은 어느새 자리를 뜨고, 우리들 일행 5명만 남았다. 매일저녁 이곳에 와서 적잖게 매상을 올려주는 외화벌이 도움 술꾼들은, 단골(?)이 되다보니 특별대우로서 한번은 공짜 생선회도 한접시 서비스로 대접받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단골 손님에 대한 선심성 서비스 대접이 있는가보다.

술에 만취된 상태로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 되다보니, 떠밀리다시피 밖으로 나왔다. 개소리 쇠소리 떠들어대며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옆에 있던 K씨가 갑자기 허리춤을 움켜쥐며 저쪽 어두운 집 모퉁이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긴다.

“어디 가는겨?” 하고 누군가 소리치며 물으니, “나 오줌 싸겄어 급히 나오느라고 오줌을 못 눗고 왔어” 하며 사라진다. 일행4명은 잠시 그를 기다리며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후 저쪽 컴컴한 쪽에서 조금 전 급히 오줌 누러 달려갔던 친구가 북한군 병사의 손에 잡혀서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 병사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불빛의 후레쉬라잍을 비추며 다가오고 있다. 가까이 와서 그가 하는 말 “남조선에서는 이렇게 아무데서나 ㅈ대가리 내놓고 개새끼처럼 오줌을 싸대도 되는기요? 이 선생 우리가 체포해 가갔시요” <다음주에 이어짐>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74/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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