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김명열칼럼>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화사하고 곱게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삶에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꽃처럼 아름다운 세계’로의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도 어렵고 국제정세도 혼란스럽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물질만능의 물신주의에 정신주의를 내준 것이 한몫 한것 같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권을 보면 인간에 대한 존엄도 긍지도, 자존도 다 팽개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 의해 진실도 만들어내고 가짜도 생산해 내는 ‘전문가’들의 집합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엄청난 시대에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연인 일개 개인으로 서의 무기력함을 통절하게 느끼기도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고, 나아가 이상적인 사회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문학만큼 강력한 매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아와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관계를 규명하며 살아가는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 존재에 대한 성찰, 즉 나를 찾아가는 물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삶의 여정을 제시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삶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책의 다음장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좋은 결론은 대개 책의 후반부에 적혀 있다는 것 외에는, 앞부분의 내용이 어둡다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밀림을 통과해야 하며, 맹수 사냥꾼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향기는 언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중간 중간에 피어있는 들꽃같은 얼굴들과 매순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와 관심, 그곳에서 기쁨과 여유를 발견하는 쉬어감이 그 인생여정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정원에 피어난 꽃나무 들을 보며 한편의 문학작품을 창작한다. 이 작품이 여러 사람들의 삶에 풍요로움과 향기를 선물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꽃을 참으로 좋아한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은, 나의 집사람은 나보다도 더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정원과 뒤뜰 자투리땅에는 집사람이 좋아하는 각종 꽃들로 가득 차 있다. 꽃의 여신 플로라가 최초로 만든 코스모스를 비롯하여 다육이와 난초, 채송화, 사막의 장미, 알록달록 무지개 꽃, 장미 등등의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여러 종류 꽃들을 취미삼아 가꾸고 있다. 꽃을 가까이 하다 보니 꽃들도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들과 이심전심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며 여가를 즐긴다. 그러나 다양한 취미생활 중에는 자연을 훼손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인디언은 취미로 사냥이나 낚시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즐기기 위해 살생을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꽃을 가꾸는 것은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는 일이다. 또한 꽃을 가꾸는 마음은 소유하는 마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일이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길러 사회에 내보내듯이, 꽃을 가꾸는 일은 정성을 다해 꽃을 피워 다른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정서를 나눠 가지는 것이다. 집사람과 친하며 가깝게 지내는, 꽃을 좋아하고 꽃 가꾸기를 취미로 하는 아름다운 여인 남순씨와 현자씨가 있다. 해마다 봄이되면 자신들이 정성들여 가꾸고 키워온 꽃나무들을 지인들이나 친구,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의 집사람 역시 여러 종류의 꽃나무와 화초들을 이웃이나 교인, 지인들에게 선물해 준다. 그렇게 선물해준 꽃나무와 화초를 받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면, 주는 사람의 마음은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솟아나고 삶도 풍요로워지며 행복해진다. 꽃을 가꾸면서 작은 것일지라도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삶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들에 핀 풀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록빛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고, 숲속의 싱그러운 향기를 그리워 한다. 또한 자연에서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 시냇물 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내가 어릴때, 나는 시냇가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포플러나무의 잎새들이 시냇물 소리에 맟춰 춤을 춘다고 생각했다. 시냇가 가장자리에 숲을 이룬 포플러나무 이파리가 눈부신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 마치 이파리들이 춤을 추는 듯이 보였다. 그럴 때면 벌과 나비도 들꽃위로 날아와 춤을 추었다.

자연속에 사는 동식물 들은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과학자 중에는 식물도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식물도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싫어하는 식물에게 타감작용을 한다. 그리고 식물도 조건이 나빠지면 신경쇠약이나 병적인 반응을 보여 꽃을 피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들의 사고방식으로 동식물의 생태를 파악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동식물은 자연의 질서에 따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동식물을 함부로 살생하고 있다.

원래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초야에 묻혀 풍류를 즐기며 무위자연의 삶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살생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길을 걸어갈 때도 작은 벌레들이 밟혀죽지 않도록 짚신을 신고 다녔으며,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미리 피하도록 알려주었다. 씨앗을 심을 때도 반드시 세 알을 심어 하나는 사람이 먹고, 다른 하나는 새나 벌레가 먹게 하고, 나머지 하나는 자연(썩음)과 나눠 가졌다. 이렇듯 우리네 조상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자연속에 존재하는 풀잎 하나, 한 마리의 벌레가 도서실에 있는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연은 말없는 스승과 같다. 자연은 그 자체가 속임이 없고 꾸밈이 없는 선(善)이며 오묘한 예술이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의 성현들은 자연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며, 자연을 물욕의 대상으로 여겨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어 수많은 동식물이 죽어가고 있고, 인간도 공해와 각종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불은 크나큰 자연의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복원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재앙과 엄청난 피해가 뒤 따른다. 이 세상에 생명체를 가진 모든 동식물들은 태어나서 결국엔 죽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생태계의 파괴로 동식물들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소중한 까닭은 생명은 유한하며 모든 생명체는 그들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것들이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 의미를 지닐 때 이세상은 더욱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속엔 자연을 가꾸고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우거진 숲과 지저귀는 새, 예쁜 꽃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사람들 마음마다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 질 것이다.

집사람이 정성들여 가꾸어놓은 크고 작은 꽃, 화분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저 꽃나무와 화초들을 보며 사랑하는 나의 집사람을 바라보는 듯 할 것이고, 더러는 우울한 마음을 꽃과 더불어 웃음으로 피워 낼 것이며, 힘겨운 날에는 저 잎새처럼 푸른 생명력을 얻어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잡히지 않는 곳에 마음을 두고 욕심으로 불만을 하기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는 것은 나의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행복은 나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래도 문득문득 찾아드는 욕심이야 막을 길이 없겠지만 서도…….작은 것에서 찾는 행복이 욕심의 무게를 덜어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는 스스로 행복에 젖어든다. 저 작은 꽃나무와 화초를 사랑하고 들에 핀 풀 꽃들을 사랑하고 살다, 진정 저 꽃들과의 이별이 찾아와도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난을 생각하며 행복해지고 싶다. 스님의 글 속에 담겨있는, 비워내는 마음에서 찾는 충만함을 온전히 실천은 못 하더라도 공감하며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찾고 행복한 삶

을 이어가겠다. 작은 욕심일지라도, 각박하고 어려운 세상살이에서도 비워내며 스스로 의 마음속에 꽃밭을 가꾸어 나가면서 살다보면, 나도 저 꽃나무처럼 품격이 아름다워지리라 생각이 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71/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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