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2>

<김명열> 금강산 관광때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2> 문학작가 김명열

<지난호에서 이어짐>

지난호 마지막 글에 동해안 남북출입국 관리소를 나와 관광버스를 타고 판문점으로 향한다고 했는데…… 사실 판문점은 서울과 개성을 잇는 도로 선상에 있는 곳이고, 이곳 동해선 에서 북한으로 가는 도로에는 판문점이 없음을 먼저 알려드린다.

어쨋건 우리 관광단 일행을 태운 버스는 북한땅을 향해 버스 주차장을 나왔다. 조금을 가다보니 군사분계선인 비무장 지대에 이르렀고, 그곳에는 남한의 경비 검문소가 무장한 헌병이 경계 중 근무자세로 우리 버스를 세웠다. 잠시 후 옆쪽에 세워둔 군용 찦차 한대가 버스 앞으로 다가와 서더니 대위 복장의 장교와 운전병이 선도를 한다. 그들은 우리 버스를 남북 분단선 앞까지 인도하고 되돌아갔다. 최종 남북 분단선(국경선) 앞에는 강물이 흐르는 다리 하나 사이를 두고 저쪽편에는 북한군 병사의 검문소가 있고, 이쪽 남한측 경비초소에는 남한측 병사의 검문소가 있었다.

이제 몇십미터만 더 가면 북한땅이다. 마지막 경비초소의 우리 국군 헌병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건넨다. 우리 일행들도 국군 아저씨에게 손뼉을 치며 인사를 보냈다. 그러한 웃음속의 분위기도 잠시, 50여미터를 버스가 서서히 운행해 가다보니 “이곳에서부터는 북한 땅 입니다”라고 안내원 아가씨가 장내 방송을 통해 알려준다. 모두가 긴장된 얼굴모습 들이다.

곧 이어 얼마 가지 않아서 북한군 경비초소가 나오고, 그곳에 가니 북한군 경비병이 버스를 세운다. 잠시 5분정도 기다리다 보니 가까이 있는 북한군 군부대에서 찦차 한대가 나타나더니 버스 앞으로 와 선도를 한다. 그 찦차 역시 장교 한명과 운전병 한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이 탄 버스를 북한군 출입국 관리소 앞에까지 안내 선도하고 곧바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버스 안에는 어느 것 하나 남기지 말고 모두 갖고 내려서 입국 심사를 받으세요’. 안내양의 지시에 따라 우리 모두는 짐 가방과 백팩, 핸드백 등등을 모두 챙겨갖고 북한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이곳은 외국인 내국인 구분이 없이 모두가 줄을 서서 입국심사대에 섰다. 우리 차례가 왔다. 북한군 군복을 입은 입국심사원은 검게 그을린 구리 빛 얼굴로 우리가족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 사무적으로 짐 검사를 했다. 나의 딸을 마주한 그 심사원은 “조선 말 합네까?” 하며 미국 여권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네” 하는 대답을 들은 그는 “구경 잘 하시라요” 하고 북한입국 스탬프를 꽝 하고 찍어준다.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왜 살기 좋은 조국을 버리고 미국에 갔시요?” 차거운 얼굴 모습으로 독살스럽게 쏘아보는 듯한 그의 표정에서 등골이 오싹 하는 기분을 느꼈다. 여기서 잘못 대답이라도 하면 금강산 관광은 물 건너가게 되니 말이다. 이곳에 오기위해 서울에서도 금강산 관광 신청을 했는데. 내국인들은 쉽게 여행허가가 나왔는데 우리 가족은 열흘을 기다렸다가 여행 허가증이 나왔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며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그저 억지로 웃으며 “수고 많이 하십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러한 나의 대꾸에 그도 할 말을 잊었는지, “며칠후면 옥류관이 문을 여니 옥류관 냉면 맛좀 보고 가시라요” 하며 스탬프를 꽝 하고 찍어주었다. 휴 ~ 우 하고 한숨을 돌리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랐더니 뒷좌석에 타고있던 어느 중년 아저씨가 투덜투덜 한다.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 서울에서부터 가지고온 고급 양주 한병과 와인을 뺏겼단다. 금강산에 들어가 구경 끝나고 저녁에 한잔씩 하려고 했었는데 몽땅 다 뺏겼다고 그들 일행 4명은 불만이 대단했다. 그 소리를 들은 관광 안내 여직원이 주류는 일체 반입이 금지된 품목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투덜투덜 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고서 하는 말, “말이 압수지, 즈네들 쳐먹을려고 뺏은거여, 저것들은 생전 양주맛 한번 마셔보기라도 했겄어 그렇게 좋은거 어디서 먹어? 생전 죽을때까지 저 애들 저런것 못먹어요”.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북한땅 금강산을 향해 달려갔다. 가면서 차창밖으로 북한주민들의 생활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주택(집)은 기와를 얹은 한옥이었는데 옛날 몇십년전(1950년대 말~1960년대 초)의 모습인 한국 모습 그대로였다.

냇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무척 초라해 보였고, 냇물속에서 멱을 감고 있는 아이들은 천으로 된 빤쓰(옛날 내가 어렸을때 입고 있었던 것과 같은) 를 입고(수영복이 아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놀고 있는 근처에는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군 초병의 모습들이 간간히 시야에 들어왔다.

금강산의 탐승구역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외금강의 만물상 구역과 구룡연 구역, 내금강의 만폭동 구역, 해금강 구역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현대와 북한이 합의하여 개방하는 코스는 외금강 구룡연, 만물상 코스와 해금강의 삼일포 코스를 들 수 있다. 이중 삼일포관광은 우리 관광객 일행들이 마지막 일정 코스로 보았는데, 여기서 무서운 일이 벌어졌었다. 그 이야기는 잠시후 하기로 하고, 우선 강원도 동 해안에는 경치 좋은 곳 여덟곳이 있는데, 간성 청간정,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을 관동팔경 이라 하며, 옛날에 왕이 관동팔경을 하루씩 구경하는데 삼일포는 경치가 너무 좋아 삼일을 머물렀다고 하여 삼일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여기서 먼저 삼일포관광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날 삼일포 관광을 가면서 벌어졌던 무서웠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겠다.

마지막 일정으로 삼일포를 구경하러 갈때 이야기다. 하루의 모든 일정은 온정각 광장에서 시작 된다 그곳은 각 코스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 수십내지 수백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관광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운전기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조선족 또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안내 여직원의 말에 의하면 95%이상이 조선족이며 이들의 월급은 한국돈으로 30만원정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계약직으로 이곳 금강산 특별구역에서 합숙하며 일하고 있는데, 계약기간은 1년 또는 2년이라고 한다. 계약기간에는 일체 외부 출입이 안되며 금강산 특별구역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삼일포 가는 날, 우리 일행들은 아침 일찍 숙소근처 고성식당에서 식사(메뉴는 미역국, 또는 된장국, 쌀밥, 꽁치구이, 빈대떡, 돼지고기, 그리고 각종 산나물등등 김치외에 부페식 식사)를 마치고 온정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인원점검을 마치고 삼일포관광에 나섰다. 삼일포를 가는 중에 보니 길가 곳곳에는 총을 들고 집총자세로 서있는 군인들이 가끔씩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휴전선이 가깝다 보니 북한군의 부대가 근처에 있는 것 같다. 군인들의 모습은 무척 피곤하고 수척해 보였다. 지나가는 버스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 핏기 없는 그들 얼굴 모습 위에 건강하고 커다란, 피부 빛이 하얀 남한 군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였다. 어찌보면 못 먹고 영양실조 상태인 그들을 보면서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얼마를 가다보니 앞서가던 관광버스 몇대가 정지해 있고, 저쪽 언덕배기 위로 총을 들고 뛰어오는 북한군 병사들의 모습이 여러명 보였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궁금증에 있을 때,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현대아산 안내 여직원이 “관광객 한명이 달리는 버스안에서 밖의 사진을 찍다 북한군에게 발견되어 체포되어 끌려가고 있다”고 급전을 전한다. 멀리 앞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한국 관광객 한명이 북한군인의 호송 아래 끌려서 찦차에 타고 있다. 곁에는 총뿌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군인들의 살기어린 모습도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경계를 서고 있는 북한군 병사에 발각되어, 곧바로 비상이 걸리고 모든 차량은 수색되고 그는 체포되어 끌려갔다. 끌려가는 그 사람은 사색이 되어 끌려갔고, 함께 간 그의 부인은 엉엉 울며 땅을 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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